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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영인 마음여행자 Dec 07. 2022

완벽하지 않아서 완벽한 생애

조해진 <완벽한 생애>

가난을 주홍글씨처럼 새기고 살아온 윤주는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는 일이 사치가 되어 버릴 정도로 암담한 상황에 놓여 있다. 돈 때문에 꿈의 자리가 점점 협소해진 자신에 대한 연민으로 울분을 토로하는 연인과도 헤어졌다.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애쓴 것뿐인데 자신의 노동이 모욕당하고 누군가의 농담거리로 전락하는 장면을 지켜본 후 윤주는 결국 제주행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그곳에는 아버지의 과거 때문에 법조인으로서의 꿈을 포기한 뒤 활동가로 살아가는 미정이 있다. 미정은 대학 시절 모의재판에서 베트남 전쟁 문제가 거론되자 자신이 더 이상 법정에 설 수 없음을 깨닫고 서울을 떠난다. 하지만 대학 후배가 자신이 일하는 인권재단 변호사로 부임하는 순간 갈등한다. 신념 때문에 더 이상 법조인의 삶을 살 수 없다고 결정했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후배처럼 재판정에 서고 자본주의의 삶 속으로 안전하게 편입한 자신을 상상하고 괴로워한다. 성 정체성 때문에 일찌감치 사랑을 포기한 시징에게 어느 날 갑자기 사랑이 찾아온다. 하지만 은철은 짧은 사랑의 흔적만 남긴 채 다시 자신의 나라로 돌아갔다. 홀로 남겨진 이유를 알 수 없었던 시징의 삶은 지루한 연극이 되고 말았다. 어느 날 그는 연인의 흔적을 좇아 한국행 비행기에 오르고 영등포에 있는 윤주의 방에 머무르게 된다. 시징은 윤주의 방에서 은철을 떠올리고 윤주는 알 수 없는 끌림으로 시징에게 속마음을 담은 메모를 남긴다. 미정이 살고 있는 공간 역시 누군가에게 잠시 빌린 것이지만 윤주를 위해 기꺼이 한편을 내어준다. 시위에서 쓰러진 시징에게 은철은 자신의 방을 내어 주었듯이…


소설 속 윤주, 미정, 시징은 삶의 어느 영역에서 깊이 상처받았다. 관계나 신념, 사랑에서 상처받은 이들은 각자만의 도피처로 떠난다. 사랑을 잃은 자리는 외로움으로 흥건하고 신념을 위해 자신의 삶을 포기한 자의 아이러니 속에는 공허와 이율배반이 자리하고 있다. 익숙한 공간에서 벗어나 타인의 공간에 도착한 이들은 그곳에서 타인의 삶을 상상하고 공감하고 마침내 이해하게 된다. 나아가 과거에 발목 잡혀 있던 자신의 삶에 변화를 모색하게 된다. 윤주는 시징의 이메일을 받고 과거에 자신을 모욕한 이들에게 사과를 받아낼 용기를 얻는다. 시징 역시 윤주의 방에서 시절과 시절 사이를 통과하게 되고 새로운 사랑의 계기를 마련할 수 있게된다. 과거 무심했던 홍콩 민주화 운동에도 깊숙 관여하게 된다. 미정의 아버지는 베트남전 참전 군인이다. 의지와 상관없이 역사의 현장으로 끌려나가 무수한 살육의 현장에 내던져진 청춘들은 전쟁이 끝났을 때 생의 전부를 소진한 무력한 노인이 되고 말았다. “나는 사람을 죽이지 않아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는 미정 아버지의 말속에서 시대의 과오로 인해 희생된 개인의 아픔이 배어 있다. 제주에서의 활동가 시절을 거쳐 서울로 올라온 미정은  마침내 아버지의 과거사를 직면하고 이해하게 된다. 


공간을 내주고 타인의 공간에서 살아가는 것은 타인과 삶의 일부를 공유하는 일이다. 방을 내어주는 일은 마음을 내어주는 일이어서 그렇다. 서로 다른 삶을 살아온 이들은 공간을 공유하면서 타인의 삶을 상상하게 되고 미처 하지 못한 말을 조심스럽게 건넨다. 타자와 관계 맺기 시작한 사람은 더 이상 타자에 자리에 머무를 수 없다. 추상은 힘이 없지만 개별적 존재로서의 인간을 깨닫는 순간 그들과 자신을 동일시할 수 있게 되고 그 깨달음이 연대로 나가는 힘이 되기 때문이다. 각기 다른 상황과 공간 속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과거와 현재를 보여주면서 작가는 ‘당신은 잘 살고 있습니까?’라고 질문한다. 


공간과 공간이 겹쳐지면서 타인과 내 마음이 겹쳐지는 경험은 이들의 삶을 변화시켰다.  과거와의 이별을 통해 이들은 자립과 자존을 찾을 수 있게 된다. 지구별의 여행자로 살아가는 이들은 어쩔 수 없이 거쳐야 하는 필연적인 과정일 것이다. 비록 생이 완벽하지 않을 지라도. 계절과 계절 사이에도 간절기가 있듯이 인생에서도 ‘사이’의 공간이 있다. 고통스러운 시간은 타임슬립처럼 건너뛸 수 있으면 좋겠지만 어쩔 수 없이 ‘사이’의 시공간 속에 머물러야 하는 순간이 도래한다. <완벽한 생애>는 그 통과의례에 관한 이야기다.


조해진 작가는 “신념을 따르고 사랑에 진심일수록 상처받고 방황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신념과 사랑이라는 단어들에 함유된 아름다움이 어째서 우리의 마음을 때때로 더 가난하게 하는지, 나는 늘 그것이 궁금했다”고 했다. 진심을 다해 사랑하고 신념에 따라 행동한 결과는 언제나 처참했다. 사랑이 끝났을 때 상처는 오래도록 흔적이 남았고 신념을 따르기 위해서는 무수한 혐오와 배척에도 무감해져야 함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조해진 작가는 언제나 그렇듯 보일 듯 보이지 않는 경계에 선 위태로운 타인들의 마음에 집중한다.  

완벽한 생애는 ‘늙은 청춘’ ‘낡은 새 옷’이라는 말처럼 어울리지 않는 조합으로 보인다. 하지만 모욕을 더 이상 받아들이지 않기로 마음먹은 사람, 잘못을 잘못이라고 말하기 위해 삶의 일부분을 포기한 사람, 타인의 슬픔을 모른 체 하지 않았던 이들의 삶이야 말로 완벽한 생애가 아닐까? 상처 투성이고, 누구 하나 알아주지 않는 보잘것없는 삶일지라도 각자의 생애를 놓치지 않기 위해 애쓰는 삶은 그 자체로 완벽하다. 완벽하지 않아서 완벽한 생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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