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영인 마음여행자 Mar 06. 2019

카페에서 썼다

요즘 카페는 단순히 차 마시고 대화를 나누는 공간 그 이상의 역할을 한다. 노트북을 펼쳐두고 일이나 공부에 열중한 카공족, 이어폰을 꽂은 채 영화나 음악을 감상하며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는 나홀로 족을 심심찮게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주 가는 단골 카페가 정해져 있을 정도로 내게도 카페는 익숙한 공간이다.
     
카페를 찾는 주목적은 대부분 글쓰기를 위해서다. 집 앞에는 최근에 우후죽순처럼 카페가 하나, 둘 생기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꽤 여러 곳의 카페가 성업 중이다. 글쓰기에 합목적적인 카페를 찾기 위해 세심하게 준비를 마친 뒤 날을 정해 카페 투어를 했다. 적합성 여부를 꼼꼼하게 체크하며 장소를 물색했다. 지금의 단골 카페가 정해진 배경이다.
     
내가 생각하는 글쓰기에 적합한 카페는 이렇다.

첫째, 공간이 넓어야 한다. 좁은 공간에서 사고친 강아지마냥 힐끔힐끔 주인의 눈치를 보거나 커피 한 잔 달랑시켜놓고 오랜 시간 버티기엔 내 얼굴이 그리 두껍지 않기 때문이다. 갑작스레 손님이 밀어닥치기라도 하면 혼자서 두 자리 이상의 좌석을 점한 나 같은 고객은 당장 사라져 주기를 바라는 것이 카페 주인의 마음이 아닐까? 안 그래도 삶이 팍팍한데 주인장의 분노지수까지 상승시켜서는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런 카페는 바로 탈락이다. 넓은 카페 구석 자리에서 존재감이 없어진 상태가 되어서야 비로소 해방감을 느낄 수 있다. 글이 잘 써진다.
     
둘째, 조도가 적당해야 한다. 새로 생긴 이쁘다고 소문난 카페가 궁금해서 저녁 시간에 그곳을 찾았다. 넓고 탁 트인 공간 속에 나무와 꽃을 소재로 독특한 인테리어를 한 곳이었다. 게다가 맛있는 커피와 내가 좋아하는 호박 파이까지, 완벽한 조합이었다. 바로 자리를 잡고 노트북을 펼쳤다. 그런데 조명이 문제였다. 어두컴컴한 조명 때문에 작업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바로 극심한 피로가 몰려왔다. 결국 한 페이지도 쓰지 못한 채 카페를 나와야 했다. 이번에도 탈락이다.
     
셋째, 맛있는 커피 외에도 간단한 샌드위치나 디저트를 함께 파는 집이 좋다. 오랜 시간 앉아 있다 보면 슬슬 배가 고파온다. 멀건 커피 한 잔으로는 요기가 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나가서 밥을 먹고 다시 멀쩡한 얼굴로 들어오는 진상 고객이 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럴 때 간단한 샌드위치나 빵, 혹은 달콤한 디저트가 있으면 오랜 시간 배고픔에 시달리지 않고도 글을 쓸 수 있다. 지금의 단골 카페 이전에 드나들던 카페는 결국 이 문제점으로 인해 탈락카페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말았다. 배고픔을 참아가면서까지 써야 할 위대한 작품이 내게 있을 리 만무했으므로...
     
넷째, 너무 시끄러우면 곤란하다. 카페의 특성상 소음을 피할 수는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조용한 도서관보다는 적절한 데시벨의 소음이 배경음으로 깔린 카페가 글쓰기에 더 효과적이기도 하다. 모차르트가 작곡을 할 때 아내에게 이야기 책을 읽게 했다는 일화는 얼마간의 적절한 소음이 창작활동에 오히려 도움이 된다는 걸 의미하는 건 아닐까. 하지만 지나치게 시끄러우면 당연히 몰입도는 떨어진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 밀집한 카페는 늘상 사람이 차고 넘친다. 마치 시골장터처럼 시끄럽고 산만하다. 잠시만 앉아 있으면 내 정신은 가출 일보직전이 된다. 어쩔수 없이 또 탈락이다. 
    
