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루씨 May 24. 2023

50대를 걱정하는 여자 마케터 후배들에게

40대 초반의 여자 후배 한 명이 싱가폴로 주재를 나갔다.

직장 생활하는 남편은 두고,

초딩, 중딩 아이 둘을 데리고 갔다.


내가 40대 초반에 아이 둘 데리고 중국으로 갔다가,

5년 주재 후 다시 회사에 복귀하고,

아이 둘을 무난하게 대학에 보낸 후,

다시 회사를 옮겨서 끈질기게(?) 커리어를 이어가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부러워요. 

저도 나중에 선배처럼만 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라는 말을 

농담처럼 하던 후배였다.


당연히 축하를 해 주었다.

우리는 편한 것보다 보람 있는 것에 더 의미를 두는,

일복 터진, 

대행사 출신 여성들 아닌가.


어차피 40대는 이러나저러나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 

나중에 큰 보람을 거둘 수 있도록
판이라도 크게 펴야 한다


그럴 수 있는 기회를 주신 회사에 감사할 뿐.


나와 비슷한 결의 후배가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기 위해 

기어코 견디고 이루어 내리라는 것은 

추호도 의심하지 않는다.




그나저나, 

오래 다니던 강북의 회사를 그만두고, 

테헤란로 근처 회사에서 근무하다 보니,

알고 지내던 3~40대 여자 후배들이 가끔 연락을 하고 

한강을 넘어 찾아올 때가 있다.


이 험난한 마케터의 길을 선택한 것이 맞았던 것일까?

과연 얼마나 더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 묻는 후배들.

특히 회사와 가정에서 모두 큰 압박을 받고 있는 현직 워킹맘들이 많다.


그들이 나에게 원하는 것은?

당연히 냉철한 판단이 아니라, 위로와 격려가 필요해서 온 거다.

잘했다고, 잘하고 있다고.

앞으로도 잘 될 거라고.


특히나 

40대가 되어, 

동기나 후배 중에 임원이 나오는 상황에서도,

내가 과연 얼마나 더 오래 일할 수 있을 것인지? 답답해하는 후배들에게는


내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일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행복하게 일과 생활을 꾸려 나가는 일상을 보여주는 것이,

무엇보다 힘이 된다는 것을 안다.

남자들과 달리 일과 가정을 병행해야 하는 워킹맘들의 

막연한 불안감이 매우 크다는 것도 안다.


나 또한 과거에 그랬으니까.


내가 얼마나 잘 지내고 있는지가 그들에게는 실사례가 되어 줌을 알기에,

나는 오히려 나의 개인 생활, 회사 생활의 강건함을

약간의 과장을 더해 호들갑스럽게 홍보한다.





이름하여, [여자 후배 힐링 코스]도 나름 개발했다.


마침 선릉역 근처에 이름난 추어탕 집이 있다.

이리저리 눈치 보느라 소화가 잘 안 되기 십상인 대행사 여자들에게는 알맞은 

따뜻한 보양식이다.

부추에, 갈아 넣은 미꾸라지에, 마늘, 고추, 산초,, 몸이 금방 따뜻해진다.

이걸 뜨뜻하게 먹고, 커피 한잔씩 들고 선정릉을 한 바퀴 돈다.

비록 천 원이지만 그래도 유료 입장이다 보니, 사람이 그렇게 많지는 않다.


한 30분 정도 걸으면서 

옛날 같이 일하던 시절 이야기를 하하 호호 나누고,

최신 고민 이야기를 듣다 보면, 

후배들의 얼굴이 처음보다 훨씬 밝아지는 것 같다.





뜬금없이 근본적인 질문을 하는 후배도 있다.

마케팅이라는 일을 선택한 게 맞았을까? 

더 유행 안 타는 일을 했으면 더 편하지 않았을까? 묻기도 한다.


내 대답은 정해져 있다.

아니다, 이 힘든 일을 지금껏 하는 걸 보면 너는 이 일이 잘 맞는다

변화무쌍한 것 맞다, 하지만 공부는 어차피 어느 분야에 있건 누구나 해야 한다

IT 개발자라고 해서 공부 안 해도 되는 건 아니다.

세상이 변화하고 새로운 기술이 나오면 사회와 문화는 바뀌게 마련이고

결국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면 계속 공부를 해야 한다.

변호사도 의사도 일류는 계속 공부해야 한다.

인사팀, 재무팀이라고 해서 일에 변화가 없지는 않다.


결국 계속 공부하고 변화하는 자만이 살아남는다.

그리고, 내가 했던 새로운 시도들이 결국 내 자리를 지켜주는 진입장벽이 된다.





임원이 못 되어도,
대기업에서 오래 못 버티어도 괜찮은가 

40이 훌쩍 넘은 나이의 여자에게도 세컨 찬스가 올 수 있을까

하고 묻기도 한다.


나의 대답은 역시 이 질문에도 정해져 있다.

사실 대기업에서 임원이 되는 건 매우 소수의 일이다.

대부분은 임원이 되지 못한다.

하지만 세상은 넓고, 기회는 다양하다.

10년, 20년 이상 대행사에서 버틴 사람이라면

그 경력을 살려 일할 수 있는 곳은 우리 사회에 아주 많다.


새로운 상황에 대한 적응 탄력성을 잃지 않는 게 중요하다.

나이 들었다고 내 스타일을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영역에 들어가면 힘을 빼고 그 일을 배우면서 

필요할 때만 내 강점을 슬쩍슬쩍 발휘하는 정도면 충분하다.


그리고, 네트워킹도 중요하다.

상향 이동을 위한 성공의 네트워킹이 아니라, 심리적 안정감을 주는 편안한 네트워킹 말이다.

나와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며 같이 성장했던 사람들과

삼삼오오 모여서 서로 대화하고 공유하고 힘을 받는 것.

혼자 고민하고 책을 보고 강연을 듣는 것으로 해결 안 된다.

어느 정도의 소속감이 중요하다.


그래서, 사회생활 후 알게 된 마음 통하는 편한 사람들과의 단톡방이 

서너 개 정도 있으면 좋은 것 같다.


궁금한 일 있으면 질문도 하고,

좋은 일 있으면 자랑도 하고,

나쁜 일 있으면 위로도 받아야 하니까.



그리하여,, 

그래도 가끔 찾아와 식사하고 싶은 선배가 되기 위해서는,

나는 

커리어도 꾸준히 관리해야 하고

돈도 후배들 밥 사줄 만큼은 벌어야 하고

일상생활도 건강하고 밝게, 에너지 레벨을 유지해야 한다.

할 수 있을 때까지!


테헤란로 도심 속 조용한 공원, 선정릉. 힐링 장소로 추천합니다!

이전 13화 30년 조직생활비법, 메타인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