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탕' 대신 '사랑'

진짜 집이 필요해

by 모은

유치원 하원 버스에서 내린 아이들이 아파트 단지 안으로 우다다 내달렸다. 그런 아이들 뒤를 같은 반 엄마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따라가고 있을 때 한 아이가 울면서 가던 길을 되돌아왔다. 재희였다.

"으아앙~~! 엄마, 민우가 나한테... 으앙!!"

말끝을 흐리며 서럽게 우는 아이 입에서 민우의 이름이 나오자 잔뜩 긴장이 됐다.

"재희야, 민우가 어떻게 했어?"
"민우가... 나한테... 메롱했어!"

메롱...? 고작 메롱이라는 한마디에 울고 있는 재희를 보니 헛웃음이 났다.
재희 엄마는 울고 있는 재희를 달래며 말했다.
"이런 일로 울면 안 돼, 이제 곧 초등학교에 가면 더 심하게 놀리는 아이들이 많을 텐데..."

재희는 6살에 동생이 태어나기 전까지 외동으로 자랐다. 그런 재희를 보며 재희 엄마는 항상 외동 티가 나서 걱정이라는 말을 많이 했다.

"재희야, 혹시 민우가 또 메롱 이라고 하면, 같이 메롱을 하면 돼! 그래도 맘이 안 풀리면, 아주 얄밉게 상관없어!라고 얘기해.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면 괜찮아질 거야."

나는 울고 있는 재희에게 다섯 살 때 비슷한 일로 속상해하던 민우에게 해줬던 말을 그대로 해주었다. 실제로 민우는 그 말을 들은 뒤로는 친구의 놀림에 더는 속상해하지 않았다.

하지만 재희는 민우 같지 않았고, 며칠 뒤 다섯 살 동생이 장난감으로 자신의 머리를 때렸다는 이유로 대성통곡하며 하원 버스에서 내렸다.

선생님 말을 들어보니 그 장난감은 맞아도 아프지 않은 스펀지 장난감이었고, 다섯 살 동생은 악의 없이 그저 장난으로 그런 모양이었다.
울고 있는 재희를 안고 재희 엄마는 뭐, 그런 애가 다 있냐고, 선생님은 애가 맞는 동안 뭘 했냐며 따져 물었다.

재희 엄마의 태도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외동으로 자란 딸은 다 그런가'
편협한 생각이 스쳤다.

나는 민우에게 앞으로 재희에게는 장난을 치지 말라고 당부했다. 장난을 치면 재미있게 받아줄 수 있는 친구에게만 하라고, 재희는 그게 안 되는 것 같으니 조심하는 게 좋겠다고 했다.
민우는 그 말을 아주 잘 지켰고, 웬만해선 재희에게는 장난치는 일이 없었다.

재희의 동생 재인이는 우리 집 막내인 지호와 같은 해에 태어나 같은 어린이집에 다녔다.
재희 엄마는 재인이가 하는 말이라면 뭐든 들어주는 것 같았다.
이를테면, 한겨울에 여름 원피스를 입는 재인이를 어쩌지 못해 옷을 하나 더 들고 선생님께 갈아입혀 달라고 부탁하기도 하고, 하원 때는 다른 신발을 신고 싶다는 아이의 말에 재인이 신발장에 종종 신발이 두 켤레가 있었다.

재희 엄마는 재인이를 이기지 못했다. 가끔 훈육하는 모습이 보이긴 했지만 그건 재인이가 '울기' 전까지였다. 재인이의 울음 앞에는 속수무책이었다. 그 울음을 멈추기에 급급해 정작 줘야 할 것들을 놓치고 있었다.

교사 시절, 몬테소리 교육을 공부한 적이 있다.
몬테소리 교육의 철학은 이 한마디로 정의된다.
'나 스스로 할 수 있게 나를 도와주세요.'
이러한 철학은 비단 몬테소리 교육에만 그치지 않는다.

하지만 아이 스스로 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어렵다.
울음을 멈추게 하고, 불편함을 대신 해결해 주는 게 더 빠르고 덜 힘들다. 하지만 그렇게 자란 아이는 세상의 작은 자극에도 쉽게 무너진다.

박완서 작가의 단편 『집 없는 아이』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그 소녀의 옷차림은 초라하지도 사치하지도 않았고, 머리 모양도 또래의 평균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이 없을지도 모른다고 느껴진 것은, 건물로서의 집이 아니라 세상에서 가장 적당히 편안하고 따뜻한 대화가 있고, 자유와 구속이 조화를 이룬 가정으로서의 ‘집’이었다.”


여기서 말하는 ‘집’은 사랑과 자율이 균형을 이루는 관계의 장소다.
그러나 요즘 많은 가정이 그 균형을 잃어가고 있다. 사랑이 방향을 잃을 때, 집은 더 이상 ‘성장의 공간’이 아닌 ‘불편함을 대신 제거해 주는 장소’가 되고 만다.

부모가 사랑이라 착각하고 손에 쥐어주는 것들은 불량식품 사탕과도 같다.
그것들은 아이를 잠시 웃게 할 수는 있지만

내 아이 스스로 웃게 만들 수는 없다.


진짜 내 아이를 위한다면

사탕 대신 필요한 것은 올바른 사랑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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