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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꾸꾸 Jun 23. 2020

인생 각본

두 번째 여행 읽기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은 서로 상호작용을 한다.'  

 언젠가 본 영화에서 나온 인상 깊은 대사이다. 지금 내게 일어나고 있는 모든 사건이 나와는 아무 상관없어 보이는 누군가에게 일어난 어떤 사건과 깊게 연관되어 있다는 것.

여행은 이 신비한 법칙이 나에게 어떤 변화를 가져다주었는지 체험하게 했다.


 여행 중에 나는 집에 연락을 거의 하지 않는 편이다. 작은 일에도 소스라치게 놀라는 엄마에게 괜한 상상력을 더 해 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항상 집을 나설 때 나에게 무슨 일이 있으면 해외 뉴스에 나올 테니 혹시 연락이 없더라도 너무 걱정하지 마시라고 안심시킨다.


 그 당시 같이 여행하던 선배 둘이 공중전화부스에 들어가 한국으로 안부 전화를 하고 있었다. 부스 밖에서 쪼그려 앉아있다 너무 지루해 하품을 수없이 반복하다 턱이 마비될 지경이었다. 무슨 남자들이 저리도 수다가 심한지 혀를 끌끌 찼다. 그래도 그들은 나오지를 않았다. 기다림에 지친 나도 옆 부스로 들어가 수화기를 들고 집 전화번호를 눌렀다.


“여보세요? 민아!!!!! 당장 한국 돌아오는 비행기표 알아봐라. 이틀 남았다. 꼭 모레까진 한국에 들어와야 한다!”

 전화 연결이 되자마자 엄마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여행을 떠나오기 전 쳐놓았던 취직 시험에서 합격을 했는데 각종 서류를 내야 하는 기한이 딱 이틀 남았다는 것이었다. 본인이 아니면 뗄 수 없는 그 서류는 기간 안에 제출하지 않으면 합격이 취소된다고 했다.

 2003년 그때는 스마트폰이라는 신박한 물건이 없던 때였다. 여행지에서 산 엽서에 air mail이라는 도장을 쾅 찍어 국제우편을 보내 나의 안부를 전했다. 그 엽서는 때론 내가 귀국하고 며칠 뒤에 도착해 "엄마, 저 여행 잘하고 있으니 걱정마세요"란 메세지를 전하며 뒷북을 치기도 했다.  이런 상황이니 내 행선지를 전혀 알지 못하는 엄마는 얼마나 마음을 졸였을까? 내가 전화를 받자마자 20년 전 잃어버린 딸을 되찾은 듯한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불렀다.

 전화를 끊자 하~하고 한숨이 절로 나왔다. 오픈티켓이 아니고 귀국일을 정해놓은 할인 항공권이었기에 이걸 어디서 어떻게 바꿔야 할지 막막했다. 아직 몇 번 쓰지도 않은 비싼 유레일 패스도 본전 생각에 너무 아까웠다. 무엇보다 이틀 내로 한국에 도착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어떻게 준비한 여행인데, 일정의 반의 반도 지나지 않아 이렇게 강제귀국을 해야만 하다니. 그간의 노력과 기대들이 허무하게 흩어져갔다.


 오스트리아에선 한국행 비행기 티켓을 당장 구하는 것이 힘들었다. 급히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달려갔다. 하지만 아무런 정보도 없는 내가 복잡한 프랑크푸르트의 타이항공 사무실을 찾는다는 건 정말 말 그대로 서울에서 김서방 찾기나 다름없었다.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타이항공이 어디 있는지 아느냐고 무턱대고 물었다. 인포메이션 센터에 들어가서 도움을 청했지만 별 수 없었다.

 마음은 조급해 오는데 어떻게 해야할 지 몰랐다. 머나먼 타국에서 길 잃은 한 마리 양이 된 꼴이었다. 어깨에 메고 있던 배낭의 무게만큼 마음도 짓눌렸다.


울어버렸다.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그냥 막 울었다.

 시내 중심가의 어떤 광장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눈물 너머로 행복한 일상을 보내는 사람들이 비쳤다.

 그때 어디선가 바이올린 소리가 들렸다. 거리에서 버스킹을 하는 악사였다. 울고 있는 내 주위를 돌면서 구슬픈 멜로디를 연주했다.

