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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영인 마음여행자 Mar 02. 2019

닥치고 쓰는 동안

오래전부터 무언가를 끄적거리는 습관이 있었다. 그 흔적들을 모아보니 분량이 제법 되었다. 내친김에 책으로 만들어 볼까 하는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요즘으로 말하자면 독립 출판 내지는 자가출판인 셈이다. 방황하는 사춘기 딸아이에게 3여 년간 쓴 편지가 한 권의 책으로 나온 배경이다. 식구들끼리 돌려보고 몇몇 지인에게 자랑스럽게 나눠주기도 했다.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 책꽂이에 꽂혀 있는 그 책을 다시 꺼내서 읽어 보았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엉성한 구성, 감정의 과잉, 심지어 문맥도 엉망인 글들이 ‘책’이라는 외피를 입고 버젓이 서가의 한 공간을 차지하고 있었다. 누가 볼 새라 서둘러 책을 덮었다. 어린 시절의 일기장을 어른이 돼서 다시 봤을 때의 느낌, 혹은 첫사랑에게 보낸 애틋한 연애편지를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 우연히 보게 된 심정이 이와 같을까? 일기처럼 유치하기 짝이 없고 도저히 내가 썼다고는 믿어지지 않는 엉성한 글이 내 글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참혹한 순간이었다. 하루하루 열심히 쓰는 동안 나도 모르게 글 솜씨가 나아졌고 그 안목 덕분에 예전 글의 허점이 눈에 들어온 것이니 사실은 축하할 일이지만 말이다. 하지만 이후에 지인이 그 책을 한 권 더 달라고 부탁했을 때 없다고 둘러대고는 결국 주지 않았다. 아니, 도저히 줄 수가 없었다. 몇 년의 시간이 흐른 뒤 준비한 원고를 출판사에 투고했고 현재까지 두 권의 책을 낸 저자가 되었다.
     
글쓰기에 타고난 재능은 그다지 중요한 게 아니다. 하지만 소설이나 시를 쓰려면 경우가 다르다.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 때

서른 살은 온다.


최승자 시인의 <삼십세>이다. 소설가나 시인의 재능은  타고 나는 것임에 분명하다. 날밤을 새고, 코피 터지게 노력해도 우리는 결코 이런 시를 쓸 수 없다. 하지만 대부분의 우리는 소설가나 시인이 될 게 아니니 크게 고민 필요는 없다. 글쓰기는 훈련을 통해 얼마든지 나아지기 때문이다.


글쓰기는 오직 글쓰기를 통해서만 배울 수 있다. 어떤 전문가의 말도 자신에게 백 프로 해당되지 않는다. 백 번 맞는 말이라 할지라도 뜻을 깨닫지 못해서 충고를 받아들이기 힘든 경우도 생긴다. 결국 자신의 내부에서 배움의 길을 찾아야 한다. 다이어트를 위해 온갖 책을 읽고 유튜브 채널을 봐도 실제로 운동을 해야 살이 빠지는 이치와 다르지 않다. 부단히 쓰는 과정에서 고치고 새로 쓰면서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들어야 한다. 전문가의 충고는 모두 잊고 혼자서 열심히 쓰다 보면 어느 순간 깨달음이 올 때가 있다. 그때까지는 어쩔 수 없이 지난한 쓰기의 과정을 반복해야 한다. 운동을 열심히 하면 하나, 둘 몸에 근육이 붙듯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어느 순간 글쓰기 근육이 내 몸에 장착 되어 한 줄도 쓰기 어려웠던 글이 서너 페이지는 거침없이 쓸 수 있는 필력을 갖출 때가 온다.
     
처음부터 수준 있는 글을 쓰는 사람은 없다. 두서없고 유치하고 진부한 글이  시작이다. 그저  쓰는 연습을 통해 근육을 기른다고 생각하면 된다. 글을 쓰기 위해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한다고 지레 겁먹을 필요도 없다. 친구를 기다리는 카페에서, 영화를 보러 가서 잠시 대기하는 동안 스마트폰을 집어 드는 유혹에서 잠시만 빠져나오면 된다. 5분, 혹은 10분 동안 한 문장이라도 써 보자.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티끌 모아 태산’이라는 말도 안 되는(?) 속담은 글쓰기에서만큼은 유효하다.


글쓰기 왕초보에서 두 권의 책을 낸 저자가 된 데는 꾸준히, 열심히 썼다는 것이 비결(?)이라면 비결이다. 타고난 재능이 있었다면 정말 좋았겠지만 불행하게도 나에게 그런 ‘재능’은 없었다. 그저 무식하게 계속 쓸 수 밖에 없었다. 

쓰면 쓸수록 느는 게 글이다.  지금 당장 한 문장이라도 써보자. 


인스타: https://www.instagram.com/young_geul.1016/

블로그: https://blog.naver.com/mndstar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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