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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영인 마음여행자 May 26. 2023

아버지의 부재가 내 삶의 공간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인간이 세상에 태어나서 가장 먼저 마주하는 얼굴이 부모다. 물론 그 순간이 기억나는 사람은 없겠지만 누구나 가장 먼저 만나는 사람이 부모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아버지의 딸로 태어나 오랜 세월을 아버지와 함께 했지만 부모 자식이라는 특별한 관계라고 해서 이별이 오지 않는 건 아니다. 결국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로 시작하는, 카뮈의 <이방인> 같은 문장을 쓰는 날이 내게도 오고 말았다. 


갑작스레 닥친 죽음 앞에서 우왕좌왕하는 사이 아버지는 내 곁을 떠났고 아버지의 부재가 내 삶의 공간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살 만큼 사셨으니까’ 라며 말끝을 흐렸고 ‘그래도 호상이야’ 라며 어깨를 두드리는 사람도 있었다. ‘호상’ 이라니! 아버지의 죽음 이전에도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호상’이라는 단어가 불편했다. 살 만큼 살았으니 잘 죽었다는 말인지, 자식 고생 안 시키고 죽어서 다행이라는 말인지 종잡을 수 없었다. 죽을 ‘사’ 자와 좋아할 ‘호’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착한 사이코패스’나 ‘나쁜 천사’처럼 양립 불가능한 단어다. 내 아버지의 죽음 앞에 ‘호상’이라는 단어가 붙는 건 더더욱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이별은 갑작스럽게 닥쳤다. 아버지의 몸에 부착되어 있던 각종 기계가 일순간 멈추었고 살아있음을 알려주는 산소포화도, 혈압, 심장박동을 알려주는 수치가 일제히 0으로 수렴했다. 한 사람의 삶이 정지하는 순간을 기계가 가장 먼저 포착했다. 의사가 달려왔고 곧이어 사망진단이 내려졌다. 


삶에서 죽음으로 넘어가는 문턱을 아버지는 너무 쉽게 넘어갔다. 채 하루가 걸리지 않았다. 이 세상에 미련이 없다는 듯,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생과 사의 경계를 훌쩍 넘어가 버렸다. 아버지가 떠난 자리에는 휠체어와 색 바랜 잠옷 바지, 오래 신어 낡은 슬리퍼만이 남았다. 더 이상 입지 않고 신지 않을 사물들이 생명력을 소실한 채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주인을 잃어버린 물건은 아버지가 살아 계셨던 지난밤과 어딘가 달라 보였다. 집 전체가 무(無)의 공간으로 변했다. 가구와 전자제품은 생기를 잃었고 주인을 잃어버린 물건은 제 자리를 찾지 못한 채 방황하고 있었다. 낡은 사진첩과 아버지가 쓴 글, 서류 뭉치는 삶의 잔해처럼 어수선했다. 손때 묻은 사전과 필기도구도 낯선 모습으로 변했다. 더 이상 아버지의 온기가 닿지 않은 사물은 생명의 불길이 사그라들었다. 아버지를 과거에 남겨 둔 채 나만 홀로 도망쳐 나온 것 같았다. 






상주가 되어 보낸 삼일은 뿌연 안갯속을 헤매는 듯 멍한 상태로 보냈다. 텅 비고 무감각한 의식 속에서 기계적으로 일을 처리했다. 이따금씩 두통이 몰려왔다. 오래전에 앓았던 편두통이 다시 재발한 걸까. 관자놀이 부분이 아팠다. 눈알이 빠질 것 같은 통증이었다.


영정 사진 속의 아버지는 젊었다. 말끔하게 차려입은 정장과 단정한 헤어스타일이 낯설게 느껴졌다. 출퇴근을 하면서 평생을 입었던 옷인데 생경스러웠다. 손님을 맞고, 장례지도사의 안내에 따라 묵묵히 절차를 따랐다. 염을 마친 아버지의 모습을 뵈러 갔다. 소실되기 전 온전한 육체를 마주하는 마지막 시간이었다. 살이 빠져 핼쑥한 얼굴, 뼈만 남은 한겨울 나목 같은 아버지의 육체는 이미 단단하게 경직되어 자칫 잘못하면 부러질 듯 위태로웠다. 마지막 인사를 하라고 장례지도사가 말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하고 싶은 말이 무척 많았는데 정작 아버지 앞에서는 한 문장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뇌손상 환자가 기존에 알던 단어를 모두 잃어버린 것처럼 언어는 머릿속에서만 맴돌았다. 대책 없이 눈물만 흘러내렸다. 결국 속으로 아버지와 인사를 나누어야 했다. ‘아버지 사느라 고생하셨어요. 이제는 편히 쉬세요’라고. 





