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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영인 마음여행자 May 03. 2019

작가가 되었고

 

두 권의 책을 낸 공식적인 작가가 되기 전에 스스로 책을 낸 적이 있었다.  누구나 피해갈 수 없는 사춘기가 되자 큰 아이는 갈수록 말수가 줄었다. 소통은 힘이 들었고 지쳐 나가떨어지는 건 언제나 나였다. 굳게 닫힌 방문은 좀처럼 열리지 않는 아이의 마음처럼 난공불략의 성이었다.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무섭게 이어지는 말대꾸, 반항적이고 우울한 얼굴, 곤두박질치는 성적은 3종 선물세트처럼 내 앞에 당도해 있었다. 타일러도 보고 야단도 쳐 보았지만 소득 없이 끝날 때가 대부분이었고 남은 건 냉랭하기 이를 데 없는 모녀관계였다. 연일 한랭전선이 이어지는 나날 들 속에서 분노와 무력감에 시달리며 아이와의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마침 아이의 열다섯 번째 생일이 다가오고 있었다. 선물을 고민하다가 그동안 하지 못한 말이 많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긴 편지를 썼다. 진심을 담아 아이에 대한 사랑을 고백하고 아픈 내 마음도 간간히 비쳤다. 다 쓰고 나서 혼자 감동해서 울었다.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나지만 당시에는 꽤나 심각했다. 온전한 부모 노릇을 위해 애쓰는 내가 기특해서 비록 신파 일색의 글일지라도 어떤 명문보다 가슴에 와 닿았다. 이제는 낯 뜨거워서 도저히 그때 쓴 편지를 읽을 수조차 없다.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한, 수식어가 난무하고 감정의 과잉으로 가득 찬 글은 우스꽝스럽기 이를 데 없었다.        

   

눈물 콧물을 훌쩍이며 쓴 편지를 곱게 접어 책상 위에 올려두었다. 엄마의 기대와 달리 편지를 읽었는지 조차 짐작이 가지 않을 정도로 아이는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서운했지만 ‘편지 한 장에 넘어올 아이였으면 이리 속을 끓이지도 않았을 거’라며 마음을 내려놓기로 했다. ‘표정이 조금 밝아진 것 같다’며 이솝우화의 여우처럼 스스로를 기만하기도 했다. 딸과의 긴 편지 소통이 시작된 순간이었다.     


정기적으로 쓰는 편지는 아니었다. 일주일에 한 번, 기분 내킬 땐 이틀 연속으로, 때로는 한 달에 한 번 쓰기도 했다. 아이에게 하고 싶은 말은 차 올랐지만 입 밖으로 내는 순간 공허하게 흩어질 게 뻔하다고 느껴질 때, 책을 읽다가 아이와 나누고 싶은 문장을 만났을 때, 영화를 보고 나서 벅찬 감동을 주체할 수 없을 때, 나는 책상 앞에 앉았다. 드문 일이긴 하지만 여름날 소나기처럼 시 한 수가 가슴에 쏟아져 내릴 때도 어김없이 흰 여백과 마주 했다.     


처음에는 쓰고 나서 출력하고는 그만이었다. 편지가 쌓여감에 따라 그냥 버리기 아깝단 생각에 폴더를 만들어 저장하기 시작했다. 글이 차곡차곡 쌓여갔다. 아이를 위해 쓰기 시작한 편지임이 분명한데 어느 순간 글쓰기가 나를 위로해 준다는 것을 깨달았다. 막막한 흰 여백에 아이와 나의 사연을 채워놓은 일은 곪았던 상처를 삭게 했고 ‘부모’라는 정체성에만 머물러 있었던 나를 돌아보게 해 주었다.     


더 열심히, 더 간절하게 썼다. 아이는 여전히 묵묵부답이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더 이상 답장 여부가 중요하지 않았다. 쓴다는 것 자체가 의미가 있었고 아이가 읽는다는 사실에 만족했다. 엄마의 편지는 3년간 꾸준히 이어졌고 폴더 속의 파일도 점점 두꺼워졌다. 명왕성보다 더 멀어졌던 아이와 나 사이의 거리가 화성 정도로 가까워지지 않았을까 위로하는 사이 사춘기의 강을 건너던 배는 어느덧 목적지에 도착해 있었다.     

졸업식이 다가왔다. 선물을 고민하다가 그동안 모아 두었던 편지가 떠올랐다. 인터넷을 뒤졌더니 자가 출판을 할 수 있는 다양한 시스템이 있었다. 온전히 내 손으로 표지를 디자인하고  판형을 고민하고 글자체를 골랐다. 아이의 어릴 때 사진, 가족사진을 문장 중간중간에 삽입했다. 내친김에 남편에게도 편지 한 장을 부탁해서 발간사로 대신했다. 진짜(?) 책처럼 보이기 위해 애쓴 흔적이 묻어났고 제법 그럴듯한 책 한 권이 만들어졌다.     


