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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아이 Jan 10. 2023

간장 계란밥과 국립인싸어협회


 그 일은 내가 초등학교 때 5학년 12살 일 때 일어났다. 누구나 겪는 일이기에 딱히 기록으로써 중요한 일이 아닐 수도 있다. 사소하다면 사소한 그런 일이었다. 


 나는 어릴 때부터 또래에 비해서 키가 큰 편이었다. 키가 큰 덕분에 내 자리는 늘 교실 뒤편이었다. 교실 뒤편에 앉아 있는 나의 모습은 솜털이 점점 빠지기 시작한 아기 새처럼 약간 징그러웠다. 아직 관심과 애정이 필요한 나이였지만 세상은 더 이상 세상은 나를 귀여워하지는 않았기에 늘 조금 울적해 있던 시기였다.


이소를 앞둔 제비


 내 이름은 모아이다. 부모님께서 말씀하시길 작명소에서 5만 페소 내고 받은 이름이라고 한다. 왜 우리나라 돈 단위인 '원'이 아니라 '페소'인지 의아해하실 텐데, 그 이유는 부모님이 칠레에 있는 작명소에서 받았기 때문이다. 대체 왜 하필 부모님은 칠레에 있었는지, 하필 또 칠레에 있는 작명소에 갔는지, 또 어째서 칠레에 작명소가 있는지 알 수 없다. 어쨌든 그 덕택에 내 이름이 모아이가 되었다. 현재 하루하루 5만 페소 이상은 벌면서 살고 있으니, 하루하루 이름값은 하며 살고 있다.


 

 어릴 적 친구들끼리는 서로 별명으로 많이 부르곤 한다. 유독 도수 높은 안경을 껴서 눈이 작아 보였던 친구는 별명이 (올)빼미였고, 이름이 성기목이였던 친구의 별명은 꼬추 나무였다. 똥을 많이 싸던 친구의 별명은 이쟁똥(똥쟁이를 거꾸로 말한 것)이었고, 좀 경계선 지능장애가 의심되는 친구의 별명은 (망)나니였다. 특이한 이름의 소유자인 나의 별명은 의외로 그냥 모아이였다. 모아이라는 이름 자체가 놀릴만한 이름이어서 그런 건지 아님 내가 인기가 없어서 그런 건지 별명은 딱히 없었다. 그러다 어느 날 나에게도 갑자기 별명이 생겼다. 안타깝게 그것은 그렇게 나에게 좋은 일은 아니었다. 


 초등학생 시절, KBS 일요일 밤 21시에는 <개그콘서트>을 했다. <개그콘서트>를 보지 않으면 다음날 학교에서 친구들과 할 수 있는 대화에 낄 수 없었다. 지금처럼 유튜브나 OTT 서비스가 발달한 시기가 아니었기에 <개그콘서트>를 다시 보려면 신문 뒤편 티브이 편성표에서 재방송하는 날을 찾는 수고를 해야만 했다. 그날도 우리 가족은 티브이 앞에 나란히 앉아 <개그콘서트>를 보았다. 그날의 <개그콘서트> 마지막 코너인 봉숭아 학당에선 새로운 캐릭터가 나왔다. 키도 크고 코도 큰 그 개그맨은 체격에 맞지 않게 5살 정도 아이가 입을 만한 옷을 입었고, 머리는 오랑캐마냥 변발을 했다. 흔한 바보 캐릭터였는데, 말실수를 할 때마다 우스꽝스럽게 '모아모아 모아이~~~'거렸다. 딱히 내용이 웃겼던 것은 아니지만 그 개그맨이 모아이를 미묘하게 닮은 것도 웃겼고 그 '모아모아 모아이~~~~~'를 내지르는 톤이 무지 웃겼다. '모아모아 모아이~~~~~'에 내 이름이 들어가 있지만 처음 들었을 때는 별생각이 없었다. 가족들도 아무 거리낌 없이 그저 웃어댔다. 나도 배를 부여잡으며 깔깔 웃었다. 후일담으로 그 개그맨은 '모아모아 모아이~~~' 개그로 반년은 우려먹었고 점차 인기가 식자 결국 다른 캐릭터로 바꾸었다. 하지만 끝내 다시는 인기를 얻지 못했고, 10년 뒤에 음주 운전으로 매스컴에 얼굴을 비추기 전까지 사람들 입에 오르는 일은 없었다. 아무튼.


