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ᐟ 알바몬 EP.10 국제 마라톤 경기 스태프

by 옥찌

스물셋이 되었다. 긴 휴학을 마치고 복학을 하니 밑으로는 후배가 생기고 고통을 나눴던 동기들은 제대를 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함께 과제를 하고 담배를 피우며 미래를 걱정했다. 이번 학기는 또 어떻게 학점을 잘 받을까 궁리하던 중 '꿀 교양'이라고 불리는 강의를 발견했다. 한 학기에 두 번, 스포츠 이벤트에 스태프로 다녀오면 1학점을 거저 준다고 유명한 과목이 있었다. 그래, 대학생은 역시 교양을 쌓아야지~ 라며 수강신청 장바구니에 담았다. 소문대로 인기가 많아 수강신청 몇 분 만에 자리가 다 찼다. 광클의 결과로 나와 내 동기들은 단 번에 성공, 개강하면 보자며 기분 좋게 한 학기가 시작되었다.


'에.. 그래서 우리 과목은 3월에 한 번 대회에 함께합니다.' 간단한 오리엔테이션을 마쳤다. 매주 강의에 출석해야 하는 일반 강의와 다르게 오리엔테이션과 두 번의 집결만이 유일한 수업이었던 꿀 교양. 학생들은 입가에 피어오르는 미소를 숨기지 않았다. 그리고 3월 19일, 2017년 서울 국제 마라톤이 열리는 전 주 다 함께 모여 업무 배정을 받고 간단한 공지사항을 들었다. 감사하게도 스태프와 자원봉사자가 쉽게 구분될 수 있게 스카이 블루 컬러의 바람막이를 지급했고 왜인지 모를 결속감을 느끼며 단체로 입고 다녔다. 첫날에는 집결지를 체크하고 코스를 둘러본 뒤 다 함께 저녁을 먹으러 갔다. 이곳에서는 비슷한 지점에 배정된 인원을 4, 5명씩 짝지어 숙소를 정해줬다. 숙소를 정하는 기준은 집결장소와 가까운 곳이었다. 어색하지만 화기애애했던 식사시간이 지나고 찜질방에서 늦게까지 수다를 떤 뒤 잠을 청했다.


일찍 일어나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이었을까? 등교를 할 때는 알람 소리를 제대로 듣지 못하는데, 돈을 벌기 위해 나와 그런지 눈이 한 번에 떠졌다. 간단히 나갈 채비를 한 뒤 일행과 모여 택시를 타고 이동했다. 동이 이제 막 트고 있는 쌀쌀한 새벽은 바람막이를 입어도 쌀쌀했다. 각자 배정된 지점으로 흩어져 자리를 정비했다.


마라톤은 장거리 코스였기 때문에 몇 m 지점마다 식수대를 설치했는데, 내가 맡은 지점은 초반 1.8km 지점이었다. 스태프는 하나. 자원봉사자는 대여섯 명쯤 되었던 것 같다. 아침 일찍 큰 트럭이 대야에 물을 담으러 돌아다니고 우리는 테이블을 세팅했다. 종이컵에 생수를 부어놓고 스펀지를 적셔 올려두면 참가자들이 지나가며 하나씩 사용했다. 생수를 '마신다'기 보다는 입을 벌려 투척했다. 스펀지는 마시는 용이 아니었지만 급한 대로 짜서 마시는 이들이 있었다. 대체로 스펀지는 더위와 땀을 이겨내는 용으로 사용되었다.


외국인, 젊은 학생, 나이가 지긋하신 어르신 모두가 목표지점을 향해 달려갔다. 지칠 대로 지친 참가자들의 얼굴을 보면 대단하기도 하고 오묘한 긴장감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학생들도 이 감정을 느낀 건지 스펀지를 세팅하며 '파이팅!' '힘내세요!'를 외쳤다. 처음엔 내가 뭐라고 응원인가 싶었지만 누군가에겐 말 한마디가 힘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면 괜히 내가 더 힘이 났다.


경기가 끝나고 식수대를 정리하며 뜨거운 감정이 일렁였다. 저들의 열정이 부러웠고 젊지만 도전하지 않은 내가 민망했다. 내가 나를 이기고 성취하는 경험이 몇이나 되었던가! 나도 나의 한계를 뛰어넘는 경험을 하고 싶다고 생각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물론 그 후로 매 년 마라톤에 참가해봐야지~라고 생각했지만 실천한 건 얼마 전이었다. 역시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나 보다. 그래도 기념품으로 받은 바람막이는 요긴하게 쓰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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