‘화장실 가기 전과 후가 다르다’는 말은 인간의 심리를 정확하게 꿰뚫은 말임에 틀림없다. 아이가 읽어주기만 해도 좋겠다던 초심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자리에 ‘혼자 보기는 조금 아깝다’는 욕심이 슬그머니 들어섰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애초에 계획했던 것보다 몇십 부를 더 인쇄해서 가족, 지인, 친구들에게 나눠 주었다. 결과는 놀라움반, 부러움 반의 반응이었다. 생각지도 못한 반응에 약간 으쓱해진 나는 ‘엄마라면 이 정도는 해 줘야지’라는 뉘앙스를 품은, 다소 거만한 심정이 되었다.    

 

당시의 오만 대신, 지금의 나는 할 수만 있다면 그때 나눠준 책을 몽땅 ‘반품당하고' 싶은 심정이다. 글 쓰는 횟수가 늘어나고 자연스럽게 글을 보는 안목 생기면서 예전의 글이 창피해서 견딜 수가 없다. 책을 받지 못한 지인이 나중에 한 권을 간절하게 부탁했지만 ‘품절’ 됐다고 둘러대야 했던 이유다. 도저히 남에게 읽힐 수 없는 글이었기 때문이다.     


엄마가 만든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책이 아이의 졸업 선물이 되었지만 혼자 들떠서 흥분했던 나와 달리 정작 아이는 그때도 반응이 시큰둥했다. 서운 했지만 참았다. 권력관계는 ‘사랑’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더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면 덜 사랑하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갑’과 ‘을’의 함수관계가 발생하는 지점이다. 이때 더 사랑하는 사람이 참을 수밖에 없고 부모 자녀 관계에서 참아야 하는 사람은 항상 ‘을’인 부모다. 부모님께 무수한 갑질을 일삼았던 나의 사춘기가 떠올랐다. 이제 내가 당할 차례였다. ‘을’인 나는 아이의 무반응에도 서운한 마음을 애써 감춘 채 웃으며 졸업을 축하해 주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고 아이는 파릇파릇한 새내기 대학생이 되었다. 그 해 내 생일에 아이가 쓴 긴 편지가 도착했다. 3년 만의 답장이었다. 아이의 담담한 편지 속에는 그동안 하지 못했던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미래에 대한 고민으로 갈등하고, 정체성 혼란으로 외로웠던 시절, 엄마의 편지가 전해준 위로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하고 있었다. 눈물이 났다. 긴 인내의 시간이 일순간에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이후 나는 자연스럽게 글을 쓰게 되었다. 책을 좋아하고 글을 쓰고 싶었지만 황폐한 학창 시절을 보내는 동안 나한테 이런 욕구가 있었는지 조차 까맣게 잊고 살았다. 처음 글을 썼을 때는 나만 보는 일기장과 비슷했다. 하지만 자꾸 쓰다 보니 타인과 나누고 싶었고 적극적으로 글로써 소통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났다. 방구석에서 혼자 쓰고, 나만 읽고 마는 글이 아니라 진짜 책을 써서 작가가 되고 싶었다. 열심히 원고를 작성한 뒤 출판사에 투고를 했고 여러 출판사에서 러브 콜을 받았다. 그렇게 나는 저자가 되었다.    

 

작가가 된 후 부모교육을 많이 했다.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부모의 안타까운 사연이 쏟아졌고 내가 아는 한에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그때뿐이고 집으로 돌아가면 다시 아이와의 지난한 전쟁이 시작될 것임을 나는 알았다. 큰 아이와의 관계 회복, ‘부모’로서의 성장은 누구의 조언도 아닌, 글쓰기에서 비롯됐다고 믿는다. 편지는 아이를 향한 간절한 기도문이었고 엄마이기 전에 온전히 나로서 살고자 함이었다. 글쓰기만 한 처방이 없을 터였다.  



글을 썼을 뿐인데 많은 것이 달라졌다. 자녀와의 관계가 한결 부드러워졌고 불안을 내려놓고 느긋하게 지켜볼 줄 알게 되었다. 글을 쓰면서 조금은 ‘좋은 사람’ 이 되었고 ‘좋은 부모’는 결국 ‘좋은 사람’이라는 깨달음도 얻었다.     


영화 <이프 온리>에서 무관심한 남자 친구를 둔 여주인공은 ‘내가 더 사랑하는 사람이 될까 봐 두렵다'고 했다. 예전에는 내가 ‘더 사랑하는 사람’이어서 속상했고 내 사랑을 몰라주는 아이가 서운했다.     


이제 나는 ’덜 사랑하는 사람’ 이 될까 두렵다.    


인스타: https://www.instagram.com/young_geul.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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