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나온 시간들 May 30. 2022

신만은 나를 알겠지

내 주위에 나의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까요? 진심으로 최선을 다해 그들을 위해 노력하고 애쓰지만 막상 그러한 것을 알아주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알아주기를 바라기에 모든 일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만약 그랬다면 처음부터 아무것도 하지 않았을 테니까요.


 나의 말과 행동이 가끔 오해를 받을 때가 있기도 합니다. 물론 내가 잘못을 하는 것도 있겠지만, 그들도 그들의 관점에서만 나를 보기에 그럴 수도 있을 것입니다. 카메라에 노란색 필터를 끼우고 사진을 찍으면 노란색 사진이, 파란색 필터를 끼우고 사진을 찍으면 파란색 사진이 나오니까요. 그들의 관점에 대해 안타까울 때가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내가 그들의 관점을 바꾸어 주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들이 모르는 진실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오로지 자신들이 아는 것으로만 생각하고 판단하기도 합니다. 그로 인해 사실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사실 아닌 것이 사실인 것으로 돌변을 하기도 합니다. 


  문제는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한 진정한 사실을 모르는 상태에서 모든 선택과 결정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그 사실이 진실인지 파악하려 노력조차 하지 않으며, 자신의 생각이 옳지 않을 리 없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습니다. 열린 가능성이 전혀 없는 채 중요한 것들이 선택당하고 결정되어 버리고 맙니다. 


  그러한 결정이 아무런 문제를 일으키지 않느냐 하면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현재보다 더욱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며 더 이상 회복될 수 없는 상태로 굳어지기도 합니다. 돌이킬래야 돌이킬 수 없는 종착역에 도착하고 나서 잘못된 곳에 왔다고 생각할 뿐입니다. 이제 돌아갈 기차도 없고 그럴 시간도 없으며 아무런 기회조차 남아있지 않을 뿐입니다. 


  내가 아무리 설명을 하고 이해를 시키려 해도 귀를 막은 채 눈을 가린 채 그러한 노력을 외면하고 오직 자신이 서 있는 그 자리를 고집할 뿐입니다. 내게는 그 어떤 기회도 더 이상 주어지지 않기에 어떤 노력도 허사가 될 뿐입니다. 그것이 아쉽고 안타깝지만,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저 멀리서 바라보고 애만 태울뿐이지요. 


  하지만 신은 나의 마음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 진실의 모습도, 모든 형편도, 어쩔 수 없음도, 내가 하지 못하는 그 한계도 신만은 알고 있을 것입니다. 


  아쉽지만 그것으로 위로를 삼으려 합니다. 그 누군가 한 명이라도 나의 진실된 마음을 알고 있는 것으로 만족하려고 합니다. 예전엔 희망을 어느 정도 가지고 있었으나, 이제는 더 이상 바라지 않으며 그저 그렇게 마음을 접으려 합니다. 진실은 변하지 않고 영원하다는 것만 믿으렵니다. 그래도 나를 알아주는 존재가 한 명은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하겠지요.             



  


작가의 이전글 나비가 애벌레였던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