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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영인 마음여행자 Apr 11. 2019

매일 쓰고

은유 작가의 글을 읽으며 ‘나하고 참 비슷한 사람이구나’ 하고 느낀 지점이  있었다. 작가가 토로한 육아의 고충, 좌충우돌 워킹 맘의 일상에 관해서도 공감을 했지만 직업과 가정, 그리고 글 쓰는 일 사이에서 접점을 찾기 위해 고민했던 시간의 흔적 또한 나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세상에 나와 비슷한 부류의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 우리는 뜻하지 않은 위로를 받게 된다. 


작가의 지인이 ‘불 꺼진 집에 혼자 들어가는 게 싫다’고 토로했을 때 그녀는 ‘불 꺼진 집에 혼자 들어가 보는 게 소원’이라는 생각을 했다는 말에 빵 터졌다. ‘수입의 불안정보다 글쓰기의 불안정이 더 견디기 힘들었다’는 말에도 고개가 끄덕여졌다. 마치 누군가가 내 마음을 대변하는 듯했고 옛날 생각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지난한 육아의 터널 속을 지나고 있을 무렵, 아이들 키우며 직장 다니느라 초 단위로 시간을 쪼개 써야 했다. 퇴근을 해도 다시 ‘가정’이라는 또 다른 직장으로 출근해야 하는 워킹맘의 일상이 나라고 다를 리 없었기 때문이다. 집안은 늘 아이들 소음으로 북적였고 퇴근하면 산적해 있는 빨래며 요리, 집안 청소를 하느라 직장에서 보다 더 바쁘게 종종거려야 했다. 


가사 일에서 벗어나 잠시나마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한창 아이들을 키울 때는 이런 작은 바람조차도 호사로 느껴질 정도로 여유가 없었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쉽게 헤어 나올 수 없는 일상은 하나의 거대한 늪이었다. 과감하게 주부 파업을 선언하고 책과 노트북을 챙겨 카페로 도피하지 않는 한 자잘한 일상의 소음과 먼지는 끈질기게 달라 붙어 나를 괴롭혔지만 아이들을 팽개치고 하루만이라도 용기 있게 파업을 선언할 만한 배짱이 내게는 없었다. 사회가, 혹은 자진해서 부과한 ‘모성이 부족한 자질 없는 엄마’라는 낙인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감정이 분노와 짜증의 시소를 오르내리며 불안한 널뛰기를 했고 몸과 마음은 점점 피폐해져 갔다. 주부, 직장인, 엄마로서의 삶이 아닌 내 삶도 챙기고 싶었다. 처방전이 시급했다. 고심 끝에, 하루의 일과가 마무리되면 가능한 한 빨리 잠자리에 들기로 했다. 다음날 새벽을 위해서였다. 잠자는 시간이 제각각인 식구들이 모두 잠든 시간이 바로 동트기 전의 새벽이었고 오롯이 혼자 일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었다. 


가사노동, 직장 일로 몸은 천근만근 무거웠지만 졸린 눈을 비비고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엄마’, ‘주부’라는 타이틀에서 잠시나마 벗어나 온전히 나로 살고자 함이었다. 어슴푸레한 박명을 마주 한 채 노란 스탠드 불빛 아래서 노트북과 마주하는 그 순간은 잠깐이지만 살아있다는 느낌,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었다. 단 몇 줄 밖에 쓰지 못하더라도 그 시간은 내게 중요했다. 출구가 막혀 밖으로 나오지 못한 채 고인 채  말의 찌꺼기들을 갈급하게 내보내는 동안 마음은 다시 제자리를 찾았고 '가정' 이라는 일터로 돌아갈 채비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글쓰기는 당장 먹고사는 일이 아니었고 ‘글을 써야 한다’는 당위는 ‘생활’이라는 당위 앞에서는 언제나 무력했다. 자주 우선순위에서 밀렸다. 결국은 글자 한 자 쓰지 못하고 지나가는 날이 많아졌고 그 사이로 불안과 무력감이 쌓여 또 하나의 지층을 이루었다. 


인간은 관성의 법칙에 지배를 받는다. 익숙한 것이 편하고 좋다. 글을 쓰지 않는 생활이 익숙해지면 쓰지 않고도 큰 불편 없이 살게 된다. 관성의 테두리에서 과감하게 벗어나는 일은 그래서 쉽지 않다. 하지만 다행히 마음 한 구석에는 희미하지만 끈질긴 ‘쓰기의 욕망’에 대한 불씨가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었다. 위태로운 불씨의 심지를 새로 돋우어야 했다. 블로그를 다시 시작한다는 핑계(?)를 대고서야 본격적으로 글을 쓸 수 있었다. 아이들이 어느 정도 자라고 나니 뜻하지 않게 도착한 시간의 빈그릇도 하나의 계기가 되었다. 


먼지가 뽀얗게 쌓인 노트북의 옷을 벗기고 전원을 켰다. ‘딸깍’ 하는 마우스 소리와 손에 닿는 감촉이 산뜻했다. 비록 아파트 숲일지라도 탁 트인 베란다 창을 마주하고 나니 머릿속은 깨끗하게 비워지고 가슴속은 조금씩 차오르기 시작했다. 화면에 펼쳐진 말간 백지에 달아나려는 생각의 끈을 간신히 붙든 후 바닥으로 깊이 가라앉은 감정의 우물 속으로 조심스럽게 두레박을 내렸다. 잠시 후 언어의 물로 채워진 바가지를 들어 올려 마우스로 한 땀 한 땀 글자 수를 놓기 시작했다. 


나에게 글쓰기는 거창한 무언가가 아니다. 필연적으로 창작의 고통을 잉태하고 있는 외롭고 치열한 소설가의 글쓰기가 아니라는 얘기다. 하루를 정리하거나 마음을 할퀴고 간 책과 영화의 잔상이 사라지기 전에 붙잡아 두고 싶은 소박한 마음의 발로이다, 말주변이 없어서 속 시원하게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흩어진 무수한 말의 퍼즐을 다시 모아 언어의 자궁 밖으로 내보내는 작업이기도 하다. 숨 쉬고 살아가는 일상의 자연스러운 한 부분으로 글을 쓰고 싶었다. 여전히 출근 후 다시 가정으로 다시 출근하는 생활을 시지프스처럼 무한 반복하고 있지만 일상의 구조조정을 통해 매일매일 쓰는 삶을 실천하고 있는 요즘, 행복하다. 


삶은 결코 추상적이거나 모호하지 않다. 일어나서 밥 먹고 출근하고 글을 쓰는 생활은 단순하지만 구체적이다. 삶의 구체성이 하루하루를 살아가게 해 주는 힘이 된다는 것을 글을 쓰면서 깨달았다. 이래 저래 써야 할 명분이 또 하나 늘었다. 


인스타: https://www.instagram.com/young_geul.1016/

블로그: https://blog.naver.com/mndstar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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