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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꾸꾸 Jul 18. 2020

인도여행 팁

 보딩시간은 다가오는데 함께 가기로 한 선배의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수화기 너머로 다급하게 지금 가고 있다는 말만 돌아올 뿐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초조한 마음을 부여잡고 발을 동동 구르는 것 밖이었다.    

 P와 나는 인도여행을 준비하면서 유비무환의 태세로 갖가지 준비를 해두었다. 하지만 무언가 불안하고 찜찜한 마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러던 와중 한 대학 선배와 전화통화를 하면서 인도여행을 함께 하자는 제안을 했고 그 남자 선배는 흔쾌히 오케이를 해주었다. 그제서야 뭔가 다 준비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마도 우리가 빠뜨렸다고 느낀 것이 낯설고 조금은 위험할 수도 있는 여행지에 대한 불안함을 잠재워 줄 ‘안심’ 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우리의 안심을 담당했던 그는 몇 분 차이로 인도행 비행기를 놓쳐버렸다.     

 오후 1시, 우리는 안심 대신 불안함을 옆자리에 앉히고 결국 뉴델리를 향해 날아올랐다. P와 나는 괜찮을 거라는 말을 내밷었지만 서로의 흔들리는 동공은 숨길 수가 없었다.     


 인도. 

 어떤 이는 여행의 마지막 종착지로 인도를 꼽는다. 그만큼 여행 고수들만이 제대로 접근할 수 있는 호락 하지 않은 여행지라는 뜻일거다. 그래서일까? 델리를 향하는 나의 표정에는 긴장감을 넘어서 비장함까지 엿보였다. 

 불확실함은 항상 불안을 더 야기시킨다. 그래서 나는 델리에 내려 이동할 수단과 당장 오늘 밤 숙소를 정해놓기 위해 여행자의 필수품 가이드북을 찾았다. 

 분명!! 가방에 넣었는데 이 책이 당췌 숨바꼭질을 하고 있다. P에게 가이드북의 행방을 묻자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날 쳐다본다. 

비!상!사!태! 

 그제서야 버스에 가이드북을 두고 내려버린 어이없는 우리의 실수를 알아챘다. 전쟁터에 나가는 군인이 총을 두고 간다면 이런 기분일까? 스마트폰이 없었던 그시절 가이드북은 길을 안내하는 구글맵이자 정보통 네이버와 같은 필수품이었다.

 

비행기가 인도대륙에 가까워질수록 막막한 심정이 창밖의 구름처럼 마음을 뒤덮었다.

 공항에 두 발을 내딛자 당장 막막한 문제가 우리를 마중나와 있었다. 숙소문제는 둘째치고 공항에서 어디를 가야하는지 고장 난 나침반처럼 갈 곳을 몰라 갈팡질팡하는 신세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여행은 늘 뜻하지 않은 만남을 이루게 하고 계획하지 않았던 길을 보여주기도 하지 않던가. 마침 두꺼운 가이드북을 종류별로 들고 있는 한국인 여행객의 도움으로 “빠하르간지” 라는 여행자 거리로 함께 택시를 타고 공항을 빠져나올 수 있게 되었다. 그것도 아주 합리적인 택시 가격흥정과 함께.     


 그 이후 우리의 인도 여정이 궁금하다면 한 마디로 이렇게 답할 수 있겠다. 

 “내가 인도에서 본 거라고는 엄청난 인파와 정신없는 거리와 더러운 시장이에요.” 

 숙소, 식당, 기차역 등 이에 대한 아무런 사전 정보도 없이 말 그대로 무식하고 용감하게 닥치는 대로 다녔다. 눈에 보이는 숙소에 들어가 흥정을 하고 길거리에 보이는 먹음직스러운 음식으로 배를 채웠으며 현지인들이 추천하는 장소를 찾아 다니며 그들과 친구가 되었다. 

 비록 남들이 다 본다는 유명한 건축물과 유적지는 놓쳤지만 가이드북에선 눈씻고도 찾아볼 수 없는 인도인 생활의 속살을 보았다. 여행카페에서 이곳만은 놓치지 말자고 강조하던 맛집의 음식은 먹어보지 못했지만 시장에서 파리 500마리와 함께 앉아 마신 바나나 라씨 맛은 그 어떤 유명한 라씨 가게에서 먹는 것보다 잊을 수 없는 청량함과 시원함을 맛보여주었다.     

 만약 다시 내가 인도를 여행하게 된다면 그때도 난 가이드북은 버스에 남겨둔 채 비행기에 오를 것 같다. 그것이 바로 인도다운 인도를 만나고 올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여행 팁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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