 다음날 학교에 가자마자 아이들은 나를 보고 키득키득 웃기 시작하였다. '모아모아이~~~ 모아~모아~모아이~~~~'라며 나를 놀려댔다. 다른 친구들도 어제 <개그콘서트>를 재밌게 보았나 보다. 나도 이 정도 놀림은 있을 거라 예상했기에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다. 12살 정도 되면 이정도 너스레는 생긴다. 하지만 그 녀석은 달랐다. 


 그 녀석은 키가 나와 같이 큰 편이었고 얼굴은 새하얬다. 예쁘게 새하얀 게 아니라 시멘트 색깔마냥 하얬다. 그 녀석은 죽어서도 얼굴 색깔이 바뀌지 않을 것 같았다. 그 녀석 엄마는 자기 아들을 멋있게 만들어 보겠다고 그 녀석의 앞머리 한쪽을 노란색으로 염색시켰다. 그리고 그 녀석은 입에 교정기를 달았는데, 학교 급식에 고춧가루라도 들어가 있는 날에는 그 녀석 교정기에 고춧가루가 잔뜩 껴져 있었다. 게다가 그 녀석은 웃을 때 정말 고무줄로 입술을 늘인 듯한 모양이 되어 웃어댔는데 그 모습이 마치 불테리어 같았다. 그러니까 딱 잘라 말하면 못생겼다.



 그 녀석은 침 냄새가 날 정도의 거리에서 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모아모아 모아이~~~모아이~~~'라고 놀려댔다. 그런 집요한 놀림에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나의 12년간의 인생 데이터에는 없었다. 내가 애써 그 녀석을 무시하려 하면 그 녀석은 내가 자기를 쳐다볼 때까지 그 작디작은 눈으로 집요하게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나는 처음에는 '하지 마 하지 마~' 정도의 말로 타일러 보았다. 하지만 그 녀석 주위에 쥐새끼 같은 쪼끄마한 놈들이 그 녀석의 놀림에 깔깔 웃어 버리는 바람에 더욱 자극받은 그 녀석은 나를 더욱 깐족거리며 놀리기 시작했다. 정말 잔인하게도 한참을 놀리다 갑자기 멈추고서는 나에게 '이제 끝났나?'란 희망을 주다가 이내 다시 그 작은 눈으로 나를 쳐다보며 놀리기 시작했다. 놀림은 수업 시간에도 계속됐다. 선생님의 시선을 피해서 혼자 키득키득 웃어대며 나를 놀려댔다. 내가 애써 쳐다보고 있지 않으면 툭툭 치면서 '아 안 놀릴게 안 놀릴게 한번 나 봐봐'라고 하며 징징거리다가 결국에 마지못해 쳐다보면 그 주욱 늘어진 재수 없는 웃음을 지으며 '모아모아 모아이~~~'라고 놀렸다. 


 나는 착하다면 착한 축에 드는 아이였다. 누군가를 때려본 적도. 화낸 적도 없었다. 부모님의 말을 나름 잘 들었고. 선생님의 말도 나름 잘 들었다. 친구와도 치고받고 싸운 적도 없다. 길을 다니다 나쁜 형한테 불려나가서 삥을 뜯길 때도 얌전히 맞기만 맞았지 한 번도 대든 적도 없었다. 하지만 그 불테리어를 닮은 녀석이 나를 놀리기 위해 뚫어져라 노려보았고, 나는 너무나 화가 났고. 그 철없는 무례함에 결국 나는...


울어 버렸다...


게다가 울부짖으면서...


키는 이미 성인 여성만큼은 큰 애가.


5월의 화창한 봄날에.


심지어. 


수업 시간에.


"하지 말라고!!"


나는 벌떡 일어나 외쳤다. 나의 외침에 선생님과 친구들 모두 나를 쳐다보았다. 불테리어 닮은 녀석도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하지 말라고!!! 하지 말라고!!!"


