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abyunion Nov 19. 2022

떠나는 자의 구질구질함

노조는 영원할 것이다

2022 11 12 토요일

퇴사를 합니다.

초대 노조위원장 임기를 한 달 남겨놓고요.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나가는 위원장을 이해해 준 조합원들에게 너무 고맙습니다.


활동가가 뭘 하는 사람인지도 모르고 민언련에 들어와 시용기간-수습도 아닌 시용이란 단어를 사람에게 쓴다는 게 정말 싫지만-을 채우고 나가려고 생각했던 제가 민언련에 애정을 갖게 된 건 순전히 같이 일하는 활동가들 덕분이었습니다. 활동가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 활동가로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멋진 생각을 하고 멋진 일을 하고 있는지 동료들 덕분에 알았습니다. 덕분에 민언련 밖에서 열심히 활동하는 활동가들의 모습에도 관심을 갖게 됐고요. 그들을 응원하는 마음에 후원하는 시민단체도 점점 늘어났습니다.


민언련에 대한 애정이 최고치였을 때, 그래서 이 사람들과 함께 멋진 활동을 지속적으로 하고 싶단 생각이 들었을 때 노조를 만들었습니다. 제가 더 오래 일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존경하는 동료들과 으쌰으쌰해서 무언가 이뤄내고 싶었습니다. 활동가로 하고 싶은 일도 많았습니다. 노조를 만들자고 제안했을 때 흔쾌히 응해준 동료 활동가들 덕분에 더 열심히 하고 싶었습니다. 노조에 들어올 자격이 있던 모든 이가 노조에 가입했고 저는 정말로 열심히 했습니다. 지금보다 더 나은 조직을 만들기 위해 어떤 단체협약안을 만들지 논의하면서, 그런 환경을 만들고 나서 이런 일도 같이 하자, 저런 일도 같이 하자 이야기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회의록을 쓰느라 밤을 새도, 단체협약안을 준비하느라 친구들을 못 만나도, 상사에게 1대 1로 불려 가 불편한 대화를 해도 단협만 체결되면 다 괜찮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1차, 2차, 5차, 10차, 14차… 단체협약안이 체결되는 걸 끝내 보지 못하고, 하나둘씩 동료들이 떠났습니다. 너무 아쉽고 붙잡고 싶었지만 잡을 수 없었습니다. 저도 그 과정에서 너무 지쳤거든요. 노조를 시작할 때 최고치였던 조직에 대한 애정이 점점 떨어져 가고 있었습니다. 이전에는 어려움 없이 진행할 수 있던 일들에 태클이 걸렸을 때, 수년 째 하고 있던 업무를 뺏겼을 때, 노조의 성명에 대해 사과하란 말을 들었을 때, 사측 교섭위원들이 전부 사퇴했을 때, 팀 이동에 대해 일주일만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을 달라고 말했지만 다음날 바로 인사발령이 났을 때, 인사발령을 이해하기 위해 사유서를 달라고 세 번이나 요청했지만 그런 사례가 없단 이유로 거절당했을 때, 상사랑 기싸움하지 말라는 소리를 들었을 때, 휴가를 쓰고 조정회의에 참석해야 했을 때… 어느 순간 사무실에 앉아있는 게 너무 불행하게 느껴졌습니다. 상사가 부를 때는 처방받은 약을 먹고 들어가야 했습니다. 내가 왜 이걸 시작했지? 후회하는 날이 점점 늘어갔습니다.


부모님은 모르지만 일 년 넘는 시간 동안 정신의학과에 다녔습니다. 제게 제일 처음 퇴사에 대해 물었던 사람도 병원의 의사 선생님이었습니다. 제가 상담하면서 말한 내용의 9할이 조직에 관한 것이었거든요.



2022 11 19 토요일

어제 민언련 마지막 출근을 했습니다.

컴퓨터에 있던 자료를 외장하드에 백업해놓고, 컴퓨터를 포맷하고, 인수인계 파일을 작성하고, 자리에 있던  물건을 챙겨서  가지고 나왔는데도 마지막이라는  실감 나지 않아서  느낌이 없더라고요. 시원섭섭할  알았는데 말이죠.


