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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온 시간들 Oct 03. 2022

인생은 파친코일까?

자신의 운명은 스스로 개척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어쩌면 커다란 착각일지 모른다. 삶의 주인은 자기 자신에게 달려있다고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인생의 많은 것이 자신에 의해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것도 산재한다. 


  삶은 불확실성으로, 어쩔 수 없음으로, 나의 능력과 한계를 넘어서는 그 어떤 힘으로, 도저히 감당 못 할 인연으로,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들로, 그렇게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흘러갈 수도 있다.


   이민진의 <파친코>는 양진-선자-노아-솔로몬 4대에 이르는 한 이민 가족의 파란만장한 삶을 이야기하고 있다. 자신의 목숨과도 바꿀 수 있는 사랑일지라도 그것이 허무하게 사라지기도 하며, 진심으로 마음 깊이 자리 잡았던 사람이었어도 아름다운 순간을 같이 하지 못한 채 그렇게 떠나가 버리기도 한다는 확률과 같은 삶의 어쩔 수 없음을 보여준다.  


  “모자수는 인생이 파친코 게임과 같다고 믿었다. 다이얼을 돌려서 조정할 수 있지만, 통제할 수 없는 요인들로 생긴 불확실성 또한 기대한다는 점에서 비슷했다. 모자수는 고정돼 보이지만 무작위성과 희망의 여지가 남아 있는 파친코를 왜 손님들이 계속 찾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우리의 삶이 우리가 뜻하는 대로, 바라는 대로 되어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짧지 않은 인생이기에 내가 바라는 최소한의 것이라도 이루어진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하지만 우리의 삶은 나 자신의 의지와 소망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더 많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작은 소망이나 희망을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는 나의 삶이기 때문에 사랑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선자가 그리워하는 것은 한수도, 심지어 이삭도 아니었다. 선자가 꿈에서 다시 보고 있는 것은 자신의 젊음과 시작, 소망이었다. 선자는 그렇게 여자가 됐다. 한수와 이삭과 노아가 없었다면 이 땅으로 이어지는 순례의 길도 시작되지 않았으리라. 이 아줌마의 삶에도 평범한 일상 너머에 반짝이는 아름다움과 영광의 순간들이 있었다. 아무도 몰라준다고 해도 그것은 사실이었다. 사랑했던 사람들이 항상 곁에 있었다는 사실에 위안을 받았다. 가끔 기차역 매점이나 책방 창문 앞에서 어린 시절 달콤한 풀 향기를 떠올렸고 노아가 항상 최선을 다하며 살았음을 기억했다. 그런 순간에는 노아를 꼭 붙들기 위해서 혼자 있는 것이 좋았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인연의 끝은 있기 마련이고, 마음을 다해 애를 쓴다고 해도 사랑의 아픔은 존재할 수밖에 없다. 그 무엇이 우리의 인생을 이끌고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우리가 걸어가는 그 길을 나름대로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으니 어쩌면 그것에 만족해야 하는 것이 전부일지 모른다. 붙잡으려 한다고 해서 잡히는 것도 아니고, 밀어낸다고 해서 밀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다만 아름다운 순간이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사랑했던 사람이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나의 한계에 이를 만큼 최선을 다해 살았다는 것만으로도, 아니 이 땅에 존재했었다는 것만으로도 삶에 대해 부정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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