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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꾸꾸 Jun 27. 2020

사막이 아름다운 건 오아시스가 있기 때문이야

여덟 번째 여행 읽기

“아직 자리가 남아있나요?” 

마을 골목 어귀에 서 있는 루아지 운전석 창문을 두드리며 물었다. 루아지는 튀니지의 봉고 택시이다. 도시를 옮겨 다닐 때마다 유용하게 이용했었다. 출발시간도 도착지도 정해져 있지 않다. 그래서 오히려 더 자유롭게 이용이 가능했다. 작은 봉고차에 목적지의 방향이 같은 사람들로 가득 차면 기사는 시동을 걸었다. 

나의 물음에 운전사 아저씨는 뒷좌석에 타라는 손짓을 했다. 그러고는 금방이라도 우리를 깔아뭉개버릴 것만 같은 거대한 배낭 밑에서 탈출시켜주었다. 배낭을 건네고 나니 절로 어깨가 펼쳐졌다. 오랑우탄 같은 자세에서 사람과 흡사한 직립보행이 가능해졌다.   

  

 아침을 먹고 서둘러 호텔을 나선 뒤 루아지를 찾아 동네를 돌아다녔다. 우리의 목적지와 같은 곳으로 향하는 루아지는 직접 찾아 나서야 되었다. 루아지가 필요한 자, 구하라 그럼 얻을 것이다. 

정류소에 정해진 행선지의 교통수단이 시간에 맞춰 딱딱 도착하는 시스템이 얼마나 편리한 것인지 새삼 느껴졌다. 우리는 때때로 여행지에서의 불편함을 통해 내가 가진 편리함의 가치를 깨닫는다.     


 낡고 작은 봉고차에 올랐다. 아랍계 남녀 두 명과 갈색 곱슬이 우아한 프랑스 남자 한 명이 타고 있었다. 봉고 안은 생각보다 좁았다. 맨 뒷자리에 나란히 앉은 뒤 봉고가 승객으로 차기를 기다렸다. 다행히 그리 오랜 시간 지나지 않아 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우리가 탄 루아지는 두즈 시내를 벗어나 끝없는 평야 위를 질주하였다. 흙먼지 가득한 길 위엔 올리브 나무와 오렌지 나무들이 이어졌다. 푸르디푸른 하늘 위엔 뭉게뭉게 구름들이 여유롭게 떠 있었다.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화려하지도 특별할 것도 없는 이 평화롭고 목가적인 장면들은 편안하고 잔잔한 감동을 전해주었다.  

 편안함은 늘 잠을 부르는 법. 어느새 침인지 땀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 축축한 액체가 떨어지는 게 느껴져 정신을 차렸다. 미세한 흔들림과 반복되는 화면들이 또 나를 꿈나라로 인도한 듯했다. 

기온은 40도가 넘었고 실제 체감 온도는 그 이상이었다. 대부분의 루아지는 낡은 봉고로 에어컨 없거나 고장이 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에어컨 바람도 없이 다닥다닥 붙어 앉아 장시간 이동해야 하는 여정은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고됨이 느껴졌다.     


 나와 함께 여행을 자주 가는 친구들은 나중에 여행사를 하나 차리라고 했다. 그러면서 여행사 이름은 딱 맞는 것이 있다며 지어 주었는데 바로 ‘GGS 여행사’. ‘음.. 어감도 나쁘지 않은데?’ 하며 뜻을 물었더니 ‘개고생’의 이니셜을 따서 ‘GGS 여행사’ 란다. 

이상하게 내가 주도한 여행만 따라나섰다 하면 쉬이 잊히기 힘든 극기의 상황과 황당한 사건들이 가득하다 했다. 집 나서면 개고생이라는 말을 체감시켜주는 여행이라 했다. 대신 그래도 어느 여행보다 기억에는 젤 남는다며 욕인 듯 칭찬인 듯 묘한 평을 해주었다. 

사서 고생을 선호하는 편은 아니지만 끝이 훤히 보이는 뻔한 여행은 재미가 없다. 조금은 무모한 도전과 시도를 좋아하는 탓에 뜻하지 않은 개고생 여행 전문가가 되어버린 거다.    