화가 나서 그 녀석을 때렸다. 하지만 내가 마음이 착해서 그런지 세게 때리지 못했다. 그 녀석을 때리는 나를 옆에서 보았다면 때린다기보단 '때찌 때찌'에 가까웠을 테다. 나의 새침한 손놀림에 태즈메니아 데빌같이 생긴 녀석들이 키득키득 웃더니 이내 전염되어 반 전체가 웃음바다가 되었다. 맞고 있던 그 불테리어 닮은 녀석도 쳐 웃기 시작했다. 선생님은 그제서야 '야 너희 둘! 나와!'라며 우리를 불렀다.



나는 울음기가 가시지 않아 꺼익꺼익 울면서 앞에 나갔다. 선생님은 불테리어 닮은 녀석에게 왜 둘이 싸웠냐고 물어보았다. 그 녀석은 얄밉게 또박또박 잘도 대답했다. 둘이 화해하라는 선생님의 명령에 그 녀석은 '미안 안 놀릴게'라며 바로 사과를 하였다. 더 얄미웠다. 나는 서러워서 계속 꺼익 꺼익 울고만 있었다. 선생님은 나에게 울음 좀 그치라며 화장실이라도 다녀오라고 했다. 그렇게 울면서 복도로 나온 나는 그 길로 바로 집으로 가버렸다. 선생님이 정확히 어느 화장실로 가라는 말은 안 했으니, 집 화장실로 가든 학교 화장실로 가든 내 마음이다.


집에는 다행히 아무도 없었다. 부모님은 맞벌이를 하시기에 저녁때 즈음에나 오실 거다. 점심도 먹기 전에 와서 배가 고팠다. 할 줄 아는 음식이라고는 간장 계란밥밖에 없었다.


레시피는 초등학생도 할 줄 아는 정도로 간단하다. 


밥 한 그릇에 참기름 한 숟갈, 간장 한 숟갈, 깨소금 적당히, 그리고 계란 프라이까지 올리면 프리미엄 간장 계란밥이 된다. 여기에 별식으로 멸치볶음을 좀 넣어서 먹고는 했지만 오늘은 없으니 패스하겠다.


쉽고 간단한 간장 계란밥

밥을 먹고 빈 그릇은 싱크대에 놓아두었다. 배도 채웠겠다, 침대에 엎드려 한 번 더 울었다. 울지 않고선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아무래도 나는 망한 것 같다. 왜 울었지? 나조차 이해할 수 없다. 화가 났을 뿐이지 울고 싶지는 않았다. 왜 하필 울었을까.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울면서 태어난다. 소리를 내 우는 것만이 유일한 의사소통 방법이다. 점차 성장하며 언어를 이용한 다양한 신호로 내 의사를 섬세하게 설명할 줄 알게 되면, 우는 방식의 의사소통은 점차 퇴화된다. 하지만 성장 후에도 울음은 어떠한 말보다도 더 확실한 메시지를 사람들에게 전달할 수 있다. 가장 원초적인 방법이 가장 효율적인 것이다. 즉, 내가 운 이유는 내 메시지를 강력하게 어필하고 싶었을 뿐이었던 것이다.



라고 단상에 나가 반 친구들에게 설명하고 싶다. 그렇지만 아무도 이 말에 공감해 주지 않겠지. 심지어 12살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어린놈들이 내 말을 끝까지 들어줄지 만무하다.



띵동 누군가 벨을 눌렀다. 이 시간에 누굴까? 문 너머에서 벨을 누른 녀석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야! 길용이야 길용이!



길용이는 같은 반 친구이다. 그 친구의 별명은 이름 그대로 <로드 드래곤>이었다. 길용이는 짧은 키에 어린아이치고 얼굴에 두꺼비 등짝처럼 뭐가 많이 나있었고, 혓바닥까지 칫솔질을 하지 않는지 입냄새가 좀 났다. 엄마가 자주 집을 나간다는 소문이 돌았었고 그래서 그런지 옷도 자주 갈아입지 않았다. 그래도 선생님에게 뺨을 맞고도 배시시 웃을 정도로 마음 착한 친구였다.


