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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온 시간들 May 31. 2022

장미의 이름은 장미

  친구야,

  이제 오월이 다 가고 무더운 여름이 오고 있어. 오늘 오후에 시간이 좀 있어서 은희경의 <장미의 이름은 장미>라는 소설을 읽었어. 한국을 잠시 떠나 뉴욕에서 한 학기 동안 어학연수를 하면서 그곳에서 만나게 된 사람들과 그들에게서 느꼈던 것에 관한 이야기야.


  “사실 수진은 자신을 둘러싼 세계뿐 아니라 자신에게서도 도망치고 싶었는지 모른다. 잘못된 장소로 와버렸다는 걸 깨달았다 해도 되돌아 나가서 다른 경로를 찾기에는 두려운 나이, 결코 나아질 리 없는데도 그럭저럭 머물게 되는 계약직 생활, 그리고 그런 사실들을 불현듯 깨닫게 만들었던 깨어지고 부서져서 결국 사라져 버린 관계들. 수진은 이곳으로 떠나오며 그녀를 규정하는 나이와 삶의 이력에서 잠시나마 이탈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녀는 40이 넘은 나이에 왜 한국을 떠나 낯선 타인들만 있는 뉴욕에 갔을까? 그것은 아마도 그동안 자신과 가깝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아주 타인처럼 느꼈기 때문이 아닐까? 이제껏 지내왔던 시간을 정리하고 새로이 삶에 대한 전환점을 찾고자 그 낯선 타인들만 있는 곳으로 훌쩍 떠난 것은 아닐까? 그녀를 그렇게 이 땅에서 떠나게 만든 것들은 도저히 무엇이었던 것일까?


  “나는 왜 떠나온 것일까. 누군가를 더 이상 미워하고 싶지 않을 때 혼자 무기력하게 시간을 보내기보다는 규칙적이고 또 가식적으로 발전이 드러나는 새로운 시도를 해야 한다는 생각. 대체 왜 그런 진지한 생각을 했을까. 그런 점 역시 내가 아는 범주 안에서 틀을 만들고 그 틀에 맞도록 의미를 재단하는 독선적인 진지함의 한 방식이 아니었을까. 나를 증오에 빠지고 용서를 외면하고 또 결별에 이르도록 만든 순정의 무거움, 그리고 서로 다름에서 생겨나는 일상의 수많은 상처와 좌절들, 낙관적이지 못한 복잡한 생각과 그것을 납득시키기 위한 기나긴 말다툼을 통과하고도 나는 여전히 그 틀에 갇혀 있는 게 아닐까. 내가 과연 떠나오기는 한 것일까?”


  우리는 주위에 많은 사람들로 둘러싸여 있지만, 매일 그렇게 많은 사람과 함께 하지만, 진정으로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을 그리 많지 않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어. 각자의 입장에서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자신의 이익에서 다른 사람을 측량하며,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아닌 자신의 틀 안에서 다른 사람을 마구 변형시킬 뿐인 것 같아. 


  진정한 인간관계는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고 해도 너무나 어렵고 힘들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을 거야. 사람에 대해 지치고 믿을 수가 없으며 언제라도 나를 떠나버릴 수 있기에 인간관계의 그 가벼움에 삶의 허무를 느끼기도 하는 것 같아.


  “마마두를 검색해서 알 수 있는 것은 별로 없다. 내가 전혀 알지 못하는 마마두들의 국적과 언어, 그리고 마마두는 마호메트이고 그들의 나라에서는 가장 흔한 이름이라는 것 정도이다. 장미의 이름은 장미, 반찬의 이름은 반찬, 마마두의 이름은 마마두. 나는 여전히 미래에 대해 아무런 상상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가끔은 작가 마마두가 나무배를 타고 호수 한가운데로 가서 뜨거운 소금을 검은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을 때 그 푸른 하늘과 호수의 장밋빛이 얼마나 아름다울지를 상상해본다. 누군가의 왜곡된 히스토리는 장밋빛으로 시작한다.”


  상대와 더불어 미래에 대해 상상하지 못하는 것은 무슨 이유 때문일까? 왜 우리는 주위에 함께 있는 사람과 희망을 공유하지 못하는 것일까? 모두다가 타인 같기에, 가까이에 있지만 나의 내면을 보여줄 수 있을 정도로 믿을 수 없기에, 언제 그 사람과 어떻게 될지 알 수 없기에, 우리는 그들과 미래에 대해 꿈꾸고 공유하고자 하는 마음조차도 생기지 않는 것은 아닐까? 


  이 소설을 읽으면서 사실 마음적으로 조금 우울해지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어. 좋은 사람은 많지만,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현실이 순수했던 너를 더 그리워하는 것 같아. 이제는 만날 수는 없지만 너는 나의 마음속에 아마 그 순수한 상태로 영원히 남아 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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