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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꾸꾸 Jun 25. 2020

불편함이 준 작은 행복

여섯 번째 여행 읽기

 보통의 사람들처럼 나도 때깔 좋은 5성급 호텔을 좋아한다. 로비에만 들어서도 반질반질 빛이 나는 대리석과 동남아스러운 꽃냄새가 절로 힐링이 되는 듯하다.

 그런 내가 캄보디아 여행 중, 홈스테이로 운영되는 가정집에 하룻밤을 묵기로 했다. 딱히 이유는 없다. 고급 호텔에서 누리는 호사와 맞바꿀 무언가가 있을 것만 같다는 근거 없는 기대감 때문이라고나 할까?    


 씨엠립 시내를 벗어난 툭툭이는 울퉁불퉁 흙길 위를 덜컹거리며 달렸다. 그 위에서 우리는 꿀잠을 잤다. 머리를 쇠 난간에 툭툭 부딪혀가며 열심히 헤드뱅잉을 했다.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과 적당한 흔들거림은 마치 요람 같았다. 가끔은 밖으로 튕겨 나가 버릴 정도의 충격으로 화들짝 놀라 잠을 깨긴 했지만 다시 언제 그랬냐는 듯 잠에 빠져들었다.   

 

 아슬아슬한 요람 위에서 숙면을 마치고 눈을 떠보니 캄보디아 전통가옥들이 눈 앞을 스쳐 지나갔다. 전통가옥이라 표현했지만 그냥 하늘을 가릴 정도의 지붕만 덩그러니 얹힌 판자 집들이 었다. 아기돼지 삼 형제에 나오는 늑대가 후~하고 불면 와장창 다 날아가버릴 것만 같은 허술한 가옥이었다.

‘설마 우리가 묵을 숙소가 저런 서민형 주택 체험은 아닐 테지’ 

그동안의 여행 중 최악의 숙소를 여럿 경험해본 나로서는 왠지 모를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하지만 다행히 툭툭이가 멈춘 곳은 마을과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한 그나마 벽과 지붕과 창문 등 기본적인 가옥 요건은 갖추고 있는 곳이었다. 주변에 이웃도 없이 덩그러니 단칸짜리 집 세 채가 줄 서 있었다. 배경은 단출했다. 하늘, 평야 그리고 집. 


 아이의 손을 잡고 나온 주인은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작고 다부진 인상의 아주머니는 옆동네 순이처럼 순박하게 웃어주었다.  

 주인아주머니에게는 9살 아들과 5살 딸아이가 있었다. 그 둘은 잦은 이방인의 방문에 익숙한 듯 우리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고 조용히 놀고 있었다.

집에 두고 온 두 딸 생각이 났다. 딱 내 딸의 또래인 아이들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이름은 뭐니?” “몇 살이야?” “학교는 다니니?” 

들릴 듯 말 듯 한 목소리로 대답하는 아이들에게 나는 집요하게 붙어서 말을 걸었다. 두 딸을 집에 두고 함께 여행 오지 못한 엄마의 아쉬운 마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홈스테이 예약할 당시 이곳에 아이들이 있다는 정보를 미리 듣게 되었었다. 그래서 나의 두 딸들에게 캄보디아에 있는 친구들을 위해 장난감을 골라 담아 달라고 부탁했다. 아이들은 늘 옆구리에 끼고 다녔던, 하지만 지금은 애정이  식어버려 외롭게 상자 안에 갇혀있는 인형들과 장난감을 선뜻 내어주었다. 그 인형들은 며칠 동안 캐리어 속에 웅크리고 있다 머나먼 곳의 새로운 주인에게 전해졌다.

 흙만이 유일한 장난감이던 두 아이들은 우리가 건넨 장난감을 받아 들자 꽃처럼 활짝 웃었다. 정말 꽃이 활짝 피듯 웃었다. 아이들은 나의 딸들이 그랬듯이 인형을 옆구리에 끼고 종일 함께 했다.     


