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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영인 마음여행자 Sep 04. 2019

함께 쓰며

매일 반복되는 일상 속에 허덕이다 보면 내 삶에서 ‘자유’ 란 단어는 애초부터 없었던 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 때가 있다. 학창시절에는 지긋지긋한 시험에서 벗어나고 싶었고 직장에 들어가서는 날마다 사표 쓰는 상상을 하며 불가능한 자유를 꿈꿨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빨리 커서 엄마 품을 벗어나는 날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자유는 언제나 외부로부터 주어지거나 시간이 흘러야만 가능한 일이었고 환경이 바뀌지 않는 한 절대 누릴 수 없는 통제 밖, 신의 영역이었다. 매 순간 자유를 갈구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한 순간도 나는 자유롭지 못했다.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은 빅터 프랭클 박사는 수용소 경험을 통해 어떤 사람들은 주어진 환경에 의해 지배를 받지만 어떤 사람들은 환경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는 외부의 ‘자극’과 그 자극에 대한 우리의 ‘반응’ 사이에 ‘공간’이 있고 그 공간에서 어떤 선택을 할지의 여부는 우리에게 있다고 말했다. 그 ‘자유공간’에서 누군가는 무기력한 수용소에서의 삶을 선택했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다른 선택을 함으로써 지옥 같은 그 곳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프랭클 박사의 말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그동안 내 삶에서 자유가 사라진 것이 어쩌면 내가 한 선택 때문은 아니었을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요즘 너도 나도 외치는 ‘소확행’처럼 자유 역시 거대 담론이 아니었고 어느 날 갑자기 주어지는 선물 또한 아니라는 깨달음이 왔다. 영화 <쇼생크 탈출>에서 감옥에 울려 퍼진 모차르트의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이 그 순간, 그 곳에 있었던 모든 수감자들을 자유롭게 해 주었던 영화 장면도 떠올랐다. 자유는 분명 내가 선택할 수 있고 통제 가능한 영역이었던 것이다.    


이제 나는 원하는 매 순간 자유를 선택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특별히 소중하게 여기는 자유는 글 쓰는 시간이다. 글을 쓰는 동안은 세상과 격리되어 온전히 나 자신에게만 몰입할 수 있다. 내 안의 무수한 나, 몰랐던 나, 제대로 보살피지 못했던 나와의 대화 속에서 무한한 자유를 느낄 수 있다. 글쓰기 모임 역시 내가 선택한 자유의 시간이다. 강좌 준비를 해야 하고 수강생들의 원고를 미리 읽고 피드백을 준비해야 하는 분주한 시간이 선행되어야 하지만 준비를 마치고 호기심과 기대에 찬 얼굴을 마주하는 순간, 잠깐의 노고는 눈 녹듯 사라진다. 서로의 글을 낭독하고 칭찬과 독려의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웃고 떠드는 그 순간은 자유롭고 행복하다. 때로 냉철한 시각을 견지한 채 비판의 날선 말이 오갈 때도 있지만 잠깐의 긴장이 지나면 수강생들의 얼굴엔 상기된 미소가 떠오른다.     


글쓰기는 나와의 대면이다. 욕구와 가치관, 장단점까지 그동안 몰랐던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더불어 글동무들의 내면까지 이해하는 뜻밖의 수확까지 얻을 수 있다. 직장에서 힘들었던 일, 아이와의 갈등, 해결해야 할 문제를 함께 나누고 다독여 준다. 가족이 준 상처 때문에 힘들었던 시간을 위로해주고 그동안 나누지 못했던 내밀한 사연까지 화제에 오르기도 한다. 저마다의 문제와 각자가 처한 고단한 상황은 소통과 공감으로 이어지고 나아가 한 사람 전체를 이해하는 공동체의 연대로 확장된다.     


모여서 함께 글을 읽고 고치는 시간은 혼자 쓸 때와는 또 다른 학습의 장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배우고 알려주는 과정에서 자기 글의 장단점을 알게 되고 이런 깨달음은 더 좋은 글을 쓰는 동력이 된다. 시간이 지나면 실력이 상향평준화가 되고 좋은 글을 읽는 기쁨이 더해져 다음 모임이 기다려진다. 비판을 주고받는 과정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처음에는 낯설고 불편하게 여기던 사람도 점차 당연한 과정으로 받아들이게 되고 칭찬보다 비판에 더 귀 기울이는 모습을 보게 된다. 상대방의 부족한 점을 짚어주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하고 이는 글쓴이에 대한 관심이자 글쓰기 공부에 대한 열정의 또 다른 이름이기 때문이다. 밑천이 드러날까 두려워할 필요도 없고 약점을 공격받을까 지레 겁먹을 필요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회가 거듭될수록 돈독해진 믿음 덕분이다.    


소설가 어슐러 르 귄(Ursula Le Guin)은 <글쓰기의 항해술>에서 합평의 유용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상호적 격려, 우호적 경쟁, 고무적 토론, 비평을 통한 훈련, 시련을 이겨낼 버팀목 마련이 그것이다. 오랫동안 글을 써 온 사람에게도 슬럼프는 어김없이 찾아온다. 하물며 초심자에게는 시시때때로 슬럼프가 밀려온다. 글쓰기에 회의가 들고 글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 날이면 좌절감이 들기도 한다. ‘내가 쓴 글을 누가 읽을까? 내가 제대로 하고 있는 건 맞을까? 귀찮고 힘들어서 그만두고 싶어‘ 라는 속삭임이 끊이지 않는다. 이 때 함께 가는 동무가 필요하다. 서로 길을 묻고 길을 잃어 버려도 흔들리지 않으며 함께 목적지까지 동행해 주는 친구가 있으면 마음이 편안하다. 긴 여정에서 지치지 않는다.     


‘혼자 쓸 때는 외롭고 고독했어요’ ‘누군가 내 글을 읽는다는 생각에 긴장되지만 설레고 좋아요’ ‘함께 쓰고부터는 게으름이 없어졌어요’ 수강생들의 피드백은 서로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수업을 지도하는 강사 입장에서도 무척이나 반갑다. 강사 역시 다양한 피드백을 받으면 용기가 나고 더 좋은 수업을 위해 노력하게 된다. 수강생들이 글동무가 있어 외롭지 않듯이 강사 역시 함께 가는 그들이 있어 든든하고 행복하다.     


내 의지와는 무관한, 사회가 부과한 다양한 정체성에서 벗어나 ‘글쓰는 나’라는 자아로 새로 태어나는 느낌은 신선한 경험이다. ‘글쓰기의 힘’이자 ‘함께 쓰는 글’이 주는 선물이다. 더 이상 구석진 방에서 자신과 싸워가며 외롭게 글을 쓸 필요는 없다. 글쓰기는 싸워야 할 살벌한 대상이 아니다. 즐거운 자기 고백이자 함께 하는 나눔이다. 함께 쓰면 더 잘 쓸 수 있다.     


인스타: https://www.instagram.com/young_geul.1016/

블로그: https://blog.naver.com/mndstar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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