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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루씨 Mar 31. 2021

대행사를 벗어나 자유인이 된 그녀

결혼하기 어려운 스타일, 하지만 어쩌라고

이직의 걸림돌, 여행


작년 이맘때쯤, 낯선 번호로 전화가 왔다.

잘 아는 후배가 지원한 회사에서, 그녀의 레퍼런스 체크를 하기 위함이었다.


‘아, 여기 지원했구나. 어떻게든 잘 돼야 할 텐데’

하는 생각에 영혼을 끌어 모아, 

어울리지도 않는 하이톤으로 밝게 대답을 해 나갔다.


“이 분과 얼마나 오래 일하셨나요?”

“다른 팀에서 일한 거 2년, 직접 우리 팀원으로 같이 일한 거 3년. 도합 5년이요”


“장점이 무엇인가요?”

“집중력, 몰입력이 좋아서, 일 하나 시작하면 제대로 끝날 때까지 너무너무 열정적으로 매달리죠.”

어쩌고 저쩌고.


실제로 무슨 일을 했는지, 왜 그만두었는지 꽤나 꼬치꼬치 묻는다 싶었지만

기억나는 선에서 매끄럽게 대답하면서 이럭저럭 마무리 분위기였는데,

마지막 질문이 좀 어려웠다


그러면 이 분의 단점이 뭔가요?


‘아? 뭐라고 말하지? 없다고 말하면 너무 속 보이겠지?’

가장 타격이 없으면서 그냥 인간적인 애교 정도로 끝날 만한, 회사 생활의 단점이 무엇이 있을까.

잠시 침묵.

머리가 멍해졌다.


그러다가 갑자기 머리의 검열을 거치지 않은 속 마음이 툭. 하고 나왔다.


“여행을 워낙 좋아해서요, 일 년에 한두 번은 꼭 해외여행을 가는 편이에요. 

특히 힘든 일 끝나고 나면 대체로 여행을 가요.”


“아? 그래요? 보통 얼마나 길게 가나요?”


핫. 갑자기 진땀이 났다.


일 년에도 여러 번. 그것도 1~2주씩, 
회사에 일이 뭐가 생기건 조금도 아랑곳 않고 
뭐에 홀린 것처럼 여행을 간다고

솔직하게 말할 수는 없었다.


“아, 뭐, 업무 봐서 짧게도 가고, 괜찮으면 1주일씩 갔다 오기도 하고 그렇죠”

라고 말하는데 왠지 찝찝했다.


그 날 전화는 그렇게 찝찝하게 끝났다.

업무상 단점 이야기하는데 왜 갑자기 여행 생각이 나고 난리야.

뭐, 너무 잦은 여행 휴가로

몇 번은 말도 못 하고 속으로 좀 열을 삭이기는 했지만.


몇 주 후 그 후배에게서 연락이 왔다.

지원한 그곳이 잘 안되었다고 했다. 


어이쿠, 나 때문 아닌가?

그게 아니라, 자기도 면접 볼 때 뭔가 핀트가 안 맞아서 자기랑은 안 맞는 회사구나 생각했단다.


암튼 무엇 때문이었는지 그 회사로의 취업은 불발되고, 

코로나 때문인지 다른 회사로의 취업도 여의치 않았다.




타고난 프리랜서, 자유로운 영혼


그리고 일 년,

그 후배는 아직도 프리랜서 마케터로 생활을 한다. 


그런데 그게 뭐 나쁜 뉘앙스는 아니다.

오히려 아주 잘 지낸다. 

그때 그곳이 안 되었던 것이 너무 다행일 만큼.


해외여행을 못 가는 대신, 캠핑에 재미를 붙여

한 달이 멀다 하고 전국 방방곡곡을 누빈다.


여행 좋아하는 친구들 몇 명이랑 모여

코로나 시대 여행 못 가는 사람들을 위로하는 팟캐스트를 진행한다.


연극해보는 게 꿈이었다며 아마추어 연극 공연에 도전,

몇 달간 주말마다 연습한다 하더니, 대학로 소극장 티켓을 보냈다. 


지인들의 소개로 여기저기 브랜딩 프로젝트를 한다며,

요즘 잘하는 마케팅 조사회사 좀 알려 달란다.


몇 번 혼자 프로젝트를 해 보더니 아예 사업자 등록을 하고, 

깜찍한 회사 이름이 들어간 오렌지색 명함을 건네주었다.


한창 유행하는 라이브 커머스를 프로젝트 단위로 맡아서 진행을 하더니,

퍼블리 강사로 나선단다.


저렇게 하고 싶은 일이 많은데 어떻게 매일 출근했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매일 출근하는 그녀를 영접했던 그 시간이 영광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삼십 대 중반을 훌쩍 넘긴 나이.

그 부모님은 안정된 회사, 결혼을 원하시는 듯한데

당분간은 어렵지 싶다.


저렇게 바깥에서 하고 싶은 일이 많은데,

섣불리 결혼한다고 과연 행복할까 싶기도 하다.


물론 본인은 발랄하게 외친다.

좋은 사람 있으면 언제든 결혼한다고.

하지만, 

하고 싶은 일이 너무도 많은, 에너지 넘치는 여자와 함께

에너지 넘치게 살 만한 남자들은 

내 경험상,

세상에 그렇게 많지는 않은 것 같다.


그러니, 한 마디로 결혼하기 어려운 스타일이다.
하지만 어쩌라고

결혼은 목표가 아니라, 행복을 위한 하나의 방법일 뿐인 것을.


캠핑을 함께 가자고 말은 몇 번 했지만 사실은 무섭다. 밤을 새워 같이 놀아야 할 것 같은 부담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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