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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n유미 Nov 22. 2024

딸만 있다는 설움은 비행기에 태워 날려버려

Chap. 1 코리안 조르바

어릴 적 친가에 가면 딸만 둘인 아빠는 늘 핀잔과 비난을 들었다. 

으르신들, 큰아버지들은 “니 아들 하나 안 낳나?”라고 물었고,

삼촌들까지 “형님, 아들 하나 낳아야지요” 라며 한 마디씩 거들었다.


어느 날, 초등학생이던 나는 속이 터져 이렇세 외쳤다. 

“딸이 비행기 태워준다고요! 내가 태워줄 거라고요! 두고 보라고요!” 

소리를 질렀더랬다. 이 에피소드를 반주할 때면 꺼내곤 하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건 네가 뱉은 말에 책임을 지라는 무언의 압박이었다.


실제로 나는 직장인으로 자리를 잡았다는 생각이 들 무렵 부모님을 비행기에 태웠다. 

‘딸이 비행기 태워준다는 말을 실행한 사람이 여기 있습니다~!’


부모님 결혼식 사진 속의 엄마는 앳된 얼굴과 볼록한 배를 하고 있다. 웨딩드레스가 치렁치렁한 캉캉춤 스타일이라 몰랐는데, 자세히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했다. 뱃속에 내가 7개월째 자리를 잡고 있었단다. 그래서 신혼여행을 가지 못했다고 했다. 

‘잠깐. 이건 내 탓은 아닙니다만?!’ 

어릴 때부터 내가 비행기 태워준다고 큰소리친 것으로 보아, 뭔가 책임감이 느껴지도록 가스라이팅 한건 아닌가 의심이 든다.


제주도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지겹도록 운전하는 아빠가 편히 다니라고 택시투어를 예약했다. 

두 분은 분홍색 티셔츠를 맞춰 입고 여기저기 관광하며 사진을 많이도 찍었다. 제주도 택시기사님은 신혼여행 대신 황혼여행을 왔다고 하니, 다소 흥분하셨던 모양이다. 관광지를 몇 군데나 돌았는지, 사진 속 두 분의 표정은 점점 지쳐 갔다.


호텔에서 물값이 비싸다며 밤에 편의점을 찾아 나갔다고도 했다. 그런데 (이 무렵 처음 만든 신용카드도 부모님 손에 들려 보냈는데) 카드 승인 문자가 계속 울린 건 뭐죠? 내가 쏘긴 했지만, 승인 문자에 몇 번씩 놀라기도 했다. 


사람이란 본인에게 유리한 기억만 남기는 법이다. 

효녀 짓 한 번 한 걸 가지고 이렇게 글로 길게 남기다니, 아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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