 자주 가던 카페에서 장시간 책만 읽었다. 이제 한 번 써 볼까 하고  겨우 마음을 고쳐 먹은 뒤 딱 한 문단을 썼을 때였다. 바로 옆 자리에 십 년 만에 만난 동창으로 추측되는 아저씨, 아줌마 무리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공포감도 함께 몰려왔다. 오랜만에 만난 동창들은 반가움에 눈이 멀어 옆에서 조용히 글쓰기에 몰두한 나 같은 사람에 대한 신경은 1도 쓰지 않는다. 그렇다고 카페 본연의 목적에 충실한 동창 아줌마, 아저씨들에게 ’좀 조용히 수다 떨어주세요 ‘라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할 수도 없다. 카페에서 조용히 해 달라는 주문이 오히려 말도 안 되는 일이니까 말이다. 슬그머니 노트북을 챙겨서  그곳을 빠져나온다. 오늘은 여기도 탈락이다. .


분명 나는 까다로운 고객이다. 하지만 카페에 연연하는 나름의 이유는 있다. 환경의 변화를 주고자 함이다. 집에 있으면 빨래도 널어야 하고 청소도 해야 하고 택배도 받아야 한다. 맛있는 음식의 유혹에서도 벗어나기 힘들다. 이런 집에서 도망치겠다는 구실을 만드는 것이다. 또한 카페에 있으며 빨리 결과물을 만들어야 한다는 압박에서 열심히 쓰게 된다. 글쓰기 보다 백 배나 더 재미있는 일이 손짓하는 유혹에서 빠져나오기 위한 나름의 자구책이다.
     
올 1월에 리스본 여행을 다녀왔다. 리스본을 여행지로 선택한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좋아하는 작가 '페르난두 페소아'의 나라라는 것도 그중의 한 가지였다. 하지만 아이들과 함께 하는 일정이다 보니 내가 가고 싶은 곳만을 고집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페소아의 생가를 보기로 했던 애초의 계획은 포기하기로 했다. 여행의 마지막 날, 리스본 중심가 쇼핑 거리를 아이들과 함께 걷다가 체력이 방전되었다. 때마침 내리기 시작한 비도 천근만근의 다리 무게에 보태어져서 쉬어가라는 신호를 연신 보내왔다. 아이들끼리 도시를 더 돌아보는 동안 나는 근처 카페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마침 광장의 중앙부에 노천카페가 눈에 띄었다. 날씨는 제법 쌀쌀했지만 쇼핑을 마친 아이들이 찾기 편하도록 노천에 자리를 잡았다. 주문을 위해 뒤를 보다가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 카페 브라질리아‘... 작가 페소아의 단골 카페였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여행 오기 전 페소아에 관한 자료를 찾을때면 카페 ’ 브라질리아‘도 함께 따라 다녔다. 의도치 않게 찾아든 카페가 페소아의 단골 카페라니. 비 오는 노천카페에서 독한 위스키(난 분명 cafe를 주문했는데 어찌 된 일인지 종업인이 독한 술을 가지고 나타났다. 아마도 ‘꺄페’라는 내 발음을 나만 알아들은 모양이었다.ㅠㅠ) 한 잔을 앞에 두고 갑작스레 여행자의 감상에 빠져 들었다.


<불안의 서>를 여기서도 썼을까? 하는 생뚱맞은 의문이 에스프레소 한 잔을 앞에 두고 검은 실크햇에 동그란 테의 안경을 낀 페소아가 집필에 몰두한 모습과 함께 떠올랐다.
     
유럽은 옛날부터 카페 문화가 발달해서 헤밍웨이가 사랑한 카페, 제임스 조이스가 앉았던 카페 등등이 아직도 건재하며 성업중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하루에도 엄청 난 숫자의 카페가 개업과 폐업을 반복하고 있다고 들었다. 카페가 수다만 떠는 장소가 아니라 동네 주민들의 모임방이 되고 작가들의 작업공간이 되어 몇 백 년을 지나도록 살아남기를 기대해 본다.
     
조엔 롤랑이 해리포터를 썼다는 카페는 이제 관광명소가 되어 세계인이 찾는 곳이 되었다. 혹시 아는가, 지금 내가 다니는 단골 카페가 ‘작가 최**의 단골 카페였대!’ 라며 사람들이 몰려드는 그날이 올지. 상상이 지나쳐 환상특급이 되어 버렸다. 쯧쯧...



인스타: https://www.instagram.com/young_geul.1016/

블로그: https://blog.naver.com/mndstar87 

    

이전 06화 솔직하지만 정돈된 글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