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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영인 마음여행자 Aug 26. 2019

결국 사과를 받아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어려운 것은 ‘일’보다 ‘관계’였다. 일은 시간이 지나고 경력이 쌓이면 점차 익숙해진다. 습득 속도로 빨라지고 갑자기 맡게 된 일이라도 큰 무리 없이 해 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긴다. 하지만 관계는 좀 다르다.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될 때가 있고 뜻하지 않은 일로 갑작스럽게 사이가 틀어지기도 한다. 무엇보다 한 번 멀어진 관계는 회복이 어렵다. 관계의 매듭이 꼬일 때마다 나는 미지수 엑스로 가득 찬, 영원히 탈출할 수 없는 방에 던져진 기분이 들었다.


직장생활 초기에는 대부분 참았다. 불의를 봐도 참았고 그 불의가 나를 향하고 있을 때조차도 그냥 넘어가기 일쑤였다. ‘사회생활이 으레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였고 일일이 시시비비를 가릴 여유도 없었다. 뒷감당이 두려워서 이기도 했다. 혼자 구석에서 눈물바람을 하다 말았다. 그러다가 한꺼번에 터져 나오는 분노는 일관성도, 방향성도 없었다. 표정관리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날 것 그대로의 감정을 쏟아 낸 결과는 참담함과 자괴감이었다. 분노 게이지가 연일 적신호를 울려댔지만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일 여유가 내게는 없었다. 어설픈 신입이 감내해야 할 당연한 고통이라 여겼다. 시간이 흘러 직장에서는 경력이 쌓였고 개인적으로는 책을 낸 저자가 되었다.


어느 날 상사 한 분이 무심코 한 말이 불편하고 불쾌하게 다가왔다. 내 안의 무언가를 건드린 것이었다. 분명 그분이 악의가 있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당시 나는 무척 기분이 상했고 당장이라도 달려가 따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순간, 감정이 격해지면 호흡이 빨라지고 가슴이 두근거려 바보처럼 말까지 더듬는 내 모습이 떠올랐다. 뛰어가겠다던 호기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게다가 그분은 달변가였다. 논리적으로 조근 조근 상대를 제압하는 기술로 이름 높으신 분이었다. 괜히 어설프게 대들다가 역으로 당하기 십상이었다. 참는 게 능사였다. 하지만 그 순간 무언가에 끌리듯 나도 모르게 컴퓨터 앞에 앉았다. 상황을 조목 조목 설명한 뒤(혹시 그분이 기억이 안 난다고 할까 봐) 내가 느낀 기분과 참담한 심정을 전달했다. 말 한마디가 상대방에서 어떤 상처를 주는지 최대한 담담하게, 비유와 상징을 섞어 품위 있게 썼다. 감정을 배제한 채 철저히 팩트에만 의지했다. 학창시절 국어시간에 배웠던 건조체가 힘을 발휘하는 순간이었다. 쓰다 보니 상황 정리가 되었고 터질 것 같은 감정의 활화산도 어느새 잦아들었다. 크게 숨을 한 번 들이마신 뒤 마음이 바뀌기 전에 얼른 전송 버튼을 눌렀다. 곧이어 상대가 메시지를 확인했다는 알람이 떴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엎질러진 물이었고 재수 없을 경우 두고두고 골칫거리가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걱정과 달리 그분이 내 자리로 찾아와서 미안하다고 바로 사과를 했다. 반응이 너무 빨리 와서 살짝 당황스러웠지만 짐짓 화가 안 풀린 척, 마치 못해 사과를 받아들이는 척 여유롭게 대응했다. 서운한 감정을 말로만 표현했다면 결코 얻을 수 없는 수확이었다. 이 일로 그분과 사이가 나빠지지는 않았다. 직장 생활은 오히려 편해졌다. ‘저 사람은 글 좀 쓰는 사람이야’라고 각인되었는지 더 이상 시비 거는 일이 없어졌다. 펜은 칼보다 강하다. 아니 목소리 보다 강하다. 정말이다.


‘기억이 안 납니다’ 어디서 많이 듣던 말이다. 신문 1면을 장식하는 권력층의 비리가 드러날 때마다 입이라도 맞춘 듯 등장하는 단골 멘트다. 말로 했을 경우 ‘내가 언제 그랬어?’ ‘기억이 안 나는데..’ 하고 발뺌을 하면 도리가 없다. 가슴을 열어 보여줄 수도 없고 답답한 마음에 혈압만 상승한다. 우겨봤자 오히려 사나운 꼴을 당하기 십상이다. 글은 다르다. 상대의 말과 행동을 꼼꼼하게 기록하고 사과까지 문자로 받아두면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 된다. 발을 빼려고 해도 더 이상 달아난 구멍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바로 꼬리를 내리게 된다. 글로 의사를 전달할 경우 얻을 수 있는 또 하나의 수확이다.


힘 있고 권력 있는 사람만 글을 쓰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힘없고 백 없는 사람일수록 글을 써야 한다.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통로 하나쯤은 확보하고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목소리를 가질 수 없는 사람은 외부에 휘둘리고 그 고통은 온전히 자신의 몫으로 돌아온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들고자 했을 때 지배계층인 양반들의 반대가 극심했다. 만약 한글이 반포되면 일반 백성들과 노비들도 모두 글을 쓸 수 있기 때문이었다. 양반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피지배계층이 문자를 알게 되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영악한 그들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상사와의 갈등을 큰 불화 없이 해결할 수 있었던 것은 내가 가진 작은 무기, 글의 힘 덕분이었다. 경험도 부족하고 다른 가진 것이 없을 때 내세울 수 있는 유일한 무기인 ‘나이’에서도 밀린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지는 그저 못 들은 척 참거나, 아니면 대놓고 불만을 표시하는 서툰 방법밖에 없었다. 두 가지 모두 슬기로운 방법은 아니다. 다행히 ‘글’의 힘에 의지했던 덕분에 답답한 심정을 풀어 놓을 수 있었고 상대의 잘못도 깨닫게 해 주는 일석이조의 효과까지 얻을 수 있었다. 굳이 손익계산서를 따져 볼 필요도 없이 수지맞는 장사임에 틀림없다.


시대가 바뀌었다. 글을 쓰거나, 책을 내는 것이 특별한 사람의 전유물이었던 시대는 지났다. 콘텐츠만 있으면 누구라도 책을 낼 수 있고 독립출판을 통해 저자가 되는 길도 점점 넓어지고 있다. 국민 모두가 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회가 된다면 지금보다 조금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누구나 말하고 쓸 수 있는 시대가 더 이상 먼 미래의 일만은 아닐 것이다. ‘글’의 힘은 미약하지만 어떤 ‘목소리’ 보다 강하다. 


인스타: https://www.instagram.com/young_geul.1016/

블로그: https://blog.naver.com/mndstar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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