두꺼비 피부에는 독이 있다고 한다.


나는 거울을 보며 눈물 자국을 재빨리 닦은 뒤 문을 열었다. 


'야 괜찮냐?'

'어 괜찮지 괜찮아'


길용이는 나에게 그냥 게임을 하자고 졸랐다. 길용이는 집에는 컴퓨터가 없어서 우리 집에 오면 게임 하자고 조르곤 했었다. 나는 컴퓨터를 켜서 그 시절 국룰 게임인 피카츄 배구를 켜서 같이 하였다. 피카츄 배구를 하는 중에도 불안하였다. 길용이가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해 말을 걸면 어떡하지? 나는 길용이가 그 문제에 대해 다시 물어봐 주길 원하지 않으면서도 원했다. 그냥 내가 먼저 말을 해볼까? 아니면 말까? 이런저런 고민을 하며 랠리를 오고 갔다.


'야 내가 좋은 방법 하나 알려줄까?'

'뭘?'


난 도대체 뭘 말하려는 건지 모르겠다는 투로 대답했다. 


'우리 이모가 <국립인싸어협회>에서 일하는데 대부분 유행어 같은 건 거기서 나온대. 아마 <모아모아 모아이~~>도 거기서 나왔을 걸?'


<국립인싸어협회>라니? 나라에서 할 짓이 없어서 그런 일을 하나? 그리고 '인싸어'라는 게 뭐지?


'거기다가 한번 항의글이라도 올려 봐. 될지 안 될지 어떻게 알아?'

'알겠어. 고마워'


길용이는 나와 좀 더 피카츄 배구를 하다가, 학원 갈 시간이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문득 오렌지 주스 한 잔이라도 대접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그런데 이미 집을 나가기 직전이라 별 말은 하지 않았다. 


'내일 학교에서 보자'


평범한 인사였지만 내 마음을 무겁게 만들었다.


'그래 내일 보자'


 길용이는 그렇게 가버렸다. 그가 집을 나가자 집이 유난히 고요해진 느낌이었다. 나는 검색 사이트 라이코스로 <국립인싸어협회>를 검색해 보았다. 수상쩍은 이름의 <국립인싸어협회>는 정말로 있었다. 홈페이지는 여타 공공기관 사이트 같이 단정하면서도 부드러운 이미지로 꾸며져 있었다. 메뉴 중, <국립인싸어협회> 소개 글에 들어가 보았다. <국립인싸어협회>는 새로운 의미를 가진 유행어를 만들거나 일반인들에게 유행어 요청을 받기도 하며, 유행어를 널리 유통하기 위해 체계적인 컨설팅까지 하는 협회였다. 유행어를 유행시키기 위해 지속적으로 매스컴에 노출시키기도 하며, 이때 개그맨 같은 연예인들을 이용하기도 하였다. 역으로 개그맨들이 자신이 짠 개그를 유행시키기 위해 <국립인싸어협회>에 요청 글을 달기도 하였다. 


 메뉴에 <인싸어 요청 게시판>에 들어가 보았다. 그곳에는 수많은 게시글이 있었다. 이미 유행어가 된 '방가방가', '뷁', '하이루', '헐', '즐' 등을 요청한 게시글도 있었고, '알잘딱깔센', '흠좀무', '안습', '어쩔티비 저쩔티비' 같이 유행어가 되지 못한 게시글도 많이 있었다. 게시물을 눈으로 쭉 훑으며 읽다 보니 '모아모아 모아이~'를 유행어로 요청한 글을 찾아냈다. 게시글에 들어가 보니 글도 기가 막히게 써놓았다. 


[이제 한국도 글로벌 국가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글로벌 국가로 거듭나는 이때, 제가 요청하는 유행어와 관련된 섬 하나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그 섬은 바로 태평양 한가운데에 위치하고 있는 모아이 섬! 모아이 섬은 아주 커다랗고 고요하게 생긴 석상들이 수백 개 존재하는 신비로운 섬입니다. 대한민국 국민들이 신비로운 모아이 섬을 꿈꾸며,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는 꿈을 키울 수 있도록 <모아모아 모아이~>라는 말이 인싸어가 되길 요청하는 바입니다.]


