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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온 시간들 May 28. 2022

블랙홀을 찾아서

진화의 마지막 단계에서 질량의 상당 부분을 잃어버리는 별들이 많다. 행성상 성운이 질량 손실 현상의 한 가지 예이다. 행성상 성운의 중앙에는 헬륨을 태우며 에너지를 방출하는 고온의 별이 자리 잡고 있으며, 그 주위를 별에서 떨어져 나온 물질이 고리의 모양을 하고 밝게 빛나고 있다. 별의 초기 질량이 대략 태양의 6배를 넘지 않았다면, 이 별은 행성상 성운의 단계를 지나서 백색왜성으로 된다. 

행성상 성운 단계에서 포피부에 있던 수소는 밖으로 방출되고, 탄소로 이루어진 중심핵 부분만이 남아서 백색왜성을 형성하게 된다. 초기 질량이 태양의 6배 내지 8배 미만이면, 진화의 마지막 단계에서 그 별은 완전히 폭발되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온도가 높아진다고 해도 축퇴압에는 실질적으로 아무런 변화가 없으므로, 중력 수축 과정을 통하여 많은 양의 열에너지를 중심핵에 부어 넣을 수 있다. 그러다가 중심부 온도가 너무 높아져서 탄소마저 타기 시작하면, 마치 폭탄이 터지듯 별 전체가 격렬하게 폭발해 버리고 만다. 초기 질량이 태양의 8배에서 50배 미만인 별은 여러 단계의 핵융합 반응을 거치면서, 중심에는 태양의 1.5배 정도 되는 철로 구성된 중심핵이 자리 잡는다. 핵연료가 이제는 소진되었으므로, 중심핵은 더 수축하여 중성자별로 되고 포피부는 초신성의 형태로 폭발하여 공간으로 날아가 버린다.

초기 질량이 태양의 50배 이상 되는 별들은 블랙홀로 된다고 알려졌다. 블랙홀로 되는데 필요한 최소의 질량이 정확하게 열려져 있지는 않지만, 질량이 너무 크다면 최후의 수단인 중성자의 축퇴압으로도 중력을 지탱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계속되는 수축으로 밀도는 엄청나게 상승되고, 결국 빛마저 빠져나올 수 없게 된다. 

아인슈타인의 중력장 방정식은 하나의 방정식으로 깔끔하게 정리된다. 그러나 실제 연구로 들어가서 여기에 담긴 물리적인 의미를 바르게 찾고자 한다면 상황이 달라진다. 우선 중력장 방정식을 여러 개의 복잡한 방정식으로 나누고, 그 각각을 다시 따로 떼어 계산해야 하는데, 그 하나하나가 비선형 편미분 방정식이어서 계산하는 것조차 만만찮은 작업이다. 따로 떼어내 계산한 방정식에는 자연의 비밀이 숨어 있는 미지의 변수가 여러 개씩 딸려 있는데, 그 모두를 이해하고 제대로 해석해내는 것 수학적 풀이 이상의 역량이 요구된다.

그런데 그 첫 번째 결실은 의외로 세상에 일찍 나왔다. 1916년 독일의 천체물리학자 칼 슈바르츠실트는 “아인슈타인의 이론의 한 질점의 중력장에 관해”라는 논문을 “왕립프로이센 과학 학술원 논문집”에 발표했다. 

슈바르츠실트가 푼 해에는 특이점이 존재했다. 특이점이란 말 그대로 특이한 점이란 뜻으로 수학적으로 표현하면 무한대로 발산하고 미분이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이 방정식에서 무한대를 야기하는 특이점의 실체는 다름 아닌 중력이다. 즉 중력이 무한대가 되는 천체를 말한다. 

슈바르츠실트가 풀어냈듯이 일반상대성이론은 특이점의 존재 가능성을 예견한다. 하지만 일반상대성이론만 중력이 무한대가 되는 상황을 예상한 건 아니다. 뉴턴의 중력 이론도 특이점이 존재한다. 뉴턴의 만유인력은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하는 힘이다. 거리가 가까울수록 잡아끄는 힘이 더욱 강해진다는 뜻이다. 그래서 거리가 0인 지점에 이르면 만유인력은 무한대가 된다. 지구와 같은 구형의 천제를 예로 든다면, 반지름이 0이 될 때 지구의 중력은 자연스레 무한대가 되는 것이다. 

