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리셰의 힘
“존경하는 재판장님”이라는 말이 있다.
재판장에 가본 적이 없어서, 실제로 이런 낯 간지러운 말을
참석한 그 많은 다양한 입장 관계의 사람들 앞에서 정말 하는 건지 잘 모르겠지만,
드라마나 영화로만 봐도 듣기 민망했다.
저걸 듣는 사람은 얼마나 불편할까?라고 생각하며.
그런데, 최근에 생각이 바뀌었다.
한 후배가 안부 메일을 보내면서 맨 앞에 “존경하는 선배님”이라고 써 보낸 것이다.
우와
질 좋은 마블링처럼, 그 말이 마음속에서 그야말로 살살 녹는 것 같았다.
이런 기분이구나.
이 좋은 것을 왜 나는 선배님들께 안 해줬을까.
나도 분명 존경하고 따르는 선배들이 있었는데.
혹시, 남들은 다 하는데 나만 안 한 건 아니었을까.
그랬을지도 모른다.
도대체 위아래 사람 모두에게 애교라고는 없고,
듣기 좋은 말이라고는 할 줄 모르는 걸
오히려 자랑으로 알고 나는 솔직한 사람이다라고 자위를 하고 살았으니.
너는 솔직한 사람이잖아 라고
주변에서 얘기하는 것을
칭찬이라 생각하고 살았으니 아찔하다
사실, 뭐 그 후배라고 나를 정말 대단한 위인처럼 존경스러워서 한 말이 아님을 안다.
내가 한 일 중에서 극히 일부분이 고마울만한 여지가 있어서
그걸 최대한으로 부풀려서 한 말이었을 게다.
그래도 그 마음이 고마웠다.
극히 조그만 내 노력을, 내 배려를 알아봐 줘서.
그리고 또 시간과 마음을 내어, 따로 말로 해 주는 게 고마운 거다.
뭐, 별로 힘 있는 자리에 있는 선배도 아닌데.
클리셰라고 퉁쳐지는 말들이 있다.
어떤 상황에서 일반적으로 많이 하는, 어찌 보면 뻔한 말들이다.
회사 퇴직하면서 “정들었던 **를 떠납니다”라고 단체 메일을 쓴다든지,
총무팀에 뭔가 요청하면서 “고생이 많으십니다”라고 시작하는 메일을 쓴다든지
이런 상황들 말이다.
너무나 뻔하고 뻔해서
나는 안 해도 되겠지 하고 생략하면
뭔가 좀 차갑고 자기 말만 하는 사람, 주변 배려 안 하는 사람으로
생각될 가능성이 꽤나 높다.
그런 클리셰 중에서 또 꽤나 흔한 말이 “아끼는 후배”라는 말이다.
사실 이런 표현도 퍽 껄끄러워서 대놓고 잘 말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정말 나이가 들수록 예쁜 후배들이 많이 보인다.
꼭 일 잘하는 아이들은 아니다.
정말 예쁜 후배들은 일 잘함과 꼭 일치하지는 않는다.
같이 하는 일에 애착을 가지고 어떻게 해서든 잘해보려는 마음이 있을 때,
그리고 진심으로 나의 판단을 믿고 따를 때,
그때 나도 애틋한 마음이 생겨나는 것 같다.
선배에 대한 마음이나 후배에 대한 마음이나
사실 뭐 그리 대단한 것에 의해 결정되는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선배가 우연히 보여준 어떤 상황 판단, 결정, 배려 같은 것에 마음이 움직이는 것이고,
후배가 어떤 순간에 보여준 연대의식, 나를 의지하고 있구나 하는 뭉클함 같은 것에
마음이 움직이는 것이다.
일 잘하는 사람들만 조직에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이러저러 다른 감성적 능력자들도 역시 조직 곳곳에 숨어 있기에,
다 같이 모여서 뭐라도 같이 하면서,
크건 작건 결과물을 만들어 내게 되는 것이 아닐까.
클리셰도 다 만들어진 이유가 있고, 족보가 있는
귀중한 언어 유산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