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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영인 마음여행자 Feb 19. 2022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영화 <파수꾼> -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 영화 <파수꾼> -



돌이켜보니 나의 고교시절은 빛나는 여고시절도, 다시 돌아가고픈 그리운 시간도 아니었다. 우울하고 흐린 무채색의 그림에 가까웠다. ‘관계’가 전부인 학창 시절이었지만 낯가림이 심하고 내성적이었던 탓에 남에게 쉽게 마음을 열지 못했다. 적성과 흥미는 완전히 무시한 채 천편일률적으로 배워야 하는 교육과정도 잿빛 우울에 회색 물감 한 방울을 더했다. 개별 자아는 소멸된 채 ‘학생’이라는 사회적 자아만 남아 희미한 그림자를 드리웠다. 교실 한 구석에 아무렇게나 버려진 구겨진 종이처럼 존재감을 지웠다.  


모든 걸 거부했지만 책만은 예외였다. 방바닥에 배를 깔고 귤을 까먹으며 책을 볼 때가 제일 행복했다. 가끔씩 만화방에도 들락거렸다. 엄한 부모님은 만화방이 노는 애들(?)이나 출입하는, 범죄의 온상(?)으로 일찌감치 낙인찍은 터였다, 만에 하나라도 들킬 경우 큰 대가를 치러야 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고분고분하고 말 잘 듣는 범생이처럼 보였지만 속은 폭발 직전의 용암처럼 들끓고 있었다. 평균과 일탈의 경계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했다.  


만화방은 신세계였다. 서가마다 빼곡히 꽂혀 있는 만화책과 무궁무진한 스토리의 세계에 나는 금방 매료되었다. 입시가 코 앞이었지만 만화방의 유혹에는 쉽게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누구의 간섭도 없이 좋아하는 만화를 무한정 볼 수 있다는 것, 세상과 완벽하게 차단되어 나만의 시공간 속에 머물 수 있다는 사실은 감격스러울 정도였다. 만화 속 주인공의 로맨틱한 러브 스토리와 화려한 궁중 생활 속에서 펼쳐지는 격정적인 희로애락은 내가 살고 있는 무료하고 심심한 세상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짜릿했다. 나는 시간을 잊었고 공간감도 상실했다, 대리만족에 그칠지언정, 잠깐의 일탈일지언정 그 시간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이 소중했다. 어둑어둑해질 무렵 만화방을 빠져나오면 얼굴에 닿는 초저녁 바람이 그렇게 상쾌할 수 없었다.  또다시 입시와 엄마의 잔소리와 꿈이 없는 우울한 현실이 기다리는 곳으로 돌아가야 했지만 상상과 판타지의 세계는 현실의 버팀목이 되기에 충분했다.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 정글의 법칙이 여학교라고 다르지 않았다. 여고생들의 계급을 결정짓는 3요소는 부와 성적, 그리고 외모였다. 외모도 달렸고 부자는 더더욱 아니었기에 공부라도 썩 잘했으면 좋았겠지만 불행하게도 고등학교 입학 후로 성적은 꾸준하게 하향 곡선을 그리는 중이었다. 마음에 드는 과목은 적었고 하기 싫은 교과는 너무 많았다. 하지만 나의 취향과 의지는 한국의 교육 시스템 안에서는 가볍게 무시되었다. 똑같은 과목을 억지로 머리에 집어넣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세계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었다. 무기력하게 교실에 앉아서 공상으로 시간을 때우는 것 외에는…


외모가 출중한 아이들은 여고생들의 시기와 질투를 한 몸에 받았지만 선생님들의 사랑 또한 듬뿍 받았다. 교복 자율화 세대인 우리는 교복 대신 사복을 입었다. 옷 값 걱정에 허리가 휠 게 뻔한 학부모들의 맹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교복 자율화는 강행되었다. 사복만 있으면 학생들의 자율의식이 저절로 쑥쑥 자라는 것인지, 옷과 자율이 무슨 상관관계가 있는지 알 수 없었지만 우중충한 교복 대신 사복을 입는다는 사실에 우리는 열광했다.  


하지만 부잣집 아이들이 최신 유행하는 브랜드 로고가 박힌 치마와 블라우스로 집안의 부를 마음껏 자랑할 때 없는 집 아이들은 교복보다 별반 나을 게 없는 옷으로 일주일을 버텨야 했다. 옷이 몇 벌 없기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나이 차가 없는 여동생이 둘이나 있는 덕분에 옷을 지키느라 아침마다 전쟁을 치렀다. 방심하는 날에는 그날 입을 옷이 사라지는 대참사가 기다리고 있었기에 한시도 긴장의 끈을 늦출 수 없었다. 늦잠을 자거나 정신을 딴 데 팔았다가는 전날 고심 끝에 세팅해 놓은 옷이 사라지는 눈앞이 캄캄해지는 경험을 해야 했다. 울고 불고 악을 쓰다가 추레한 옷차림으로 터덜터덜 집을 나서야 했다.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다’는 엄마의 잔소리까지 등에 업고서…  


뜨거운 여름에 찬물에 발을 담근 채 이름은 자율이나 실제는 강제인 야간 학습에 시달려야 했던 악몽 같은 시간도 지나왔다.


