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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영인 마음여행자 Apr 27. 2019

나만의 글을 쓰는 동안

마르셀 뒤샹은 변기를 뒤집어 놓고 샘이라고 우겼다. 낯설게 보기이다.


똑같은 경험을 해도 느낌의 지점은 각기 다르다. 글도 마찬가지다. 보편적 관점에서 벗어나 약간 삐딱하게 볼 줄 알아야 진부한 글이 되지 않는다. 상황을 바라보는 고유한 관점과 독특한 시선은 그래서 중요하다. 학창 시절, 조회시간마다 길게 이어지던 교장 선생님의 훈화 말씀이나 강제로 써야 했던 일기장의 ‘나는 오늘’로 시작해서 ‘참 재미있었다’ 로 끝나는 착한 글보다 지루한 글은 없다.


산업화 시대에는 집단에 소속되어 보이지 않는 존재로 살아도 일을 한 만큼 보상을 받았다. 정보화 시대를 지나 4차 산업혁명을 눈앞에 두고 있는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개별성이 중요시된다. ‘모난 돌’이 정 맞는 시대는 더 이상 아니라는 얘기다. 개인적으로도 이 말이 싫었다. ‘튀지 말고 입 다물고 조용히 살아라’라는 말과 동의어이기 때문이다. 조직에서 ‘모난 돌’은 위험인물 취급을 받았고 곱지 않은 시선을 받아야 했다. 시대가 변했다. 이제 여기저기서 ‘모난 돌’ 들이 자기만의 색깔로 승부수를 던지고 있다.


글도 마찬가지다. 누구나 쓸 수 있는 글, 어디서 본 듯한 비슷비슷한 글은 독자의 공감을 얻기 힘들다.

누가 봐도 뻔한 글, 계몽의 시대가 지난 지 한참인데도 가르치려는 뉘앙스를 풍기는 글도 독자의 외면을 받기 십상이다. 그 사람 고유의 색깔이 묻어있는 대체 불가능한 글만이 살아남는다.


책을 읽으면서 무수히 많은 ‘좋은 글’과 조우한다. 하고 싶은 말을 속 시원하게 대신해 주는 사이다 같은 글, 가려운 곳을 귀신같이 찾아내서 긁어주는 효자손 같은 글, 연륜과 통찰로 단숨에 독자를 제압하는 넘사벽의 글들. 정교하게 쌓아올린 언어의 탑 앞에서 아찔한 거리감을 느낄 때가 많다.


읽고 쓰는 삶을 게을리하지 않기 위해 발버둥 치지만 내 인식의 한계는 한없이 좁고 얕다. 나보다 글을 잘 쓰는 사람이 차고 넘치는 마당에 굳이 나까지 보태야 할 이유가 있을까 싶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쓰는 것을 포기할 수 없었다. 쓰지 못하는 불안이 쓰는 과정에서 겪는 갖가지 불안을 압도했다. 나를 믿고 내 글을 믿고, 부단히 노력하며 그저 쓸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고 했던 하이데거를 굳이 인용하지 않더라도 말과 글은 어쩔 수없이 그 사람을 대변한다. ‘말’이 약한 나는 하는 수 없이 ‘글’로 표현한다. 글을 쓸 때만이 온전히 나로 살고 있다는 느낌, 잘 살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대단한 글을 쓴다는 말이 아니다. 쌓아둔 채 밖으로 나가지 못한 말, 때를 놓친 말의 무덤이 하나 둘 늘어갈 때, 바쁘게 사느라 놓쳐버린 나를 돌아보고 싶을 때, 책 한 권과 영화 한 편이 남기고 간 여운을 조금 더 길게 붙잡고 싶을 때, 나는 글을 쓴다. 나를 주어로, 내 삶의 주체로 다시 서는 시간 속에서 잉태된 글은 나만의 고유성이 묻어난다.


이오덕 선생님은 ‘아이 같은 글’이 좋은 글이라고 했다. 아이들의 글을 읽으면 어른인 나는 부끄러워진다. 솔직한 내면을 가감 없이 드러낸 글. 표정관리를 할 필요가 없는 아이들의 글은 못생긴 민낯일지언정 감추지 않고 진솔하게 드러낸다. 어른들은 다르다. 사회적 역할에 매몰되어 그때그때 필요한 가면을 바꿔 쓰며 살아간다. 본래의 나는 두껍게 뒤집어쓴 가면 속에 묻혀 버린 지 오래다.


나다운 글이란 가면 속에 감춰진 본래의 나와 대면할 때라야 가능한 게 아닐까? 부끄러운 경험, 후회와 상처의 기억, 파괴적인 생각을 담아도 괜찮다. 자신의 삶을 있는 그대로 응시하고 성찰하는, 매끄럽지 않아도 투명한 글이 신뢰를 준다. 들쑥날쑥한 필력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아 민망하고 부끄러운 마음에 자꾸만 타인의 글에 마음이 갈 때가 있다. 하지만 날것을 깎고 다듬어서 공들이는 수고를 하지 않는다면 고만고만한 글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다.


나만의 참신한 글을 쓰려면 계속 써야 한다. 누가 봐도 뻔한 글, 개성 없는 글을 쓰는 이유는 많이 써 보지 않아서이다. 자신의 글과 마주하면서 경험을 언어로 바꾸는 작업을 반복해야 한다. 쓰다 보면 고유의 감각이 생기고 나만의 문체, 내 글이 만들어진다. 그전까지는 글쓴이의 개성이 드러나기 어렵다. 시간의 풍화과정을 건너 뛰어도 되는 일은 어디에도 없다. 모든 문장은 긴 수련의 결과이다. 


모난 돌이 더 이상 정을 맞지 않아도 되는 사회가 바람직한 사회라고 믿는다. 자신만의 렌즈로 새롭게 구성한 글, 나만의 시각으로 바라본 세상을 기록한 100인 100색의 글이 독자들의 마음을 움직인다.


나만의 글을 쓸 때 비로소 읽히는 글이 된다. 


인스타: https://www.instagram.com/young_geul.1016/

블로그: https://blog.naver.com/mndstar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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