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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영인 마음여행자 Apr 02. 2019

쓰기 전에 읽었으며

독서와 글쓰기는 따로국밥이 아니다. 읽지 않고 잘 쓸 수는 없다

 출판계가 불황의 늪에 빠진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독자들이 점점 사라지고 있는 것이 그 이유일 것이다. 그런데 책 읽는 사람들이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희한하게도 글쓰기에 관한 책은 넘쳐난다. 읽지는 않지만 잘 쓰고 싶다는 양립할 수 없는 욕망 때문은 아닐까?    


내 손처럼 쉽게 컴퓨터를 사용하고 인터넷이 대중화된 요즘 글쓰기라는 아날로그적인 감수성을 요하는 작업은 이제는 더 이상 불필요한 일로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전업 작가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항상 글을 쓰고 있다.     

SNS가 정보와 소통의 필수 매개체로 자리 잡으면서 한 두 개의 계정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은 별로 없다. 글을 매개로 소통이 이루어지는 대표적인 공간이 SNS다. 트위터의 짧은 한 줄이나 블로그 포스팅, 인스타의 해시태그를 위해서 우리는 오늘도 끊임없이 글을 쓴다. 진학과 취업을 위한 자소서, 직장인이라면 매일 같이 요구받는 기획서나 보고서, 친구들과의 소통을 위해 주고받는 문자 메시지, 카톡 역시 글쓰기의 다름 아니다. 이 외에도 ‘자기표현’이나 ‘성찰’을 위한, 비교적 순수한 목적으로 글을 쓰기도 한다. 우리는 매일매일 생각을 다듬고 글을 매만지면서 타인과 교감하고 소통하기 위해 애쓴다. 거창한 ‘글쓰기’는 아닐지라도 실상 우리는 매일 무언가를 쓰고 있는 것이다. ‘글쓰기 특강’부터 ‘글쓰기 비법’에 이르기까지 글쓰기에 대해 알려주는 책이 넘쳐나는 이유다.     


글을 잘 쓰고 싶은 욕망은 이제 누구에게나 자연스러운 것이 되었다. 하지만 욕망만으로 글을  쓸 수는 없다. 쓰고 싶은데 글이 잘 써지지 않고, 첫 문장조차 시작하지 못해 전전긍긍했던 경험이 누구나 있을 것이다. 이쯤에서 궁금증이 인다. 누구는 글을 잘 쓰는데, 누구는 글을 못 쓰는 이유는 무엇일까? 하고 말이다. 타고난 재능이 부족해서일까, 글 쓰는 테크닉이 없어서일까, 아니면 훈련이 되지 않아서일까? ‘글쓰기는 확실히 재능이 있어야 돼. 아무나 쓰는 게 아니야’ ‘글을 쓴 지 너무 오래됐어. 글을 쓸 기회가 있어야지!’ ‘생각은 많은데 표현력이 부족해서 그래’ 저마다 자신의 한계를 떠올리며 답을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내가 생각하는 답은 ‘콘텐츠 부족’이다.     

재능이 없어서, 기술이 부족해서, 훈련이 덜 돼서 글을 못 쓰는 게 아니다. 쓸 거리가 없어서 그렇다. 시나 소설을 쓰지 않는 이상, 타고난 재능이 없어도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기술은 배우면 되고, 훈련 부족 역시 시간이 지나면 해결된다. 하지만 콘텐츠의 경우는 상황이 좀 다르다. 마음만 먹는다고 하루아침에 후딱 만들어지는 패스트푸드가 아니다. 야심 차게 시작한 글이 한 문장을 넘어서지 못하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읽지 않고 소설가가 된 사람을 나는 한 명도 알지 못한다. 소설가들은 쓰기 전에 읽은 사람들이며 또 읽는 사람들이다”    


