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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온 시간들 Jun 07. 2022

그녀는 왜 채식주의자가 된 것일까?

 지극히 평범했던 사람이 갑자기 바뀔 수가 있는 것일까? 평상시에 먹는 것에 아무런 문제가 없던 사람이 어느 날부터 육식을 전혀 하지 않고 채식만 할 수 있는 것일까? 


  우리의 삶은 어디로 흘러갈지 전혀 알 수가 없다. 평범한 삶이 갑자기 어떻게 될지는 그 누구도 예상할 수 없다. 아무 일 없이 주어진 대로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은 우리의 삶은 예상하지 못한 일들로 인해 그동안 살아왔던 것들이 완전히 바뀔 수도 있다. 


  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는 한 평범했던 회사원의 아내가 어느 날 갑자기 채식주의자가 되면서 일어나는 결코 평범하지 않은 이야기이다. 그의 아내는 왜 채식주의자가 됐던 것일까?


  “발에 물컹한 것이 밟혀 나는 말을 멈췄다. 내 눈을 믿을 수 없었다. 아내는 어젯밤과 똑같은 잠옷차림으로, 부스스 헝클어진 머리를 늘어뜨린 채 쪼그려 앉아 있었다. 그녀의 몸을 중심으로 희고 검은 비닐봉지들과 플라스틱 밀폐용기들이 발 디딜 데 없이 부엌 바닥에 널려 있었다. 샤브샤브용 쇠고기와 돼지고기 삼겹살, 커다란 우족 두 짝, 위생팩에 담긴 오징어들, 시골의 장모가 얼마 전에 보낸 잘 손질된 장어, 노란 노끈에 엮인 굴비들, 포장을 뜯지 않은 냉동만두와 내용물을 알 수 없는 수많은 꾸러미들.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내며 아내는 커다란 쓰레기봉투에 그것들을 하나씩 주워 담는 중이었다.”


  아내는 무슨 이유로 냉장고에 있던 고기와 생선을 모두 버린 것일까? 그전에는 먹는 데 있어서 지극히 정상적인 그녀였기에 남편은 아내의 갑작스런 행동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난 무서웠어. 아직 내 옷에 피가 묻어 있었어. 아무도 날 보지 못한 사이 나무 뒤에 웅크려 숨었어. 내 손에 피가 묻어 있었어. 내 입에 피가 묻어 있었어. 그 헛간에서, 나는 떨어진 고깃덩어리를 주워 먹었거든. 내 잇몸과 입천장에 물컹한 날고기를 문질러 붉은 피를 발랐거든. 헛간 바닥, 피웅덩이에 비친 내 눈이 번쩍였어. 그렇게 생생할 수 없어. 이빨에 씹히던 날고기의 감촉이. 내 얼굴이, 눈빛이. 처음 보는 얼굴 같은데, 분명 내 얼굴이었어. 아니야, 거꾸로, 수없이 봤던 얼굴 같은데, 내 얼굴이 아니었어. 설명할 수 없어. 익숙하면서도 낯선……. 그 생생하고 이상한, 끔찍하게 이상한 느낌을.”


  그녀가 갑자기 채식주의자가 된 것은 꿈을 꾸었기 때문이었다. 그 꿈이 그녀를 전혀 육식을 하지 못하게 만들어 버리고 말았다. 그녀는 왜 그런 꿈을 꾸었던 것일까? 꿈을 꾸었다고 해서 그 꿈이 무서워 육식을 하지 않는 채식주의자가 된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내 다리를 물어뜯은 개가 아버지의 오토바이에 묶이고 있어. 그 개의 꼬리털을 태워 종아리의 상처에 붙이고, 그 위로 붕대를 친친 감고, 아홉 살의 나는 대문간에 나가 서 있어. 무더운 여름날이야. 가만히 있어도 땀이 뻘뻘 흘러내려. 개도 붉은 혓바닥을 턱까지 늘어뜨리고 숨을 몰아쉬고 있어. 나보다 몸집이 큰, 잘생긴 흰 개야. 주인집 딸을 물어뜯기 전까진 영리하다고 동네에 소문났던 녀석이었지.

