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3.0 - 영혼을 울리는 여행이 온다
코로나 이후 시대를 예측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없던 것이 새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이전의 추세 중에서 새로운 시대정신에 맞는 것이 선택적으로 부상한다”
라고 말한다.
여행 마케팅 공부를 시작한 지 대략 2년쯤 되었는데,
트렌드도 보고 강의도 들으면서 내가 느끼는 것도 비슷하다.
근교 여행, 힐링 여행, 웰니스 여행, 초단기 여행, 지역인처럼 살아 보기 여행 트렌드로의 변화는
사실 코로나 이전에도 누구나 예견하고 있던 현상이었다.
여행 경험이 쌓이고 여행이라는 상품 소비가 너무나 대중화, 일상화되다 보니
단순히 새로운 볼거리 정도로는 자극이 너무 약하다고나 할까.
이미 우리 시대는
여행이 1.0, 2.0 시대를 넘어 3.0 시대로 진화하고 있었고,
코로나는 그 시대 흐름을
한 번 더 훅하고 끌어당길 것이다
오래된 마케터, 그리고 신참 관광학도로서
좀 진지하게 옷 끝을 여미고 앞으로 관광 트렌드를 예측해 본다.
중국어를 모르는 여행자가 중국의 어느 소도시 식당에서 어려움 없이 음식을 주문한다.
스페인어를 할 줄 모르는 여행자가 스페인 시골 마을에서 시장 가는 길을 묻는다.
스마트폰 통역 앱을 이용한 소통이다.
스마트폰 앱으로 마음에 드는 숙소를 찾고, 항공편 가격을 비교하는 것은 이제 예사다.
사람들의 여행 경험이 늘어나고, 또 여행을 편리하게 해 주는 기술이 계속 발전하기 때문에
여행사에서 짜 놓은 스케줄대로 움직이기보다는
자신의 취향과 관심사에 따라 여행을 계획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한 마디로 요즘 여행 시장에서는 소비자가 갑이다.
스마트폰에는 온갖 정보와 콘텐츠가 넘쳐나고,
현지인과 소통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현지 정보도 이미 많이 알고 있다.
이런 사람들에게 우리 지역의 관광 자원을 새삼스레 정보로 소개하거나,
광고라는 페이크 스토리로 감성적 반향을 일으키려고 한다면 그야말로 시대착오적인 접근이다.
개인 맞춤형, 체험형, 스치기보다는 머무는 여행이 추세가 되어 가는 마당에
과연 어떤 취향, 어떤 체험을 제공해야 더 오래 머물 것인가가 핵심 과제가 되어야 한다.
사실 이런 고민은 관광 여행 분야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먹는 것, 입는 것, 신는 것 모든 제품 분야에서
이제 소비자들이 정보나 의사결정에서 우위에 서 있다.
브랜드에서 하는 광고를 백 퍼센트 믿지 않은지는 오래되었다.
어쭙잖은 페이크 스토리로 감동을 주려는 노력도 이제 잘 먹히지 않는다.
당연히 젊은 층일수록 더하다.
그러다 보니,
진실을 말하라는 당연한 결론에 도달하게 된 것이 마켓 3.0 패러다임이다.
마켓 1.0은 정보의 시대.
제품에 대해 정확히 말해주면 된다는 속 편한 시기였다.
마켓 2.0은 감성의 시대.
제품을 사용하는 소비자의 인사이트를 잘 발견해 공감가게 이야기해 주면
브랜드에 대한 애정으로 선택하게 된다는 논리였다.
마켓 3.0은 바야흐로 영혼과 진실의 시대이다.
어떤 진실? 물론 소비자에 연관된 진실이다.
우리 사실은 버려질 천막 천을 재활용해서 만들었어.
우리는 사실 성 소수자들을 응원해.
우리 사실 마트 직원과 운전기사까지 모두 정규직이야.
이런 이야기들.
제품 퀄리티, 나의 효용가치와는 직접적인 상관이 없지만
이런 것들이 소비자의 심금을 울리고,
굳이 다른 것 말고 그 브랜드를 선택하게 되는 이유가 된다.
관광여행 시장의 흐름도 과히 다르지 않다.
관광여행 1.0은 장소 헤리티지 중심이었다.
파리의 에펠탑, 로마의 바티칸 성당, 북경의 만리장성, 미국의 나이아가라 폭포.
대표적 관광 랜드마크라는 것이 확고한 셀링 포인트였고,
그런 대단한 곳을 직접 보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은 흥분했다.
관광여행 2.0은 인공적 테마 관광 중심이었다.
내수시장이 있거나 경관, 교통 여건이 좋은 곳에 대규모 테마 파크나 리조트, 콘도가 들어섰다.
홍콩과 도쿄의 디즈니 파크, 발리의 리조트, 버즈 두바이 등이 대표적인 여행지로 부상했고,
럭셔리 크루즈 여행도 성행했다.
항공 및 호텔 숙박업의 본격 성장과 자본주의적 대규모 투자가 핵심이었다.
그러다가 디지털 기술의 발전과 함께,
관광여행 3.0의 시대가 어느새 조금씩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화려함의 극을 찍은 2.0 대비 다소 초라해 보일 수도 있지만,
조금 더 여행자의 자의식이 분명한 소신 있는 여행이 부상하고 있다.
굳이 멀리 지구 반 바퀴를 돌아가지 않아도, 가까운 여행지에서 오래 머물고자 한다.
대표적 관광명소가 아닌 그냥 평범한 동네 마을에 머문다.
특별한 관광을 하지도 않고 소소한 일상적 활동을 할 뿐이다.
이럴 때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핵심 포인트는
놀랍게도 영혼과 진실이다.
그리스 크레타 섬에 가서 한 달을 살고 오는 사람은
그 동네 사람들의 조르바적인 낙천적인 라이프스타일과
길에 자유롭게 떠도는 고양이들을 보러 간다.
일본 오사카 근방 효고현의 탄바 사사야마라는 작은 마을을 찾는 사람들은
버려졌던 시골 마을이 아름답게 재탄생한 모습에서
인간 공동체의 힘을 느끼고 안도한다.
한국의 부산 감천동 문화마을에서도 비슷한 감동을 얻는다.
포르투갈 리스본을 찾는 사람들은 화려한 역사가 지나간 뒤 긴
무명의 세월을 꿋꿋하게 견뎌내는 사람들의 음악, 파두에 영혼의 위안을 받는다.
우리나라 목포, 군산이 그러하고, 경주 역시 그러하다.
한창 미래 여행 트렌드라고 떠들어 대는 ‘머무르는 여행’, ‘일상 중심의 여행’은
사실 결과물일 뿐이다.
사실 중요한 것은 하필 왜 그 여행지를 선택하게 되는지의 핵심 이유 발견과
또 더 나아가 그럼 어떻게 전략적으로 그 이유를 만들어 낼 것인지가 관건이다.
그리고, 이것이 내가 하필 관광 마케팅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이다.
코로나로 인해
여행 시장은 앞으로 더욱더 흥미진진해질 것이다!
아름다운 풍광을 찾고, 이색적인 맛을 찾고
독특한 재미를 탐닉하는 소비 차원의 여행이 아니라.
내 영혼을 치유하는 더 깊이 있는 여행이 부각받는 시대를 맞아
한국의 여행지 역시도 이에 맞는 콘텐츠를 더 많이 고민하고 준비해야 하는 시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