있어 보이는 말이라면 죄다 넣은 글이었다. 단지 자기가 스타가 되기 위해서 쓸 유행어일 뿐일 텐데, 글로벌 운운하는 것이 우습다. 나는 홈페이지 메뉴의 '문의하기'에 들어가서 항의글을 쓰기 시작했다. 12살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어휘력을 발휘하여 글을 썼다. 구체적으로 <모아모아 모아이~>로 내가 어떤 피해를 입은 건지 상세하게 썼다. 다 쓰고 나서는 읽고 또 읽으며 고칠 만한 부분을 수정하였다. 내 인생에서 제일 신경 쓰며 글을 썼던 순간일 것이다.


 수정을 다하고 급히 학원 갈 준비를 했다. 학원은 걸어서 40분 정도 걸리는 곳이다. 그곳은 종합 학원이었는데, 그곳에서 16시부터 20시까지 수업을 들었다. 20시에 종합 학원이 끝나면 편의점에 가서 저녁을 간단히 먹고 21시에 속독학원을 가서 1시간 수업 듣고 집으로 돌아왔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린 아이 치고 가혹한 스케줄이지 않나 싶지만 그래도 크게 불만 없이 스케줄을 소화했다. 그 덕분에 지금도 숱한 야근을 견디며 하루하루 벌어 가며 살고 있다.


 학원 갈 준비를 하는 중에도 머릿속에선 불테리어를 닮은 그 녀석 얼굴이 자꾸만 떠올랐다. 입꼬리가 늘어진 그 얼굴을 떠올리니 목이 좀 메였다. 결국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아 <국립인싸어협회>의 <인싸어 요청 게시판>에 들어갔다. 그리곤 그 녀석 이름으로 된 유행어를 작성하였다. 내가 당한 만큼 그 녀석에게 돌려주고 싶었다. 


 그 녀석의 이름으로 <인싸어 요청 게시판>에 글을 쓰다 보니 어느덧 학원 시간을 훌쩍 넘겨버리고 말았다. 가슴을 잔뜩 졸인 채로 학원에 갔지만 다행히 학원 선생님은 지각한 나에게 크게 뭐라고 야단치지 않았다. 종합 학원을 끝내고 편의점에서 참치김밥과 컵라면으로 요기를 하고 속독학원까지 다녀와 집에 가니 23시즈음 되었다. 퇴근 후 팩을 하고 있던 어머니는 나를 불러 왜 오늘 학교에서 무단 하교하였는지 물어보았다. 선생님이 기어코 연락을 했나 보다. 나는 차마 교실에서 쳐 울은 사연을 말 할 수 없었다. 대답 못한 채 한참을 우물쭈물 거리는 자식을 앞에 두고 어머니는 피곤하셨는지 다음부턴 절대 그러지 말라고 으름장만 놓으시고 팩을 떼러 가셨다. 


 나는 침대에 누웠다. 앞으로 등교까지 8시간 남았다. 8시간 후에는 마주하고 싶지 않아도 현실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지만 졸음을 참기에는 어린 나이였고 많이 걱정한 것치곤 푹 잠을 잤다. 


