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세대의 잡스가 나타났다" — 연출된 천재의 서막
2003년 가을, 스탠퍼드 대학교 화학공학과의 유망주였던 19세 소녀 엘리자베스 홈즈는 부모님이 모아둔 대학 등록금을 들고 학교 문을 나선다. 그녀의 손에는 '리얼타임 큐어스(Real-Time Cures)'라는 이름의 신생 기업 서류가 들려 있었다.
훗날 치료(Therapy)와 진단(Diagnosis)의 합성어인 '테라노스(Theranos)'로 이름을 바꿀 이 회사의 비전은 간결하고도 강력했다.
"주삿바늘에 대한 공포 없이, 단 한 방울의 피로 당신의 건강을 완벽히 통제하게 하겠다."
홈즈는 자신을 스티브 잡스의 진정한 후계자로 포지셔닝하기 위해 고도의 이미지 메이킹을 시작했다. 초기에는 '촌스러운 크리스마스 스웨터'를 입던 평범한 대학생이었으나, 어느 순간부터 그녀의 옷장은 이세이 미야케의 검은색 터틀넥으로만 채워졌다.
더 놀라운 변화는 목소리였다. 원래는 평범한 여성의 톤이었던 그녀의 목소리는 대중 앞에 서는 순간 신뢰감을 주는 깊은 바리톤 톤으로 변했다. 전직 직원들은 그녀가 회식 자리에서 술을 마시거나 흥분했을 때 가끔 본래의 높은 목소리가 튀어나오는 '실수'를 목격하곤 했다.
여기에 그녀 특유의 커다란 눈과 절대 깜빡이지 않는 시선 처리는 투자자들을 매료시켰다. 그녀는 '의료의 민주화'라는 숭고한 명분을 앞세워 실리콘밸리의 거물들을 하나둘씩 포섭했다.
오라클의 래리 엘리슨, 미디어 재벌 루퍼트 머독이 수억 달러를 쏟아부었고, 헨리 키신저와 제임스 매티스 같은 정계·군부의 전설들이 이사회에 이름을 올렸다.
누구도 19살 소녀의 야망 뒤에 숨겨진 공허함을 의심하지 않았다.
홈즈가 세계를 홀린 마법의 장비 '에디슨(Edison)'의 실체는 처참했다. 그녀는 이 기계가 240가지 이상의 질병을 진단한다고 광고했지만, 실제 에디슨이 수행할 수 있는 검사는 12가지 남짓에 불과했다.
내부 보안은 삼엄했다. 연구원들은 서로의 프로젝트를 공유할 수 없었고, 모든 방에는 지문 인식 장치가 설치되었다.
실제로 에디슨 내부를 들여다본 엔지니어들은 경악했다. 혁신적 기술이라던 에디슨은 사실 '로봇 팔에 피펫(액체를 옮기는 도구)을 달아놓은 조잡한 기계'에 불과했다.
장비 구동 중에 피펫 팁이 떨어져 기어에 끼거나, 내부에서 혈액이 튀어 오염되는 일이 다반사였다. 결과값은 엉망이었고, 환자의 생명을 다루는 의료 기기로서는 실격이었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