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덩이를 키우는 것이 아닌 깎아내는 기획
기획을 하다 보면 욕심이 생깁니다. 처음에는 채우고자 하는 세상의 빈틈이 명확합니다. 그러나 그 빈틈을 채우기 위한 방법을 찾다 보면 지식이 쌓입니다. 아는 것이 많아지면서 원래 보려고 했던 빈틈만 보이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옆에 있는 빈틈도 보게 됩니다.
더 넓게 보고 연관된 빈틈까지 보는 것은 바람직한 자세입니다. 단순히 현재 내가 당면한 문제라는 나무만 보는 작은 기획이 아니라, 전체의 돌아가는 판이라는 숲은 보는 큰 기획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때 욕심이 더 깊이 개입하면 문제가 발생합니다. 원래 매워야 되는 빈틈이 아니라 다른 빈틈까지 매우게 됩니다. 심지어 때로는 정신을 차려보면 목표했던 빈틈이 아니라 전혀 다른 빈틈을 메우고 있을 때도 있습니다.
혹자는 어차피 세상의 빈틈을 채우는 것이 기획의 목적이라면 여러 개를 동시에 채우거나, 설사 원래 채우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을 채우는 건이 상관없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상황으로 흘러갔을 때 가장 큰 문제는 아무런 빈틈도 제대로 채우지 못할 가능성이 굉장히 높다는 것입니다. 초기에 뾰족하게 설정한 기획의 의미가 점점 둥글둥글해지고 흐릿해집니다. 점점 말은 많아지지만 핵심을 찌르지 못하게 됩니다. 또 해놓고 나니까 처음의 의미와 완전히 동떨어지기도 합니다.
이렇듯 욕심이 많은 기획은 길을 잃습니다. 길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의미를 덧붙이고 싶은 욕심을 덜어내야 합니다. 기획의 과정에서 의미는 눈덩이를 굴리듯이 커지는 것이 아니라 점점 뾰족하게 깎아내며 좁아지는 감각을 느껴야 합니다. 눈덩이처럼 의미가 커지는 기획을 하면 어느 순간 감당이 되지 않습니다. 호기롭게 선언한 의미를 달성하기 위해 벌려놓은 것을 주워 담을 수가 없는 상황에 이릅니다. 프로젝트로써 기간과 목적을 정하고 일이 마무리가 되는 건이 아니라, 끝맺음하지 못하고 계속 질질 끌고 다니게 됩니다.
그런데 사실 기획에 욕심이 덕지덕지 붙는 이유는 그만큼 열심히 했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많은 것을 보았고 그만큼 많은 고민을 했다는 증거입니다. 욕심은 열심의 증거이며 그 열심의 시간을 버리지 못하는 아쉬움입니다. 가슴속 깊이 들어가 보면 이렇게 열심히 했음에 대한 인정에 대한 욕구입니다. 동시에 회사에서는 내가 한 일에 대한 어필입니다.
그러나 기획자라면 멈춰서 생각해봐야 합니다. 욕심인지 아닌지 판단해 봐야 되고 욕심을 경계해야 합니다. 희망적인 것은 내가 덧붙이고자 하는 것이 욕심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방법이 있다는 것입니다. 덧붙임으로써 의미가 뾰족해지는지 흐릿해지는지를 보는 것이고, 더 직접적으로는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이 짧아지는지 길어지는지를 보는 것입니다. 최대한 짧은 문장으로 설명할 수 있을수록 좋은 기획입니다. 열심의 과정을 덜어내고 단순함을 추구할 수 있을 때 우리는 한 단계 성장할 수 있습니다. 결국 남는 건 단순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