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스모어쿠키의 금요일
여기에 젊은 스모어쿠키가 있었다. 젊은 스모어쿠키는 몸이 튼튼하다는 것 외에는 내세울 것이 없었다. 큰 형님처럼 공부에는 흥미가 없었다. 빨리 일을 해서 홀어머니의 부담을 조금이나마 줄여드리고 싶었다. 공고에 진학했고, 졸업하여 공사판 일부터 배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조금 힘들었지만 일을 하다 보니 금세 익숙해졌다. 공사판 선배가 좋게 봐주어 어려운 기술도 배울 수 있었고, 10년 뒤에는 조그만 공장의 공장장이 될 수 있었다.
결혼도 하고, 자식도 생겼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을 살았지만 크게 힘들진 않았다. 금요일마다 오랜 친구들을 만나 술잔을 한 잔씩 기울이는 것이 인생의 낙이었다.
공장이 잘 되었다. 수출 물량이 달려서 매일 야근을 했다. “김 사장, 이참에 공장을 확장해서 물량을 좀 늘려보는 건 어때?” 납품하는 사장이 나에게 제안을 했다. 이제 큰 아이도 곧 대학교에 들어가니 수입이 더 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공장을 확장했다. 공장을 늦게까지 돌리고 싶어서 집에 가는 시간이 점점 늦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10년 넘게 거래를 이어온 거래처에서 납기일이 지나도 돈을 주지를 않았다. 거래처 사장에게 계속 연락을 했지만 전화가 연결되지 않았다. 불안한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이 전에 납품했던 대금도 아직 받지 못했는데 거래처가 부도가 났다. 이번에는 요청한 물량이 많아서 새벽 늦도록 직원들과 납기일을 맞췄었는데 직원들 월급은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이 앞섰다. 빚 독촉이 시작되었다. 이번에 공장을 확장하느라 여윳돈도 없고, 대출도 한도 끝까지 받아서 더 손을 쓸 수가 없었다.
공장을 키우는 데는 10년이 넘게 걸렸는데 공장 문을 닫는 데까지는 채 1달이 걸리지 않았다. 내가 지금까지 이뤄왔던 모든 것이 모래알처럼 내 손을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집에는 빨간 압류딱지들이 붙기 시작했다. 아내와 아이들은 다 같이 망할 순 없다고 따로 나가서 살겠다고 말했다.
이 현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아침에 눈을 뜨는 게 무서웠다. 처음엔 반주로 시작한 소주 한 병이 어느새 두 병이 되었고, 곧 세 병이 되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가슴이 답답하게 조여 왔다. 술잔을 비우고 나니 손의 떨림도 조금 가라앉는 것 같았다. 속은 텅 빈 것처럼 쓰렸지만, 밥 생각은 나지 않았다. 술이 채 깨기 전에 다시 술잔을 기울였다. 생활비가 떨어져 전 아내에게 돈을 좀 보내달라고 전화를 했지만 받지 않았다. 술을 살 돈이 없었다. 술을 마시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자마자 짜증이 치밀었다.
그러다 문득 술만 마시면 밥상을 엎고, 술을 사오라고 화를 내시던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이 났다. ‘나도 우리 아버지처럼 살다 가는구나. 그렇게 살기 싫어서 발버둥을 쳤는데…’
스모어쿠키는 하얗게 넘쳐흐르는 감정을 꾹꾹 눌러 담았다. 술잔은 그릇이 되어주었다. 하지만 틈새 사이로 감정은 갈무리되지 못한 채 조금씩 새어 나왔다. 술이 깬 아침마다, 어제의 밤은 더 무겁게 남아 있었다.
스모어쿠키는 하얗게 넘쳐흐르는 감정을 꾹꾹 눌러 담았다. 술잔은 그릇이 되어주었다. 하지만 틈새 사이로 감정은 갈무리되지 못한 채 조금씩 새어 나왔다. 술이 깬 아침마다, 어제의 밤은 더 무겁게 남아 있었다.
부마안 TIP — 술은 감정을 잠시 눌러둘 수는 있지만, 넘쳐버린 마음까지 품어주지는 못해. 감정을 담을 다른 그릇을 만들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