반면 일반상대성이론은 거리에 따른 중력의 변화가 이보다 더 격렬하다고 얘기한다. 그래서 천체의 반지름이 줄어들수록 중력의 세기는 큰 폭으로 강해지다가 반지름이 0이 되기도 전에 중력은 이미 무한대로 도달한다고 한다. 이 지점을 가리켜 중력반지름이라고 부르는데, 슈바르츠실트가 푼 해 속에 이것이 포함되어 있었다. 중력반지름은 아인슈타인의 중력장 방정식을 최초로 풀어낸 슈바르츠실트의 업적을 기려서 슈바르츠실트 반지름이라고 한다. 

슈바르츠실트 반지름은 곤혹스러운 문제를 낳는데, 슈바르츠실트 반지름 너머에 있는 공간에 대한 의문이 그것이다. 원점에서 중력이 무한대가 되는 문제야 더는 고려할 필요가 없는 까닭에 별문제가 될 게 없지만, 슈바르츠실트 반지름에는 크기야 어찌 되었든 분명히 공간이 존재한다. 공간은 있는데 중력의 세기는 이미 무한대를 넘어섰다는 사실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고, 또한 그 지역에 어떤 물리적인 의미를 부여해야 하는가라는 문제가 제기되는 것이다. 중력이 무한대가 되면 그 가공할 만한 수축력을 견뎌낼 수 있는 물체는 없을 터이고, 그렇게 되면 시공간의 휘어짐도 극에 달할 터인데, 그런 영역이 실제로 존재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당시의 학자들이 슈바르츠실트의 풀이에 더는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것이며, 단지 이론가의 상상 속 산물로 치부해버린 것이다. 20세기 초반의 이런 예측과는 달리 오늘날 슈바르츠실트의 해는 블랙홀이라는 천체로 이어졌고, 슈바르츠실트 반지름은 블랙홀의 표면으로 확인되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적인 사건은 이 선 밖에서 모두 끝이 나고, 그걸 넘어서면 형체의 실재조차 의심스러워진다. 그래서 슈바르츠실트 반지름을 경계로 사건의 존재와 비존재가 나뉜다고 해서 슈바르츠실트 반지름을 “사건의 지평선(Event Horizon)”이라고 한다. 슈바르츠실트가 블랙홀의 존재 가능성을 시사했다면, 찬드라세카와 오펜하이머는 블랙홀이 어떤 과정을 거쳐 형성되는가를 구체적으로 규명했다. 

별이 수소를 불살라 열에너지를 내뿜는 과정은 수소 원자 네 개가 모여 헬륨 하나를 만드는 핵융합 반응이다. 이때 핵융합 반응 전과 후에 약간의 질량 차이가 나타난다. 그러니까 반응 후에 생긴 헬륨 원자 하나의 질량이 반은 전에 모인 수소 원자 네 개를 합한 것보다 약간 작다. 이 미세한 질량 차이가 에너지로 전환되어 발산하는 것인데, 이 핵융합 반응 하나에서 나오는 에너지의 양은 그리 크지 않지만, 태양 내부에서 이와 같은 반응은 무수히 일어나기 때문에 그 총량은 어마어마해서 지구에까지 적잖은 에너지를 공급해주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아인슈타인의 질량-에너지 등가 원리이다. 

질량이 큰 별은 중력 또한 강하다. 더욱 강해진 중력에 맞서 역학적 평형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열에너지를 밖으로 분출해야 한다. 연료가 빠르게 소진되었으니 중력 수축은 그만큼 빠르게 다가온다. 이런 과정에서 더 이상 수축하지 않는 별을 백색왜성이라고 한다. 백색왜성이란 흰색 난쟁이 별이란 뜻으로 붉게 타오르던 태양만 한 별이 식어서 종국엔 지구만 하게 작아지는 별을 가리킨다. 내부에 쌓인 물질은 그대로 둔 채 부피가 줄어들기 때문에 밀도는 엄청나게 높아진다. 