 턱 막히는 숨을 내뱉고자 창문을 살짝 열었다. 순간 훅하고 뜨거운 바람이 얼굴에 들이닥쳤다. 데워진 공기는 따뜻하다 못해 뜨거웠다. 깜짝 놀라 다시 창문을 닫고 멍하니 더위를 온몸으로 느꼈다. ‘그래 뭐 일부러 사우나도 하는데, 게다가 안 더우면 이상한 아프리카 대륙이지 않은가.‘

엉덩이는 땀으로 젖다 못해 녹아내려 의자에 붙어버린 것만 같았다. 저 멀리 시내가 보였다. 분명 건물들이 모여있는 도시였다. 신기루를 본 것은 아니겠지? 눈에 힘을 주고 초점을 맞추자 음식점과 카페들이 눈앞에 펼쳐졌다.    

“아저씨!!!!! 저희 그냥 여기서 내릴게요!!!!! 플리즈”

 끝에 플리즈를 붙이지 않으면 이대로 이 도시를 지나 또 끝없는 평야로 우리를 데려가 버릴 것만 같았다. 힘주어 플리즈~를 외치며 가까스로 루아지를 도시 한복판에 세웠다. 루아지는 도시의 도로 한편에서 우리를 내뱉었다. '우두둑, 우두둑' 구겨 넣었던 몸을 펴자 제 맘대로 흩어져있던 뼈가 제자리로 맞춰지는 소리가 났다. 땀으로 푹 절어버린 우리에게 20대 여성에게서는 맡기 힘든 쉰내가 진동을 했다.


 원래 오늘 우리의 목표는 엘젬 원형 경기장을 보기 위해 수스까지 가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찜솥 같은 루아지를 타고 수스까지 한 방에 간다는 것이 얼마나 의욕만 충만한 무모한 여행자의 발상이었는지 알게 되었다.    

 여기가 어디지? 살고 봐야겠기에 일단 내리긴 했는데 우리가 어디서 내린 줄도 모르고 낯선 도시 한복판에서 길을 잃고 섰다. 지나가는 행인에게 지도를 보여주며 알아낸 현재의 위치는 ‘스팍스’라는 곳이었다. 여행을 준비하며 들어보지도 못한 생소한 도시. 뒤늦게 알게 된 바로는 스팍스가 우리나라로 치면 전라도 어디쯤 해당되는 바다를 끼고 있는 도시라는 것이었다. 

 이미 지친 몸으로 숙소를 알아보러 다니는 것이 힘겨웠다. 그냥 느낌이 오는 호텔 한 군데를 찍어서 들어갔고 바로 체크인을 했다. 시원한 물에 샤워를 하고 침대에 몸을 펼쳤다. 평범하고 사소한 이 행동에 행복감이 밀려왔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는 오래된 이 문구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순간이다.

 배낭 속에 쉰내를 풍기며 구겨져 있던 옷을 빨아 테라스로 나갔다. 운동장 만한 넓은 옥상 테라스가 눈이 부시게 하얀 벽을 두르고 있었다. 뜨겁게 내리쬐는 햇볕 아래 빨래를 탈탈 털어 줄지어 널었다. 개운했다. 


 해가 진 뒤 이 도시를 구경하기 위해 바닷가로 걸어 나갔다. 바닷길을 따라 음식점들이 즐비해있고 여유로운 저녁을 즐기러 나온 그곳의 사람들의 표정에는 활기가 넘쳤다.

 스팍스는 사막에서 만난 오아시스 같은 곳이었다. 어린 왕자는 사막이 아름다운 이유는 오아시스가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바로 이런 여행이 내게는 오아시스였다. 뜻하지 않게 만난 소소한 행복에 미소 짓는 것. 인생을 더 아름답고 풍성하게 꾸며 줄 나만의 오아시스가 있어 참 다행이다. 비록 이번 여행도 개고생을 면치 못했지만 내겐 또 하나의 오아시스를 찾아낸 더할 나위 없이 멋지고 완벽한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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