가엾지 않은 인생이 없겠지만 자식이 느끼는 부모의 삶은 모질고 고통스럽다. 어쩔 수 없는 연민의 감정이 밀려온다. 어렸을 때는 미처 몰랐던 아버지의 삶을 아버지의 나이를 통과하면서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다. 젊은 아버지가 무슨 생각을 했고 어떤 슬픔과 분노를 안고 살았는지 여전히 알 수 없지만 어렴풋하게 마나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화장장은 인산인해였다. 어디선가 생명이 태어나는 이 순간에도, 누군가의 생은 소멸되고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세상에 온 흔적마저도 사라질 것이다. ‘죽음’이라는 한국어는 어둡고 축축한 감정이 묻어있다. 영어의 ‘death’에서는 황량하고 쓸쓸한 느낌이, 독일어 ‘tod’를 발음하면 갑자기 끝나 버리는 듯한 ‘단절’ 감이 느껴진다. 나라마다 언어가 다르지만 소리에서 느껴지는 정서는 어딘가 비슷하다. ‘죽음’이라는 단어가 내포한 감정은 국적을 불문하고 동일하므로 언어 속에 자연스럽게 배어 든 것이리라. 화장을 마친 아버지의 육체는 한 줌 재로 돌아왔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일상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죄책감과 슬픔, 후회로 얼룩진 감정은 터진 둑처럼 시도 때도 없이 흘러넘쳤다. 책을 읽다가, 영화를 보다가, 운전대를 잡은 고속도로 한가운데서도 주체할 수 없는 울음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렸다. 





시간은 무자비하게 흘러갔다. 아버지가 다시 방문을 열고 느린 걸음으로 들어오는 일은 이제 꿈이나 환영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 되었다. 아버지가 부재한 세상이 낯설기만 한데 시계나 달력이 가리키는 방향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직진을 명령했다. 아버지가 사라진 세상에서 삶을 이어가야 하는 아이러니 앞에서 반항했지만 시간은 전쟁터의 장군처럼 엄하고 무서웠다. 꿈에라도 아버지가 보이면 ‘아버지 잘못했어요’라고 간절하게 빌고 싶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한 번도 내게 나타나지 않았다. 


분명한 슬픔이 점차 희미해지고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가물가물해지는 때가 오면 어떻게 되는 걸까. 의지와 무관하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언젠가 아버지의 기억이 흐릿해지고 아버지가 포함되지 않은 삶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는 순간이 온다면... 하나의 삶이 분해되고 해체되는 과정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행위 자체가 아버지에 대한 배신은 아닐까 라는 생각에서 벗어나기 힘들었다. 슬픔과 죄책감의 파도가 다시 나를 덮쳤다





어지럽게 흘러가는 시간의 포화 속에서 잠시  빠져나와 추억 속으로 도피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무자비하고 몰염치한 시간은 일상으로 빨리 복귀하라고, 시계와 달력이 가리키는 곳으로 돌아가라고 나를 몰아붙일 것이다. 추억은 기억을 되새김질하는 것이고 기억은 이해하려는 몸짓이다. 아버지와의 추억을 끄집어내어 한 남자의 생을 이해하려 애썼다. 


길고 긴 터널의 끝, 빛이 보이지 않는 어둠 속을 천천히 걸어가는 아버지는 어느 순간 사라졌다. 아버지가 포함된 내 삶은 이제 끝났다. 내 앞에는 아버지 없이 보내야 하는 새로운 생이 망망대해처럼 펼쳐져 있다. 나는 오래도록 뒤척이며 잠을 이루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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