용케도 견뎌왔구나 싶을 만큼 외로움과 소통 부재라는 이중고에 시달렸던 그 시절을 떠 올리게 했던 영화 <파수꾼> 은 그래서 더욱 각별하게 다가왔다.  


거칠게 요약한다면 ‘왕따로 인한 고교생의 자살’쯤 될 것이다. 한 소년이 죽었다. 아들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아버지는 서랍 속에서 발견한 사진 한 장에 의지에서 아들의 친구를 찾아 나선다. 하지만 한 명은 전학을 가버렸고 나머지 한 명은 자퇴를 한 상태로 장례식에조차 참석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뭔가 석연찮은 구석이 있음을 느낀 아버지는 여러 번의 시도 끝에 아이들을 만나게 되고 사건의 실체가 하나씩 드러나게 된다.  


엄마의 부재와 아버지의 무관심 속에서 결핍을 느끼며 학창 시절을 보내던 기태에게 있어 친구의 존재는 단순한 친구 그 이상의 의미였다. ‘친구들의 인정과 사랑’을 통해서만 존재를 확인받았다. 기태가 희준과 동윤에게 절박하게 매달린 이유였다. 자신의 상처를 드러내는 순간 무시당하고 버림받을까 두려워 힘을 과시하는 사이 기태 곁에는 아무도 남지 않게 되었다.


관심받기 위해 끊임없이 ‘나 좀 봐줘’라고 칭얼댔지만 관계에 서툴렀던 기태는 힘으로 친구를 묶어두고자 했고 이로 인해 결국 설자리를 잃게 되었다. 궁지에 몰린 기태는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라고 묻지만 ‘처음부터 너만 없었으면 돼’라는 동윤의 싸늘한 답이 돌아왔다. 기태에게는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말이었다. 세상 어디에서도 설 자리를 찾지 못한 기태는 결국 ‘외롭다’는 말을 속으로 삼긴 채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너고 말았다. 공동체가 붕괴된 교실에서 권력에서 밀려나고 자존심을 다친 아이들의 선택지는 생각보다 좁다. 기태에게 차라리 죽음이 더 쉬웠던 이유다.  


기태의 죽음으로 남겨진 아이들의 고통도 외면할 수 없다. 어느 누구의 잘못도 아니지만 사건은 죽은 자와 살아남은 자 모두에게 상처로 남았다. 동윤은 ‘그때 그 말을 하지 않았더라면’이라는 가정법속에서 평생을 살아가야 할지 모른다.  시간이 지난 후 그 시절을 돌이켜보면 ‘아무것도 아닌 일’이지만 터널의 한가운데 있을 때는 누구도 알지 못했다. 그 결과 아이들에게는 가해자와 피해자, 방관자라는 무서운 이름만 남았다,


세 아이들을 보며 내가 지나온 터널을 다시금 떠올려 보았다. 그 시기를 무사히 통과한 것은 내가 기태보다 더 단단해서가 아니었다. 삶의 이면을 조금씩 알아차리는 동안 터널의 끝에 다다라 있었을 뿐이었다.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는 것은 철 지난 유행가 가사처럼 낡고 진부한 문장에 불과하고 현실의 ‘성장’은 고통 끝에 맛보는 훈장이 아니라 삶의 모순과 부조리에 익숙해지는 과정이니까 말이다.  


흔들리는 갈대처럼 삶이 불안하고 위태롭다는 것을 기태가 알았더라면 그 시기를 어떻게든 견뎌내고 불완전하나마 어른으로 성장하지 않았을까. 자신의 전철을 밟고 있는 또 다른 기태에게 한 마디쯤 던질 수 있는 여유 정도는 갖춘 그런 어른으로 말이다. 동윤과 희준도 서로가 던진 공을 주고받으며 터널을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었을 것이다.  


죄의식과 부채감이라는 무거운 짐을 떠안은 동윤이 홀로 선로에 남았다. 용서받지 못한 자, 동윤이 감내해야 할 죄책감의 무게가 끝이 보이지 않는 선로처럼 아득했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을까? 누군가의 탓이었을까? 시스템의 오작동 때문이었을까? 아무것도 알 수 없지만 어두운 터널 속에 갇혀버린 아이들에게 따뜻한 위로를 전하고 싶다.  


그리고 그 시절의 나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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