 그곳은 정말 할 거리라곤 없는 곳이었다. 아이들을 따라 잠시 마을 구경을 다녀왔지만 그것도 30분이면 끝이 나버렸다. 방 앞에 걸린 해먹에 누워 하늘만 하릴없이 바라보았다. TV도 라디오도 와이파이도 없었다. 세상은 조용했고 내 마음도 고요해졌다.    


 저녁은 주인아주머니가 직접 캄보디아 가정식으로 준비해주었다. 주변에 건물이 없으니 사방으로 펼쳐진 평야를 배경으로 마당에 멋진 식탁이 차려졌다. 돼지고기와 청경채 볶음 그리고 고기를 넣고 끓인 담백한 국물요리가 나왔다. 즉석으로 차려진 야외식탁이라 조명은 없었다. 한 손에는 핸드폰 불빛을 높게 쳐들고 나머지 한 손으론 열심히 음식을 입으로 날랐다. 그다지 우아한 포즈의 저녁식사는 아니었지만 음식 맛 하나는 정말 엄지 척하게 만드는 솜씨였다.    


 할 일이 없으니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에어컨은 당연히 없었다. 천장의 선풍기 바람은 모기장을 뚫고 시원함을 전달할 만큼 세지가 못했다. 후덥지근함에 잠을 설치며 방 밖으로 나왔다. 사방이 칠흑 속에 갇혀있고 적막했다. 방 앞 테라스에 놓인 의자에 앉았다. 집을 지키는 커다란 개가 내 발밑에 와 자리를 잡고 잠을 청했다. 고요한 밤이 소리 없이 흘렀다.    


 다음 날 아침을 먹고 마당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는 주인아주머니 옆에 앉았다. 수돗가에 퍼질러 앉아 아줌마 수다를 떨었다.

 “나도 8살, 5살 두 딸이 있어요. 근데 당신의 아이들은 하루 종일 장난감도 없이 참 잘 노네요. 심심하다고 하지 않나요?”

사실 우리 집 두 귀한 아씨들은 늘 새로운 장난감과 신나는 놀거리가 제공되지 않으면 왜 이리 인생 재미없냐는 표정과 말투로 징징거리기 일쑤였다. 나의 질문에 아주머니는 평화롭게 웃으며 이렇게 답했다. 

 “주위가 온통 아이들의 놀 거리잖아요. 넓은 마당과 흙과 나무들. 이것들이 아이들의 장난감이에요”

 풍요로움 속에서 만족할 줄 모르고 사는 ‘요즘의 아이들’을 키우고 있는 엄마로서 반성이 되었다. 부족함은 감사함을 알게 하고 부족할수록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창의성을 이끌어낸다. 이 사실을 잘 알면서도 나는 아이들에게 더 많은 것을 손에 쥐어주려고만 했던 엄마였다.     


 현지인의 가정에서 하룻밤을 보낸다는 것은 여행자에게 환상이자 로망이기도 하다. 관광객이 아닌 여행자로 인정받는 느낌이다. 캄보디아의 그 모든 숙소 중에 이곳을 가장 손꼽아 기대했던 이유도 그 때문이다.

  5성급 호텔의 편리함을 마다하고 불편한 시골로 들어와 보냈던 하룻밤. 왠지 여기서의 하룻밤으로 여행의 맛이 더 깊어진 것 같은 기분이다. 

 푹푹 찌는 듯한 더위를 식혀줄 에어컨 바람도 없고, 곤충도감에 나오는 온갖 희귀한 벌레들이 기어 다니는 숙소. 평화롭다 못해 심심해 돌아버릴 것 같은 지루함. 이 모든 것을 감안하고도 재방문 의사를 불러일으키는 곳.

불편함이 주는 작은 행복을 느낄 수 있게 해 준 이곳이 나는 참 마음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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