<당신은 이미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의 저자 소설가 이승우의 말이다. 읽지 않고 잘 쓰는 사람은 없으며 얄팍한 글쓰기 스킬만으로 글을 쓸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일침을 가하는 말이다. 콘텐츠를 축적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독서다. 다시 말해 글쓰기의 시작은 독서라는 얘기다. 독서와 글쓰기는 따로국밥이 아니다. 글쓰기 책을 읽으면 글을 잘 쓸 수 있다는 착각에 빠져서는 안 된다. 읽지 않고는 결코 잘 쓸 수 없다. 그런데 글을 잘 쓰기 위해 ‘글쓰기 완전 정복’ 이라든지 ‘왕초보 글쓰기’와 같은 테크닉을 알려주는 책부터 찾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글쓰기 안내서를 읽는다고 해서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초보자의 경우 글쓰기 안내서보다는 다양한 분야의 좋아하는 책을, 재미있게 읽는 것을 더 권한다. 독서량이 부족한 사람이 기술서만 읽어봐야 힘만 들뿐 효과는 없기 때문이다. 기초 체력도 없는 사람이 현란한 드리블부터 배울 수는 없지 않은가? 독서이력이 쌓이면 콘텐츠는 자연스럽게 쌓인다. 다방면의 지식의 향연과 날카로운 통찰이 하모니를 이룬 세련되고 풍성한 글은 독자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풍부한 예시, 적절한 인용, 창의적인 비유까지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독창적인 콘텐츠가 만들어지면 빈약한 글, 가난한 언어에서 벗어날 수 있다.   

 

어찌하다 보니 내 이름을 걸고 낸 책이 2권이다. 돌이켜 보면 내가 어떻게 이걸 썼을까? 하고 놀랄 때가 있다. 여전히 글쓰기는 내게 한없이 어려운 숙제이기 때문이다. 복잡한 생각들로 헝클어진 머릿속 서랍장을 말끔히 정리해서 한 편의 글로 바꾸는 과정은 결코 녹록한 일이 아니다. 매번 글의 미로에서 헤매다가 엉뚱한 곳에서 길을 잃고 당황할 때가 다반사다. 노력하고 있지만 여전히 비문과 오탈자를 양산하며 겨우 쓰고 있을 뿐이다. 글이 안 써지거나 오랜 글 노동으로 몸과 마음에 피로가 몰려올 때면 잠시 쓰는 것을 멈추고 읽다만 책의 접힌 모서리를 편다. 글쓰기의 노동에서 잠시나마 빠져나와 마음의 휴식을 찾는 나만의 비법이다. 글쓰기에서 탈출한 그 순간 다시 글쓰기로 돌아갈 수 있는 힘을 주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독서다. 글쓰기 책 한 권으로 단번에 훌륭한 글쟁이가 되는 법은 어디에도 없다.     


친구들이나 지인들의 모임에 갈 때면 형형색색의 예쁜 구슬이 오종종하게 박힌 깜찍한 클러치나 화사한 색감의 화려한 핸드백이 내 눈에도 들어온다. 나도 여자인지라 예쁜 가방을 갖고 싶은 로망에서 벗어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가방을 구입할 때면 결국은 큼지막하고 별 모양 없는 에코백을 주로 고르게 된다. 항상 책을 갖고 다니는 버릇 때문에 가볍고 큰 가방이나 백팩이 아니면 실용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손바닥만 한 핸드백으로는 감당이 안 된다. 여성성을 포기하고서라도 끝까지 지키고 싶은 것이 책이다. 차곡차곡 쌓인 독서이력 덕분에 어느 날부터인가 나는 쓰고 있었다.     


책을 많이 읽는다고 무조건 글을 잘 쓰게 된다는 말은 물론 아니다. 독서는 글쓰기의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은 아니기 때문이다. 많이 읽어도 계속 쓰지 않으면 잘 쓸 수 없다.              


인스타: https://www.instagram.com/young_geul.1016/

블로그: https://blog.naver.com/mndstar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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