 다음날 눈을 뜨고 익숙한 몸놀림으로 등교 준비를 하였다. 푹 자고 일어나니 되려 머릿속이 깔끔해졌다. 어차피 마주해야 하는 현실이다. 어머니가 해주신 밥을 먹으니 뭔가 결단이 섰고 그 덕에 눈물이 핑 돌았다. 고등어 가시를 발라내며 어머니 몰래 눈물을 훔쳤다. 어머니, 아들은 오늘 큰 결의를 다지고 학교에 갑니다. 밥을 다 먹고 싱크대에 그릇을 두고 학교로 출발했다. 5년간 다니던 익숙한 길로 교실에 다다랐다. 교실 문을 여니 먼저 도착한 친구들이 나를 반겨주었다. 어제 있었던 일을 굳이 입 밖으로 내뱉는 친구는 없었다. 다행히 눈치는 좀 있는 것일까. 나도 아무렇지 않게 인사하였다. 길용이도 나에게 인사해 주었다. 자리에 앉자 길용이가 나에게 속닥거리며 말했다. '어제 내가 말한 사이트 들어가 봤어?' 나는 <국립인싸어협회>에 대해 길용이와 수다를 떨었다. 하지만 항의글을 썼다고 굳이 말하지 않았다. 뒤에서 항의글을 썼다는 건 너무 소심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불테리어같이 생긴 녀석이 마침내 교실에 들어왔다. 그 녀석이 교실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그 녀석을 의식할 수밖에 없었다. 그 녀석이 나를 또 놀릴까? 놀리지 않을까? 어쩌면 나는 그 녀석이 또 날 놀려주길 기대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그래야 내가 복수하고 싶은 마음이 더 들 테니까. 아, 나는 복수를 하고 싶은 것이구나. 내가 복수를 하려면 그 녀석은 철저하게 나쁜 놈이어야만 한다. 내가 뒤돌아보았을 때, 그 녀석이 날 쳐다보며 히죽거리고 있어야 내가 복수할 마음이 생길 것이다. 만약에 돌아보았는데 그 녀석이 어울리지도 않는 수줍은 표정으로 나보고 미안하다고 말한다면 나도 덕분에 그 녀석에게 미안해질 거고 복수는 물 건너갈 것이다.


 누군가 툭툭 나를 쳤다. 보나 마나 그 녀석이겠지? 그 녀석이 아니면 아쉬울 것 같다. 역시나 돌아보니 그 녀석이었다. 그 녀석은 작은 눈, 작은 동공으로 나를 보며 실실 웃고 있었다. 입 안의 교정기가 침으로 촉촉이 젖어 있었다. 그 녀석이 '흐흐흐흐흐'라고 실실 웃을 때마다 교정기 사이로 침방울이 뽈록뽈록 새어 나왔다. 그 녀석이 음흉한 소리를 내며 나에게 삿대질을 했다. 삿대질의 의미가 무엇인지 묻지 않아도 알 터였다.


 그 순간 생각했다. 아 다행히 이 녀석은 나쁜 놈이구나. 안도(安堵) 비슷한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다음 생각으로 옮겨갔다. 그럼 복수를 할까? 그 녀석이 나쁘다는 것은 알고 있다. 옆에 길용이를 보니 그 녀석을 경멸하고 있었다. 그래. 다른 친구들도 이 녀석을 싫어하겠지. 다른 친구들이 모두 이 녀석을 싫어한다면 복수를 할 필요가 없지 않을까. 내 손에 피를 묻히지 않더라도 괜찮지 않을까? 


"흐흐흐흐흐"


하지만 그 녀석의 웃음소리가 내 귀에 박힐 때마다 나를 겁쟁이라고 놀리는 것 같았다. 


"겁쟁이 겁쟁이 겁쟁이 겁쟁이 겁쟁이 겁쟁이 겁쟁이 겁쟁이 겁쟁이 겁쟁이 겁쟁이 겁쟁이"


 결국 나는 침착하려 애쓰며 가방을 뒤졌다. 서두르는 모습을 그 녀석에게 보여주기 싫었다. 내가 너에게 복수하는 이유는 화가 나서가 아니라 냉정히 네가 나쁜 녀석이라서 그런 거다, 라는 인상을 주고 싶었다. 사실 핑계에 가깝긴 하지만 스스로에 대한 고찰을 할 정도로 여유로운 상황은 아니었다. 


