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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꾸꾸 Jun 23. 2020

행복하고도 강제적인 시에스타

세 번째 여행 읽기

 시곗바늘은 열 한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적당한 식당에서 아침을 대충 챙겨 먹고 사막 투어를 예약하기 위해 여행사를 몇 군데 둘러볼 작정으로 호텔을 나선 지 두 시간째. 

 간판에 영어로 ‘엄마의 손맛’이란 문구를 내건 조그만 식당에 들어가 올리브 내음 가득한 튀니지언 샐러드와 바게트를 시켜 먹었다. 그 후 다섯 군데의 여행사를 둘러보며 사막 투어 가격을 흥정하며 예약을 마쳤다

 투어는 늘 일몰 즈음에 시작되기 때문에 그때까지 사막 위에 지어진 이 도시를 샅샅이 둘러볼 계획이었다. 하지만 무슨 영문인지 아침에 문을 열었던 가게들마저도 문을 닫아버리고 드문드문 보이던 도로 위의 사람들도 하나둘 어디론가 숨어버렸다. 더 이상 둘러볼 마땅한 곳도 없는 데다 점점 더 끓어오르기 시작한 후끈한 공기는 이내 조그마한 마을을 화롯불에 올려놓은 듯 뜨겁게 달궈지고 있었다. 그새 더위에 지쳐버린 우리는 하는 수없이 호텔로 돌아와야 했다.  미적지근한 쇳물에 몸을 적시고 에어컨을 틀고 누웠다


 익숙지가 않았다. 직장 때문에 단기여행밖에 할 수 없는 나로서는 하루를 누구보다도 빡빡하고 바쁘게 움직였었다. 그것이 효율적이고도 현명한 여행이라 생각했었다.  부지런히 돌아다니는 것 자체가 나에겐 쉼이라 여기며 합리화를 시켰었다. 평소에는 인지하지 못하고 살아오던 시간의 속도가 여행을 오면 너무도 선명하게 느껴진다. 여행지에서 주어진 시간들이 빠듯하게만 느껴진다. 그래서 항상 시간에 쫓기는 여행을 해왔던 나였다. 

 이 백주대낮에 여느 여행이었다면 지도를 들고 열심히 낯선 골목을 헤매고 있어야만 했다. 그야말로 집중 활동시간에 이렇게 호텔에 틀어박혀 누워있어야 한다는 사실이 내겐 생소하고 낯설었다.


 호텔 안은 너무 고요했다. 햇빛에 떠다니는 먼지의 움직임이 들릴 정도로 적막했다. 창문을 열어 창밖을 내다보니 사람은 물론 게으른 몸짓으로 돌아다니던 개마저 보이지 않았다. 마치 어릴 적 즐겨 보던 ‘이상한 나라의 폴’에 나오는 정지된 세상과 같은 느낌... 호텔 방안에 있는 나를 빼곤 세상의 시간이 멈춰버린 듯했다.

 침대에 누워 눈을 감고 고요함을 음미했다. 지금 이 순간 내가 진정한 휴가를 누리고 있음에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그동안 내가 그토록 바삐 헤매던 그 시간들을 보상이라도 받는 듯이 나는 사막 한가운데 호텔에 누워 평화롭고 강제적인 시에스타를 경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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