몇 달 전 여러 조직의 노조위원장을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한 분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조직에 대한 애정이 있는 사람들이 노조를 만들고 노조 활동을 하고 있다는 걸 회사가 알아야 한다고요. 조직에 기대도 애정도 없는 사람은 조직을 떠나려고 하지 조직을 발전시키려고 하지 않는다고요. 그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던 저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나는 지금 우리 조직을 사랑하고 있나. 조직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마음이 희망적인가’ 그다지 희망적이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이때는 교섭이 결렬되기도 전인데 말이죠. 인사이동도 진행되지 않은 시점이고요.


퇴사를 결심하기까지 여러 번 주저했습니다. 이미 여러 명의 활동가(이자 조합원)가 그만뒀는데 채용은 이루어지지 않아 남아있는 사람들의 일이 많아지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일은 많아지고 마음을 나눌 동료의 숫자는 적어지는 와중에 노조위원장인 제가 퇴사를 하겠다고 하면 조합원들의 사기가 떨어질 게 뻔했습니다. 지난한 과정을 거쳐서 드디어 단체협약안이 있는 조직이 됐는데 단협이 현실에서 잘 지켜지고 있는지 지속적으로 지켜봐야 한다는 의무감도 퇴사를 망설이게 했고요. 활동가의 목소리가 좀 더 반영된 활동을 할 수 있는 환경이 됐으니 그동안 하고 싶었지만 못했던 일들을 시도해보고 싶은 기대감도 있었습니다. 웃기지만 제가 나간다고 하면 좋아할 거 같은 사람들의 모습을 떠올리고는 ‘더 이 꽉 깨물고 남아있어야지. 절대 못 나가. 이 고생해서 단협 체결해놓고 누구 좋으라고 나가~’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조합 회의 시간에 조합원들에게 먼저 퇴사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교섭 체결이 안된 건 노조의 탓만이 아닌데 마치 노조가 모든 걸 자초해서 조정에 간 것처럼 이야기하는, 조정회의 참석에 휴가를 쓰고 참석해야 하는지 여러 명의 상사에게 여러 통로를 통해 십 수 번을 물어봐야 겨우 대답을 들을 수 있는, 교섭 일정은 사무처회의 자료에 쓸 수 있지만 교섭과 관련해 사측에 질문하는 것은 회의시간에 꺼내지 말고 따로 담당자에게 말하라고 하는, 단협이 체결됐으니 이제까지 서로 서운한 것은 잊고 잘해보자는, 충분한 설득과 배려 없이 인사이동을 해버리는’ 조직에서 건강한 마음을 유지하면서 일을 할 수 없을 거 같다고요.


제 말을 들은 동료들은 잠시 침묵했고 저는 아무 말 못 하는 그 마음을 알 거 같았습니다. 제가 이전에 동료들을 떠나보내며 느낀 마음일 테니까요. “너무 힘들고 불행해서 이제 더는 못하겠어요. 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여기까지가 최선이네요. 미안합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을 어떻게 잡을 수 있겠어요.


퇴사 의지를 내비친 후 실제로 퇴사하기까지 한 달여의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 시간 동안 각자의 방법으로 서운함을 표현하고, 응원을 해주고, 심지어 저를 따로 불러 ‘지금 은지 활동가가 맡은 업무를 내가 대신해줄 테니 은지 활동가는 원래 업무 할 수 있게 해달라고 위에 말해보겠다’는 말을 해준 동료 활동가들에겐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뿐입니다. 조용히 나가면 되는데 구구절절 퇴사 이야기를 쓴 것도 미안함과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여러 사람들이 이런저런 퇴사 선물을 많이 안겨준 덕에 두 손 무겁게 집에 돌아왔어요. 이런 주변인들의 사랑 덕분에 민언련 활동가로, 민언련 노조의 위원장으로 지난 시간을 버틸 수 있었습니다. 주말이 지나고 퇴사한 게 실감이 나면 동료들이 준 선물과 편지를 보면서 눈물을 흘릴 거 같네요.



작가의 이전글 MZ세대가 상사를 싫어하는 이유 네 가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