인도의 첸체물리학자 찬드라세카는 모든 별이 다 백색왜성 단계에서 죽음을 맞이하지는 아닐 듯 싶었다. 그는 별의 질량이 태양의 1.4배 보다 가벼우면 백색왜성이 되지만, 그보다 무거우면 백색왜성이 되지 않는다고 결론 내렸다. 태양 질량의 1.4배를 가리켜 “찬드라세카 한계”라 부른다. 

오펜하이머와 그의 제자 조지 볼코프는 태양 질량의 1.4배에서 3.2배 사이의 질량을 갖는 별에 대해 계산해 본 결과 백색왜성의 역학적 평형이 깨지면서 새로운 붕괴가 다시 시작되는 것을 발견했다. 

전자의 축퇴 압력이 더는 안정적인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별 내부의 전자가 어마어마한 세기의 중력 수축을 이기지 못하고 원자핵 속으로 쑥 밀려가더니 양성자와 결합해 중성자로 변하는 것이었다. 이와 같은 반응으로 새롭게 만들어진 중성자가 원자핵 속에 이미 존재하는 기존의 중성자와 합쳐져 원자 내부는 온통 중성자로만 꽉 채워진 초고밀도의 중성자별(neutron star)이 탄생하게 된다. 중성자별은 중성자끼리의 축퇴압력이 어우러져 역학적 평형을 이루는 별로서 크기는 손톰만 해도 무게가 약 10억 톤이나 나가는 천체라 할 수 있다. 

별의 질량이 태양의 3.2배 보다 무거운 경우엔 별이 한없이 중력 수축을 했다. 별의 쪼그라듦을 막을 수 있는 방패막이가 없었다. 별은 중력반지름에 가까워지면서 광속에 가까운 속도로 무너져 내렸다. 그래서 중성자별 너머의 쪼그라든 상태를 “중력붕괴(Gravitational collapse)”라고 부른다. 

무한의 점이란 크기는 없고 밀도는 무한대인 점을 가리킨다. 이것이 블랙홀의 중심으로, 흔히 특이점이라고 부른다. 마지막 장벽이 무너지는 순간, 거의 광속에 가까운 속도로 중력붕괴가 진행되는 까닭에 특이점까지 도달하는 데는 1초도 걸리지 않는다. 그러니까 눈 깜박할 사이에 중성자 단계의 별이 블랙홀이 되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퀘이사와 같은 초대형 블랙홀이 아닌, 태양보다 수십 배 무거운 별이 붕괴되는 과정이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블랙홀은 무거울수록 더 큰 공간을 차지한다. 블랙홀의 크기라고 볼 수 있는 중력반지름은 블랙홀의 질량에 비례한다. 블랙홀 A와 B의 질량 차가 10만 배라면, 중력반지름도 10만 배 차이가 난다는 말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블랙홀의 크기를 어렵지 않게 가늠할 수 있다. 태양이 블랙홀로 변하면 슈바르츠실트 반지름은 대략 3킬로미터 남짓이 된다. 그러므로 태양보다 10억 배 무거운 천체가 블랙홀이 되었다면, 중력반지름은 3킬로미터의 10억 배인 30억 킬로미터가 되는 것이다. 이 정도의 초대형 블랙홀이라면 우리 은하 하나로는 도저히 감당이 안 되는 빛과 에너지를 방출하는데 그것이 차지하는 면적은 고작 태양계에도 미치지 못한다.

천체의 회전에는 반드시 중심축이 있게 마련이다. 예를 들어 지구는 중심을 관통하는 자전축을 따라서 하루 주기의 자전을 하고, 태양과 지구 사이의 공통 질량 중심을 축으로 일 년 주기의 공전을 한다. 두 천체의 질량이 같으면 공통 질량 중심은 두 천체 사이의 중간 지점이 된다. 그러나 태양은 지구에 비해 월등히 무거운 까닭에 두 천체 사이의 공통 질량 중심은 태양 자체 내에 만들어진다. 마찬가지로 지구와 달의 질량 중심도 두 천체 사이의 현격한 질량 차이로 지구 안에 존재한다. 

