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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꾸꾸 Jun 24. 2020

사막에 가면 난 조금 나아질지 몰라

네 번째 여행 읽기

 마을을 아이스크림처럼 녹여버릴 것만 같이 이글거리던 태양이 지평선을 향해 내려오고 있었다. 사막의 초입에 투어를 예약한 여행자들이 하나둘씩 모이기 시작했다. 

 사막 투어의 시작은 지프차 탑승이었다. 두툼한 장화를 신은 듯 커다란 바퀴를 장착하고 있는 커다란 차 한 대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운전석에 타고 있던 남자는 짙은 선글라스를 끼고 무표정하게 앉아 있었다. 차에 올라타 짧은 인사를 건넸다. 그는 짙은 눈썹을 살짝 올렸다 내리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사방으로 끝도 없는 사막이 펼쳐졌다. 백미러로 보이는 운전사의 얼굴이 비쳤다. 검은 선글라스 너머로 예측할 수 없는 그의 표정이 의심스러웠다. 이런 사막 한가운데 우리를 버려두고 가버린다고 해도 아무도 찾지 못할 것만 같았다. 

 슬슬 불안해지는 마음을 안고 손잡이를 꽉 잡고 있던 순간. 지프는 사막을 향해 서서히 돌진하였다. 점점 속도를 올리더니 사구를 오르락내리락 전속력으로 훑고 지나갔다. 우리 엉덩이는 공중부양을 하였다가 그대로 의자를 향해 추락하였다. 엉덩이뼈가 와작하고 으스러질 것만 같았다. 

 높은 사구 정점에서 아슬하게 매달려있던 지프는 그대로 미끄럼틀을 타듯 내달렸다. 사막의 청룡열차였다. 스릴을 넘어서 정신줄을 붙들고 있기 힘들 정도였다. 두려움이 커질수록 우리 비명의 데시벨은 높아져만 갔다. 

“아악~~~!!! 사람 살려~~!!! ”

 옆에 앉은 친구들의 비명에 내 고막이 마비될 정도였다. 나의 고음까지 합세하여 비명 삼중창이 이어졌다. 백미러로 보이는 운전사는 눈물 콧물 질질 흘리며 소리를 질러대는 텐션 충만한 우리 모습에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그리고는 재밌다는 듯 더욱더 전력 질주하였다. 그는 눈썹과 입꼬리로 만으로 최소한의 감정을 표현하는 특이한 사람이었다. 그의 표정은 섬뜩했지만 그런 걸 생각할 겨를도 없이 손잡이를 두 손으로 꼭 잡은 채 철렁거리는 심장을 다스려야 했다. 

 표정이 음흉한 운전사와의 롤러코스터가 끝나고 다시 처음 모였던 장소에 내렸다. 이미 우리의 머리는 산발에 쉬어버린 목소리는 걸걸한 쇳소리가 났다.

 투어의 다음 코스인 낙타 타고 숙박을 할 지점까지 가는 일이 남았다. 큰 눈망울을 하고 틀니 뺀 할머니처럼 입을 오물오물거리고 앉아있는 낙타들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낙타의 얼굴은 가까이서 보니 참 사랑스러웠다. 졸린 듯한 커다란 눈망울과 기다란 속눈썹이 성격을 다 말해주는 인상이었다.


 낙타의 등에는 안장 같은 것이 올려져 있었다. 그 위에 올라타자 낙타가 굽혔던 무릎을 펴며 일어섰다. 낙타는 무릎을 두 번 굽히고 앉아있었다. 그 무릎을 다 펴고 일어나니 높이가 상당했다. 

 한 걸음 한 걸음 느릿느릿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바닥으로 내동댕이 쳐질 것만 같아서 조마조마했다. 안장이 편하지 않아 엉덩이도 쑤셔왔다. 오늘은 아무래도 엉덩이에게 정말 미안한 일이 많은 날이다. 불안하고도 불편한 행진은 3시간가량 이어졌다. 주변엔 하늘, 사막 그리고 우리밖에 없었다. 


 낙타 위의 흔들거림이 고단해질 무렵 큰 천막을 하나 쳐놓은 캠프가 보였다. 오늘 우리가 하룻밤을 보낼 숙소였다. 우리와 함께 출발했던 팀원은 5명 정도가 더 있었다. 함께 쿠스쿠스라는 튀니지 전통 음식을 먹었다.

그러던 중 옆으로 시꺼맣고 딱딱한 벌레가 지나갔다. 전갈처럼 생겼다 생각했다. 옆 사람이 전갈이라고 말했다. 그제야 뒤늦게 비명을 꺅! 하고 질렀다. 역시 때론 모르는 게 약이다. 


