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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영인 마음여행자 Jun 03. 2019

왜 쓰는가 질문하고

소설가 한창훈은 ‘왜 쓰는가, 이런 거 물어보는 거 아니다’라고 했다. ‘왜 사는가와 같은 질문’ 이라서 그렇다는 거다. 평생 물질을 해 온 해녀가 오늘도 물옷을 입고 바다로 가는 이유는 단 하나, 어제도 나갔기 때문이란다. 나에게 글쓰기도 이랬으면 좋겠다. 어제도 썼으니까 오늘도 쓰는, 그래서 내일도 쓸 것이 분명한. 평생 물질해 온 해녀처럼 글이 일상이 되는 삶 말이다. 


살다 보면 핸드폰을 박살 내거나 밥상을 엎거나 머리에 뚜껑이 열리는 이모티콘과 겹쳐지는 상황이 생길 때가 있다. 화난 일이 있거나 스트레스를 받을 때 나는 쓴다. 상황을 낱낱이 적고 그 순간 느꼈던 감정도 꾹꾹 눌러 담는다. 쓰다 보면 차츰 이성이 돌아오고 합리적 사고를 하는 뇌의 영역에 불이 들어오게 된다. 다 쓰고 나서 찬찬히 읽어보면 화가 천천히 가라앉고 마치 제삼자의 문제를 바라보듯 내 상황을 보게 된다. 혼란스러웠던 마음이 정리되고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깨닫게 된다. 상대방 탓을 하고 비난의 화살을 쏘느라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던 실수도 눈에 들어온다. 


화를 객관화해서 바라보면 분노의 실체가 드러난다. 정리되지 않는 감정은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 감당이 힘들지만 글로 ‘개념화’ 한 분노는 더 이상 정서적 위협이 되지 않는다. 글을 씀으로써 분노의 적체 현상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스트레스 해소에 이만한 게 없다. 술에 의존하거나 노래방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도 제정신으로 돌아오는 순간 자괴감에 오히려 더 괴로울 뿐이다. 


생각이 복잡할 때, 해결하거나 결정해야 할 일이 생겼을 때도 글의 힘을 빌린다. 다양한 방법을 찾고 고민하는 글 쓰는 시간 속에서 해결책을 모색할 수 있다. 우리는 살면서 수없는 난관 앞에 서게 된다. 때로 걸려서 넘어지기도 하고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을 모면하고 간신히 고비를 넘기기도 한다. 이때 글을 쓰는 것은 '레이몬드 커버'의 단편 소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의 따뜻한 한 조각의 롤빵처럼 별 것 아니지만 분명 도움이 된다. 마음의 병을 앓고 있던 지인은 꾸준한 글쓰기를 통해 문제의 원인을 파악했다. 곧바로 심리 치료를 시작했고 이제 그분의 삶은 많이 달라졌다. ‘쓰기의 삶’을 통해 한 사람의 인생이 바뀌는 것을 목격한 순간이었다. 


글을 쓰면서 타인과의 관계를 재정립하고 세상과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용기를 얻기도 했다. 직장생활 중에 사소한 오해로 자칫 어긋날 뻔한 사람이 있었다. 속상한 마음을 바로 글로 옮겨 적고 나니 그 사람 탓만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서슬 퍼렇던 처음 상황과 달리 슬쩍 미안한 마음도 생겼다. 다음날 먼저 다가가 손을 내밀었고 관계 단절의 위기를 슬기롭게 넘길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잘한 일이었다. 덕분에 내 삶은 조금 더 풍성해졌다. 


첫 책을 내면서 시작한 SNS는 게으름 탓에 시간이 지나자 곧 자진 휴업 상태에 들어갔다. 맛집을 올리고 일상을 올리는 일은 지루하고 힘들었다. 취향과 무관한 이웃을 찾아다니며 마음에도 없는 하트를 날리는 일도 귀찮고 번거로웠다. 더 이상 글 쓰는 의미를 찾을 수 없었다. 오로지 블로그 운영을 위한 글에만 매달린 탓이었다. 점점 내 블로그는 아무도 들르지 않는, 스산한 모래바람이 부는 을씨년스러운 공간으로 변모하고 말았다. 사람의 흔적이 없는 사이버 공간도 오랫동안 비어 있던 집과 같은 실제 물리적 공간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쓰고 싶은 글만 쓰기로 마음을 바꾸었다. 사진도 첨부하지 않았고 글로만 블로그를 채웠다. 진짜 쓰고 싶었던 글, 정보를 주는 글, 책과 영화를 보고 느낀 감상 등, 진정성 있는 글로 블로그를 꾸려갔다. 백 프로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퇴고 과정도 거쳤다. 이웃을 신경 쓰지 않고 글을 썼는데 신기하게도 이웃이 더 늘었다. 공감지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고 따뜻한 댓글도 이어졌다. 얼굴도, 성도, 모른 채 저마다의 아바타로만 소통하는 사이버 이웃이 어느 순간 실제 이웃보다 더 살갑게 느껴질 정도로 소통은 즐거웠다. 오프라인에서 만나면 오래 알고 지낸 지인처럼 스스럼없이 대화도 나눌 수 있을 것 같았다. 실시간으로 언제 어디서든 소통할 수 있다는 장점과 들불처럼 확산되는 글의 위력을 실감하게 해 준 SNS 글쓰기였다. 덕분에 알람이 울리면 설거지를 하다가도 고무장갑을 벗어던지고 달려가는 열혈 중독자가 되었다. 매번 밥만 먹으면 물린다. 때로 피자나 치킨도 먹어줘야 한다. 내게 SNS는 소통의 즐거움을 알려 준 색다른 글쓰기 경험이었다. 


어렸을 때는 어른이 되면 세상의 모든 의문이 풀릴 줄 알았다. 하지만 막상 어른이 되고 보니 오히려 더 깊은 미궁 속으로 빠져드는 기분이다. 갑작스러운 실직, 가까운 지인이나 가족과의 이별, 예기치 않은 사고 등 도처에 널린 장애물을 치우며 가야 하는 ‘인생’이라는 여정은 결코 이해할 수도, 납득할 수도 없는 일 투성이다. 

 자신의 삶을 기록하고 감정을 글로 옮기기 위해 펜을 집어 드는 행위는 해답 없는 질문, 열리지 않는 문을 향해 두드리는 간절한 기도이다. 뭐든 처음이 힘들다. 일단 펜을 들고 한 문장이라도 쓰기 시작하면 걱정했던 것만큼 글쓰기가 어렵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한 문장, 한 문장 쓰다 보면 심지어 ‘잘’ 쓰게 될지도 모른다. 


“OOO, 남자한테 참 좋은데... 어떻게 표현할 방법이 없네! “ 중년의 건강식품회사 대표님이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카메라를 응시하며 날렸던 광고 멘트다. 글쓰기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그 분과 비슷한 심정이 된다.     

   

‘글쓰기, 정말 좋은데... 어떻게 표현할 방법이 없네!’ 일단 써라. 써 보면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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