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생각 없이 그냥 합니다. 계속합니다.
어린 시절부터 직장생활을 하면서까지 아니 지금도 항상 뭔가를 잘하고 싶은 마음이 컸습니다. 학교를 다닐 때는 공부를 잘하고 싶었고, 회사를 다닐 때는 일을 잘하고 싶었고, 게임을 해도 잘하고 싶었고, 지금은 글을 잘 쓰고 싶은 마음이 큽니다.
주로 누구보다 빠르게 나아지고 싶었고 나의 기대보다 더 성장하고 싶었기에 제가 주로 연습한 방법은 단거리 달리기였습니다. 특히나 초반에 스타트를 빠르게 하고 가속도를 붙여가는 연습을 오랜 기간 했습니다. 학교에서 시험기간이 되면 특정과목에 온전히 시간을 쏟고 그것이 나의 기대를 충족할 때까지 방밖을 나오지 않았습니다. 회사에서도 어떤 일을 맡으면 점심도 거르고 집에서도 일생각을 하면서 자는 시간을 뺀 모든 시간의 생각을 쏟았습니다. 때로는 잠잘 때마저도 생각을 지속하며 꿈에서 좋은 아이디어를 만나면 휴대폰을 켜서 적기도 하였습니다.
공부나 일과 같이 반드시 해야 할 일뿐만 아니라 매사에 비슷하게 접근했던 것 같습니다. 게임을 해도 잘하고 싶어서 공략집을 찾아보며 연습했고, 새로운 취미를 만나면 더 빨리 궤도에 오르고 싶어 선생님을 괴롭혔습니다. 요즘에는 유튜브나 AI를 많이 괴롭히기도 한 것 같습니다. 이러한 접근은 소기의 성과가 있습니다. 한 손에는 초기의 빠른 스타트와 가속도라는 강점을 가지고, 다른 한 손에는 성실성으로 포장된 쫄보 같은 마음을 가지고 포기하지 않고 나름 잘 해내왔습니다.
양손에 가지고 있던 무기는 중간에 잠시 후퇴하더라도 다시 시도할 수 있는 회복탄력성으로 발현되기도 하였습니다. 학창 시절의 수많은 방학 동안 매번 방학때 할 담대한 목표를 수립하고 실패하고 그렇지만 다음 방학 때는 또다시 가슴 벅차게 목표를 수립하였습니다. 제가 다운 사이클로 접어들 때면 양손의 무기가 저를 다시 업 사이클로 올려주고 그곳에서 둥둥 떠 있을 수 있게 지켜줬던 것이지요.
그런데 최근 몇 년 사이에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일단 가장 큰 변화는 초반에 스타트를 빨리하고 가속을 할 수 있는 절대적인 시간이 급격하게 줄어들었습니다. 예전에는 한 달 이상 집중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다면 요즘에는 3~4일 정도가 최대입니다. 더 큰 문제는 집중상태는 몸과 마음의 지침으로 끝나게 되는데 그 지침상태가 회복되는 속도와 지속성이 짧아졌다는 것입니다. 동시에 실패의 패배감으로 인한 다운사이클은 길어졌습니다. 그러면서 어느 순간부터는 연초에 무언가 목표를 세우지 않게 되었습니다. 지속하지 못하는 저에게 실망하기 싫어서요.
그래서 요즘에는 여전히 존재하는 잘하려는 마음을 유지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잘하려 애쓰지 않는 마음을 함께 두려고 노력합니다. 특히 건강/취미/가족과 같이 제가 오랜 기간 잘하고 싶은 것은 오히려 잘하려 애쓰지 않으려 합니다. 정확하게는 잘하려 하지 않고 가능한 그냥 하려 합니다. 운동을 잘하고 싶어도 절대로 잘하기 위해서 노력하거나 유튜브를 찾아보지 않습니다. 그냥 일상의 루틴과 붙여서 가능한 계속하려 합니다. 건강관리를 위해 살을 빼려 한다고 애써 뭔가를 참지 않으려 합니다. 참으면 더 하고 싶기에 간헐적 단식과 샐러드를 회사의 일상과 붙였습니다. 글쓰기 또한 잘하고 싶지만 뭔가를 찾아보지 않고 그냥 시간을 정해두고 씁니다. 퇴근버스에서 할 것도 없으니 딱 그 시간 동안의 분량으로 씁니다.
그래도 여전히 잘하고 싶은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옵니다. 가끔은 글쓰기를 잘하고 싶은 나머지 글쓰기 강의를 듣기도 합니다. 때로는 운동을 잘하고 싶어 유튜브를 찾아보기도 하지요. 그런데 꼭 애를 쓰면 몸과 정신에 힘이 들어가는 느낌을 받습니다. 부담이 확 느껴지는 순간 잘하려 애쓰는 마음을 하지 않도록 애씁니다. 근데 이렇게 애쓰는 것도 애쓰는 것이라 정확히는 별 생각을 안 하려 합니다. 그냥 합니다.
잘하고 싶은 마음은 부담이지만 그것이 없다면 그냥 하는 것을 오랜 기간 지속하기 어렵습니다. 잘하고 싶은 마음과 잘하려 애쓰지 않는 마음을 모두 가지고 편하게 몸을 맡기고 흔들려야 되는 이유입니다. 그냥 하다 보면 정체되는 느낌이 들면 자연스럽게 잘하고 싶은 마음이 독려해 줄 것이고, 잘하고 싶은 마음이 부담으로 오면 그냥 하는 마음이 편안함을 줄 것입니다. 이렇게 자연스럽게 흔들리며 앞으로 나가는 것이 제가 찾은 오랫동안 잘하고 싶은 것을 지속하는 방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