  그날 저녁 우리 집에선 잔치가 벌어졌어. 시장 골목의 알 만한 아저씨들이 다 모였어. 개에 물린 상처가 나으려면 먹어야 한다는 말에 나도 한입을 떠넣었지. 아니, 사실은 밥을 말아 한 그릇을 다 먹었어. 들깨냄새가 다 덮지 못한 누린내가 코를 찔렀어. 국밥 위로 어른거리던 눈, 녀석이 달리며, 거품 섞인 피를 토하며 나를 보던 두 눈을 기억해. 아무렇지도 않더군. 정말 아무렇지도 않았어.”


  아무렇지도 않은 것이 아니었다. 아무것도 몰랐던 유년시절의 기억은 잠재의식 속에 남았고 세월을 거치면서 그와 비슷한 일들이 그렇게 누적되었다. 그리고 어느 한순간 아무렇지도 않았던 것이 아무렇지 않을 수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어떤 고함이, 울부짖음이 겹겹이 뭉쳐져, 거기 박혀 있어. 고기 때문이야. 너무 많은 고기를 먹었어. 그 목숨들이 고스란히 그 자리에 걸려 있는 거야. 틀림없어. 피와 살은 모두 소화돼 몸 구석구석으로 흩어지고, 찌꺼기는 배설됐지만, 목숨들만은 끈질기게 명치에 달라붙어 있는 거야. 한 번만, 단 한 번만 크게 소리치고 싶어. 캄캄한 창밖으로 달려 나가고 싶어. 그러면 이 덩어리가 몸 밖으로 뛰쳐나갈까. 그럴 수 있을까. 아무도 날 도울 수 없어. 아무도 날 살릴 수 없어. 아무도 날 숨 쉬게 할 수 없어.”


  누군가에게는 다른 사람이 모르는 무언가가 있기 마련이다. 그 무엇이 그 사람의 삶을 완전히 바꾸어 버릴 수가 있다. 어떤 상황이 와도 그 힘을 이겨낼 수 없을 만큼 그 무엇이 그에게 있어서는 그렇게 커다란 것일 수밖에 없다.


  “아내는 분수대 옆 벤치에 앉아 있었다. 환자복 상의를 벗어 무릎에 올려놓은 채, 앙상한 쇄골과 여윈 젖가슴, 연갈색 유두를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다. 그녀는 왼쪽 손목의 붕대를 풀어버렸고, 피가 새어 나오기라도 하는 듯 봉합부위를 천천히 핥고 있었다. 햇살이 그녀의 벗은 몸과 얼굴을 감쌌다. 나는 아내의 움켜쥔 오른손을 펼쳤다. 아내의 손아귀에 목이 눌려 있던 새 한 마리가 벤치로 떨어졌다. 깃털이 군데군데 떨어져 나간 작은 동박새였다. 포식자에게 뜯긴 듯한 거친 이빨 자국 아래로, 붉은 혈흔이 선명하게 번져 있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내면의 쌓여가는 그 모든 것은 어느 순간 갑자기 튀어나와 우리의 전체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을지 모른다. 그것이 꿈일 수도 있고, 사소한 말 한마디일 수도 있으며, 아무 생각 없이 습관처럼 했던 행동일 수도 있고, 사진 한 장일수도 있으며, 사실이 아니지만 다른 사람에게 들은 소문일 수도 있다.


  아무 생각 없이 먹었던 고기와 생선이 그녀에게는 다른 존재의 생명이라는 것을 그녀는 어느 순간 갑자기 깨닫게 되었던 것이다. 해서 그녀는 생명을 앗아가는 존재였기에 자신의 그러함에 대해 참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녀는 이제 더 이상 그러한 길로 갈 수 없기에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지극히 비정상적인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우리도 어느 순간 그녀처럼 ‘채식주의자’의 삶을 살아가게 될지도 모른다. 나의 내면 속에 잠자고 있던 것이, 혹은 내 주위의 수면 밑에서 숨고 있던 그 무엇이 이제는 그동안 살아왔던 삶을 좌우할 수 있는 존재가 되어 나의 삶을 휘감아버릴지도 모른다. 삶은 그래서 어렵고 무거울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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