 나는 음악 시간 준비물이었던 단소를 가방에서 꺼내 그 녀석 대갈통에 갈겨버렸다. 아쉽게 그 녀석이 순간적으로 팔로 방어하는 바람에 그리 세게 때리지는 못했다. 어제 내가 이 녀석을 때찌 때찌 때리던 모습이 생각나 그 다음은 더욱 세게 휘둘렀다. 단소에서 휙휙 소리가 났다. 그다음 가격도 그 녀석의 순발력에 막혀버렸고 그다음부터는 개싸움이 되었다. 생각보다 힘이 셌던 그 녀석은 발로 나를 깠고 나는 발랑 뒤집어져서 교실 책상이 와르르 어질러졌다.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벌떡 일어나서 그 녀석 볼을 뜯어낼 심산으로 잔뜩 꼬집었다. 그 녀석은 나의 턱 부분을 노리며 주먹을 내질렀다. 코가 시큰시큰거렸다. 나도 그 녀석 눈깔에 주먹을 내질렀다. 엎치락뒤치락. 추한 싸움을 이어갔다. 싸우는 와중에 여자애들을 슬쩍 보니 경멸 어린 시선으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소리는 안 들렸지만 내가 내심 조금 좋아하고 있던 예쁘장한 여자애가 '야만적이야...'라고 말하는 것을 입모양을 통해 보았다. 올해는 인기가 없겠구나. 원래 없었지만.


 누군가의 '쌤 온다!'라는 외침에 우리의 싸움은 끝이 났다. 선생님에게 우리가 싸운 사실을 들킨다면 둘 다 피곤해지니깐. 우리는 서로를 노려보며 식식거리다 각자 자리로 돌아갔다. 또각또각 소리가 들리더니 선생님은 교실 앞문을 열고 들어왔다. 나는 격해진 내 숨소리를 죽이려고 애썼다. 다행히 선생님은 모른 채 수업을 진행하셨다. 아니, 우리가 싸운 걸 선생님이 모를 리가 없었다. 둘 다 얼굴이 엉망징창이었으니깐. 하지만 선생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일주일에 한 번씩 일어나는 싸움을 하나 하나 짚고 넘어가는 것은 피곤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냥 넘어가 주는 게 우리 입장에서도 좋았다. 우리들만의 싸움이었으니까.


 그날도 하교를 하고 학원을 끝내고 23시에 집에 돌아왔다. 아버지는 나에게 얼굴이 왜 그 모양이냐며 물어보았다. 낮에 비하면 붓기가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얼굴 곳곳에 상처가 남아있었다. 나는 대충 넘어졌다고 둘러댔다. 아버지도 그걸 믿는 건지 안 믿는 건지 모르겠지만 그냥 넘어가셨다. 그리고 그 녀석과는 한 일주일 정도는 서로 쌩까면서 지냈지만 한 일주일 정도 지나자 같이 축구도 하고 술래잡기도 했다. 운동회 때는 같은 팀이 되어 단체 줄넘기도 하였다. 물론 그 녀석은 그 뒤로도 여전히 못생기고 좀 깐족거리긴 하였지만 넓은 아량으로 넘어가 줬다. 


 그 뒤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도 졸업하고 고등학교도 졸업하며 그 녀석에 대한 기억은 잊혀졌다. 초등학생 때 친구와 싸웠던 기억은 그리 추억으로 간직할 만 하지는 않으니깐. 그러다 어느 날 커뮤니티에서 '창렬하다'라는 단어가 유행하기 시작하였다. DJ doc의 멤버인 김창렬이 '창렬 도시락'을 만들어 편의점에서 팔았는데, 안타깝게 품질 좋고 가격도 합리적인 경쟁사의 '혜자 도시락'과 비교가 되었다. 후에 네티즌들은 가격과 품질이 좋은 걸 '혜자스럽다'라는 말로 유행하기 시작했고, 품질이 좋지 않고 가성비 떨어지는 것을 '창렬하다'라는 말로 유행하기 시작했다. 공교롭게 불테리어 닮은 그 녀석의 이름은 창렬이었고, 과거에 내가 <국립인싸어협회> 사이트의 <인싸어 요청 게시판>에 적은 것이 그 녀석 이름을 딴 '창렬하다'였다. 어딘가에서 창렬이가 살아있다면 이 별명으로 고통받고 있겠지. 단순히 우연인 것일까. 만약 우연이 아니라면 어째서 요청한지 십여 년은 지나서 해결된 것일까. 어쩌면 십여 년이 지나서도 12살의 서툰 요청 글을 무시하지 않고 해결하기 위해 애쓴 <국립인싸어협회>의 노고 때문일지도 모른다.


<국립인싸어협회> 공무원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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