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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온 시간들 Jun 01. 2022

한 떨기 꽃잎처럼 사라져 간 목숨들

군인이라는 것은 역사적으로 어느 시대에나 존재해 왔다. 군인의 존재 이유는 전쟁에 있을 뿐이다. 전쟁이 없다면 군인은 존재할 필요조차 없다. 전쟁이란 사람의 목숨이 없어져야 끝나는 것이다. 아군이 죽든 적군이 죽든 어느 한쪽에서 끝이 나야 비로소 비로소 전쟁은 멈출 수 있다. 


  살지 못하면 죽을 수밖에 없는 현실로 인해 전쟁을 대비한 군사 훈련에 있어서 더욱 비인간적인 길을 택할 가능성이 커질 수밖에 없다. 더 악랄하게, 더욱 치열하게, 스스로가 인간임을 잊어버리는 군대가 오히려 승리할 확률이 높을지 모른다. 휴머니즘을 생각한다면 적군을 죽일 수도 없고 아군의 훈련 또한 강하게 해 나가기 어려울 수 있다. 이문열의 <새하곡>은 통신장교 이 중위의 관점에서 본 군대의 현실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런데 나는 도무지 그게 이해 안 돼. 먼저 자유의 문제. 내가 보기에는 본질적으로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어. 입대 전에도 우리는 분명 복종해야 할 권위가 있었고, 때로는 불합리한 줄 알면서도 시인해야 할 규율이 있었어. 외관은 달라도 본질적으로는 지금 우리가 복종하고 시인하는 것과 똑같은 것이었어. 그러고 보면 결국 달라진 것은 우리의 식사와 의복이 좀 거칠어지고 주거환경이 좀 딱딱해졌을 뿐이야. 하지만 그것이 행복의 유일한 척도는 될 수 없지. 결국 입대와 함께 우리에게는 갑작스런 의식의 과장이 일어난 거야. 바깥의 것은 무조건 크고 화려하고, 안의 것은 무조건 작고 초라하다는 식의-그리고 그것은 너희들도 일부 인정하고 있더군. 집에 금송아지 안 매둔 놈 없다는 얘기 말이야.”


  군대의 부조리가 논리적으로 설명이 가능한 것일까? 군대도 사람이 모인 사회이기에 일반적인 평범한 사람들이 생활하는 사회와 같다고 볼 수 있을까? 인간을 전쟁을 위한 부속품으로밖에 보지 않는 인식이 우리 사회에서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는 것일까?


  “회식은 장비 정리가 대강 끝난 밤 열 시경부터 기재 창고에서 벌어졌다. 푸짐한 안주로 술이 한 순배 돌았을 때, 취침나팔 소리가 들려왔다. 통상 듣는 곡인데도 그 밤 따라 유난히 감미롭고 애절하게 들렸다. 이 중위에게만은 아닌 듯 다른 과원들도 잡담을 그치고 그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며칠간의 작전이 끝나고 들리는 취침나팔 소리는 그들에게 왜 그리 애절하게 들렸던 것일까? 누구를 위하여 그들은 그렇게도 험한 훈련과 업무를 계속해야만 하는 것일까? 전쟁에서 들리는 나팔 소리가 그들의 밤을 고요하게 만든 이유는 무엇 때문이었을까?


  “걔들이 원래 그래요. 월남서도 보니까 베트콩 총 맞아 죽는 놈 정말 몇 안 되더군요. 그저 지가 슬슬 죽는 거지요. 계집 배때기 위에서 죽고, 술 처먹다 죽고, 돈 벌려다 죽고, 적도 못 보고 미쳐 죽고, 아니면 고향 생각으로 자살이나 하고. 그게 바로 병사의 절망이지요.”


  모든 사람은 각자 자신만의 인생에 대한 꿈이 있을 것이다. 20대 초반의 젊은 군인들에게도 자신이 하고 싶은 미래에 대한 아름다운 청사진이 있었을 것이다. 그들은 왜 그리 허무하게 이 세상을 떠나고 말았던 것일까? 자신의 꿈을 펼쳐보지도 못한 채, 하고자 하는 인생이 목표를 시도하지도 못한 채, 왜 그들의 아름다운 목숨은 한 떨기 꽃처럼 힘없이 떨어지고 말았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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