별이 공전하고 있는데 다른 천체가 보이지 않으며 그 별 주위에 블랙홀이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그런 조합에 항상 블랙홀이 존재한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왜냐하면, 별과 별이 공전하는 회전계는 블랙홀과 보통 별의 쌍도 가능하지만, 중성자별과 보통 별, 백색왜성과 보통 별의 쌍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별과 별의 회전계가 블랙홀과 보통 별의 쌍이라고 하면 그 별의 쌍에서는 다른 쌍성계가 보여주지 못하는 특성이 있다. 

이웃 천체의 구성물질이 중심 천체의 중력장에 이끌려 들어가면서 직선이 아닌 나선형 궤도를 그리는 건 천체의 회전 때문이다. 이러한 나선형 궤도의 원반형의 거대한 띠를 “유입물질 원반(Accretion Disc)” 라고 한다. 이러한 원반이 가속과 마찰 과정을 거치면서 유입물질 원반 내부의 온도는 수백만 도에서 수천만 도까지 올라가는데, 가스가 이 정도 온도에 이르면 강력한 X선을 방출하게 된다. 

지구에서 관측되는 X선 복사의 대부분은 유입물질 원반의 내부 수백 킬로미터 지역에서 나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이유로 X선을 내놓는 쌍성계에 블랙홀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블랙홀이라고 단언할 수 없다. 왜냐하면, 중성자별 정도의 중력으로도 X선 방출은 가능하기 때문이다. X선을 방출하는 천체가 블랙홀인지 중성자별인지를 아는 또 하나의 방법은 천체의 질량을 계산해 보는 것이다. X선을 내놓는 천체의 질량이 태양보다 다섯 배 이상 무겁다면 블랙홀일 가능성이 아주 높다. 

엑스선 관측 천문학자들은 백조자리의 X1이 바로 이런 블랙홀일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 이유는 이 천체가 태양의 약 8배쯤 되는 질량을 갖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백조자리 X1은 쌍성계를 이루고 있으며, 이 쌍성계의 반성을 광학 현미경으로 직접 관측할 수 있다. 이 쌍성계에서 검출되는 엑스선 복사를 설명하려면, 엑스 선원이 반드시 고밀도 천체이어야 한다.

블랙홀의 또 다른 매력은 시간여행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는 점이다. 블랙홀을 뒤집어 놓은 듯한 천체를 화이트홀이라고 한다. 블랙홀과 마찬가지로 화이트홀도 아인슈타인의 중력장 방정식을 풀어서 나오는 분명한 해 가운데 하나이다. 화이트홀이 아직은 발견되지 않고 있지만, 이론적으론 얼마든지 가능한 천체이다. 

시간여행의 길은 블랙홀이나 화이트홀만의 힘으로 불가능하다. 두 천체가 힘을 합칠 때 가능하다. 블랙홀과 화이트홀을 연결하는 통로를 웜홀(worm hole)이라고 한다. 

캘리포니아 공과대학의 킵 손(Kip Thorne)은 웜홀을 지난 수 있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성립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선은 기조력이 약해야 한다. 그래야 찢어지지 않고 무사히 통과할 수 있다. 다음으로 웜홀을 지나갈 수 있는 시간도 통과할 수 있을 만큼 적당히 길어야 하고, 다시 돌아올 수 있도록 쌍방이어야 한다. 그리고 유해한 빛의 영향을 최소화해야 한다. 그리고 또한 적당한 시간에 적당한 물질로 웜홀을 만들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웜홀을 굉장한 압력에 견딜 수 있는 특별한 물질로 이루어져야 한다.

 이러한 것은 우리가 지금껏 알고 있던 물질과는 전혀 다른 성질을 보이는 물질이다. 이것을 “특이 물질(Exotic matter)”이라고 한다. 이 특이물질은 제로보다 작은 질량을 가져야 하고, 음의 에너지를 지니고 있어야 하며, 중력에 반하는 운동을 해야 한다. 중력에 반하는 물질이란 중력이 작용하는 땅으로부터 떨어지지 않고 하늘로 솟구치는 현상을 말한다. 그러니까 특이물질이란 반중력 물질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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