 안 그래도 타지에서 혼자 서러워 죽겠는데 이렇게 생생한 라이브로 BGM까지 깔아주니 무대 위 핀 조명 아래 철퍼덕 주저앉아있는 비련의 여주인공이 따로 없었다.


 감정을 추스르고 고개를 들어보았다. 지나가던 사람들은 의아한 눈빛으로 나를 한 번씩 훔쳐보며 지나갔다. 그제야 엄습하는 부끄러움에 나는 정신을 차리고 배낭을 챙겨 다시 걷기 시작했다. 한두 시간 헤맨 끝에 한 친절한 프랑스 아줌마의 도움으로 겨우 타이항공 지점을 찾았다. 내가 말을 건 사람 중 유일하게 영어로 친절히 답변을 해 준 사람이었다. 그전까지 파란 눈에 노랑머리 서양인은 모두 영어를 잘하는 줄 알았다. 편견이었다.


 극적으로 찾아간 타이항공 사무실에서 나는 반드시 내일 출발하는 한국행 비행기를 타야 한다고 외쳤다. 난색을 표하던 직원은 배가 봉긋 나오고 머리숱이 적은 과장급 정도 되는 상사를 불렀다. 그는 자초지종을 들은 후 사정은 안됐지만 지금 당장 답변은 어렵다고 했다. 내일 아침에 다시 오라는 말만 남긴 채 사라져 버렸다.

 더 이상 떼를 쓴다고 될 것 같지도 않았다. 그 후의 일은 하늘에 그냥 맡겨보기로 하고 발길을 돌렸다. 24 시간 동안 물 한 모금 못 마시고 애를 태웠다. 근처 대형 마트에서 간단히 먹을 것을 사 들고 숙소를 찾아 들어갔다.


 다음 날 아침 근무시간이 시작되기도 전에 나는 마치 빚 받으러 온 빚쟁이처럼 입구 계단에 배낭을 풀고 앉았다. 어제 얼마나 소란을 피웠던 지 출근하던 직원들이 ‘나 너 알아’ 하는 표정으로 반갑게 아침인사를 건네주었다.

 업무가 시작되었다. 사무실로 팩스 하나가 요란스럽게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그 팩스를 읽은 직원이 나를 보며 환하게 웃으며 축하한다는 말을 던졌다. 그리고 새로 발권한 티켓을 건네주며 오전 11시 비행기니 서둘러 공항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기쁨과 안도에 몸이 용수철처럼 솟구쳐 오를 뻔했다. 손에 당첨 로또라도 든 것 마냥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공항으로 달려갔다. 한국행 비행기에 무사히 탑승하였다. 이틀간 긴장으로 굳어있던 몸을 의자에 기대었다. 눈을 감자마자 언제 잠이 들었는지도 모르게 깊게 잠들어 버렸다. 평소 기내식이라면 자다가도 식판을 펼치던 나는 두 번의 식사를 모두 걸렀다. 도착 삼십 분 정도 남았을 때쯤 눈을 떴다. 비행기는 이내 익숙한 한국 하늘 위를 날고 있었다.

 그리고 그날 서류접수 마감을  십분남짓 남겨두고 극적으로 접수에 성공하였다. 이 사건의 결말은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직장인의 삶이다.


 만약 그때 그 선배들이 집에 전화를 하지 않았더라면 혹은 거리에서 내게 결정적으로 길을 가르쳐준 그 프랑스 아줌마를 만나지 못했더라면, 티켓 일정 변경 승인이 나지 않았더라면 그 어떤 작은 사건 하나라도 어긋났더라면 나는 지금의 내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었을까? 생각지도 못한 의외의 삶을 살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오늘 내게 일어난 사소하고 수많은 그 사건들. 이 모든 것이 서로 유기적으로 연관이 되어 하루하루를 만들어간다. 또 그 하루들이 모여 내 인생이 완성된다. 내가 받아 든 인생 각본은 나 혼자만이 아닌 세상 어딘가에 있을 누군가의 인생과 얽히고 얽혀 만들어진다는 것이 마치 무대 위 연극 같다.

 여행은 내게 아무리 바꾸려고 바둥거려도 순리대로 흘러갈 것은 그리 되고야 만다는 것을 말해주었다. 그러니 너무 애태우거나 걱정하지 말라고 일러주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최선을 다하고 불가능한 일은 그대로 흘러가게 한 발 뒤로 물러나 초연해지라고 했다.


어차피 일어날 일은 꼭 일어나고야 마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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