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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온 시간들 Sep 25. 2022

기다림에 지쳐

 기다림은 사랑이다. 사랑하기에 기다리는 것이다. 사랑하지 않는다면 기다릴 이유가 없다. 오래도록 기다린다는 것은 사랑의 깊이가 그만큼 크다는 뜻이다. 


  하지만 기다림에도 끝이 있다. 시간이 지나면 육체와 정신도 지쳐가기 마련이다. 기다림 끝에 그가 오지만, 이제 남아 있는 것은 그저 바라보는 것밖에는 없다. 그 많은 시간을 기다림에만 썼기 때문이다. 더 많이 행복하고, 더 기쁘고, 더 즐거울 수 있는 시간을 오로지 기다리기만 했다. 이제는 행복할 수 있는 시간도, 함께 무언가를 할 시간도 남아 있지 않다. 


  기다리다 지쳐 영혼마저 슬프고 기뻐할 마음마저 잃어버렸다. 어긋난 사랑이 아니길 바랐지만, 어긋난 것이 아닐까 하는 그 운명이 애꿎을 뿐이다.         

  

<석문(石門)>     


               조지훈          


당신의 손끝만 스쳐도 여기 소리 없이 열릴 돌문이 있습니다. 뭇사람이 조바심치나 굳이 닫힌 이 돌문 안에는, 석벽난간 열두층계 위에 이제 검푸른 이끼가 앉았습니다.     


당신이 오시는 날까지는, 길이 꺼지지 않는 촛불 한 자루도 간직하였습니다. 이는 당신의 그리운 얼굴이 이 희미한 불 앞에 어리울 때까지는, 천년이 지나도 눈감지 않을 저의 슬픈 영혼의 모습입니다.    

 

길숨한 속눈썹에 어리우는 이 두어 방울 이슬은 무엇입니까? 당신이 남긴 푸른 도포자락으로 이 눈물을 씻으렵니까? 두 볼은 옛날 그대로 복사꽃 빛이지만 한숨에 절로 입술이 푸르러감을 어찌합니까?     


몇만 리 굽이치는 강물을 건너와 당신의 따슨 손길이 저의 흰 목덜미를 어루만질 때 그때야 저는 자취도 없이 한줌 티끌로 사라지겠습니다. 어두운 밤하늘 허공중천에 바람처럼 사라지는 저의 옷자락은, 눈물어린 눈이 아니고는 보지 못하리이다.      


여기 돌문이 있습니다. 원한도 사무칠 양이면 지극한 정성에 열리지 않는 돌문이 있습니다. 당신이 오셔서 다시 천년토록 앉아 기다리라고, 슬픈 비바람에 낡아가는 돌문이 있습니다.      


  천년이 되도록 변하지 않고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돌과 같은 사랑이었다. 움직일 것 같은 돌문을 열 수 있는 사람은 오직 한 사람, 그가 사랑하는 사람뿐이다. 다른 이가 그 문을 두드렸지만 천년 동안 열어주지 않았다. 검푸른 이끼가 낄 때까지 그렇게 한없이 기다려왔다. 


  촛불 하나 켜놓고 그렇게 기다렸다. 그가 오면 어떤 모습일지 촛불이라도 있어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기다리던 사람이 맞는지 확인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렇게 기다려도 오지 않음에 가슴에 한이 되어 눈물만 흐르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기뻐해야 할 일인데, 왜 눈물만 흐르게 되는 것일까? 사랑하는 마음이 잘못인 것일까? 기다리는 것이 잘못인 것일까? 충분히 행복할 수 있는, 충분히 기뻐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인 것을, 어째서 영혼마저 슬퍼지는 걸까?


  기다림에 지쳐 이제 사라질 때가 되었다. 육체건 영혼이건 세상의 그 모든 것은 운명이 있기 때문이다. 더 기다리고 싶지만, 그 운명이 삶을 가져갈 때가 되었다. 기다리고 싶어도 기다릴 수가 없기에 눈물을 머금고 이제는 영영 헤어질 수밖에 없다. 한 번이라도 보기 위해 그 오랜 세월을 기다렸건만, 영원히 볼 수 없는 운명인 줄을 몰랐다. 그가 평생에 한 일은 오직 기다림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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