 저녁 식사가 끝날 무렵 천막 밖에선 튀니지 전통 타악기 소리가 들려왔다. 멜로디도 없는 단순한 장단들이었지만 흥을 돋우기 충분했다. 사람들은 박자에 맞춰서 몸을 흔들기 시작했다. 가운데 피워놓은 불도 흔들리며 춤을 추었다. 인종도 국적도 성별도 모두 뒤섞인 채 모두가 리듬에 몸을 맡겼다. 

 그때 알았다. 춤을 추면서도 명상을 할 수 있구나. 음악에 몸을 실은 채 흔들흔들거리자 머릿속의 잡념들이 하나둘씩 사라졌다. 무아지경이라는 단어를 처음 경험해보았다. 평소 같으면 누군가의 시선이 의식되어 혹은 나 스스로 어색해서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실제로 예전에 거울을 보면서 춤을 한번 춰 본 적이 있다. 정말 못봐주겠단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정형화된 내가 아닌 그냥 날 것의 한 생명체 같았다. 한바탕 부족의 의식처럼 춤판을 벌이고 나니 속이 후련했다. 그 타악기는 코브라를 불러내는 피리 소리처럼 내 안의 흥을 끄집어내는 묘한 기운이 있었다.


 활활 타던 모닥불의 불씨가 점점 작아지고 사람들이 하나둘 잠자리에 들기 시작했다. 스텝 중 한 사람이 사람들에게 두꺼운 이불을 하나씩 나누어 주었다. 그 이불을 들고 마음에 드는 모래 위에 깔면 그곳이 오늘 나의 숙소이자 침대가 되었다. 우리도 모래 위에 이불을 깔고 누웠다. 낮 동안 데워진 모래는 아직 온기가 남아있었다. 

 허리를 펴고 눕자 눈 앞으로 황홀한 밤하늘이 펼쳐졌다. 사막에서의 밤하늘은 평면이 아니었다. 누워있는 나의 머리 위에도 발밑에도 고개를 돌려 보인 지평선의 끝에도 별들이 빽빽한 밤하늘이 보였다. 

 우리는 오랫동안 잠들지 못했지만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눈을 감으면 이 환상적인 풍경이 보이지 않아서, 조금이라도 더 눈 속에 마음속에 담고 싶은 욕심에 말을 아꼈다. 저 광활한 우주에서 보면 나는 이 사막의 모래 한 톨의 존재 같겠구나. 그 모래 한 톨의 시야로 밤하늘을 바라보니 우주가 더 엄청나고 광대해 보였다. 언제 잠이 들었는지도 모르게 별무늬 가득한 밤하늘이란 이불을 덮고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쌀쌀한 새벽 공기에 잠이 깨었다. 모래 위에서의 취침은 의외로 편안했다. 잠들기 직전까지 꿈만 같던 은하수를 바라보며 잠들어서 그런지 자는 내내 행복했다. 덮었던 이불을 걸치고 아침 식사로 화덕에 밀빵을 굽고 있는 스텝에게 다가갔다. 그는 전통차를 건네며 몸을 녹이라고 했다. 간단히 차와 빵으로 아침을 먹고 우리는 다시 낙타의 등 위에 올랐다. 

 사막을 빠져나올수록 왠지 모를 허전함이 마음을 가득 메웠다. 무언가를 두고 온 기분이 들었다. 무엇이었을까? 하지만 뒤돌아 보지 않았다.

 

 식어버린 내 심장을 다시 달궈주기라도 할 듯 사막의 태양은 뜨겁게 이글거렸다. 왜 사막을 꿈꾸어 왔는지 알 수는 없지만 언젠가 꼭 아프리카의 뜨거운 모래바람을 맞아보리라 다짐했었다. 그때가 아마 내 사랑도 내 열정도 모두 식어버린 즈음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작열하는 태양이 싫지 않았다. 슬리퍼 끈 모양만 남기고 새까맣게 타버린 발을 보며 뿌듯했다. 검게 그을린 내 모습이 흡족했다. 이제야 내 속에 어떤 작은 불씨가 되살아나는 듯했다. 

 활활 타올라라. 청춘의 기름을 쏟아부어 줄 테니 오래도록 멋있게 타올라라. 진정 이 곳 아프리카 대륙은 내 열정을 다시 태워줄 분화구와 같은 곳이 틀림없을 것이란 믿음이 피어올랐다. 


 사막을 빠져나오며 느꼈던 허전함의 정체를 이제 조금 알 것 같다. 익숙함에 길들어 버린, 그래서 내가 훌훌 털어버리고 싶었던 나의 모습이지 않았을까? 


 태양과 별과 모래만이 가득했던 사막에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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