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즐기고 사랑했지만 직무 전환을 고민하는 이유
채용 업무는 나에게 참 잘 맞았다. 긴 고민 없이 직무를 선택하고 여러 HR 업무들 중에서도 아주 우연히 채용으로 일을 시작했음에도 여러모로 만족스러운 일이었다. 특히 첫 번째 직장인 스타트업 채용팀에서 더욱 그랬다.
그 여러 이유들은 이 정도로 정리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을 즐길 수 있는 성격이다.
- 콜 포비아 따위는 없는 그 반대이다.
- 여러 분야에 얕고 넓게 정보를 얻는 것을 좋아한다.
- 잘 모르는 것도 아는 척하면서 능청스럽게 말하는 말재주도 나름 있는 편이다.
- 모른다고 솔직하게 대화를 이끌어내는 것도 나름 잘한다.
- 여기저기 튀어나오는 여러 인터뷰 일정들을 조금은 정신없이 받아쳐내는 것이 버겁지는 않았다.
- 완벽하게 공부하고 시작하는 사람보다는 일단 시작해서 배우는 사람이다.
(이건 특히 첫 직장, 첫 상사의 성향과 잘 맞았던 것 같다. 물론 그 이외의 상황이더라도 채용은 워낙 여러 포지션을 다루어야 하다 보니, 무언가 완벽하게 공부하고 시작하려는 사람이라면 시작 자체가 어려울 수 있다)
그 밖에도 이 일은 내내 내가 즐기며 임할 수 있었을 정도로 잘 맞는 일이었다.
물론 채용 목표 OKR이 마저 정립되지도 않았던 스타트업이었기 때문에 스트레스가 적었던 것이 가장 큰 만족의 이유가 될 수도 있었겠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이 생각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지 의문을 갖는가?
첫 회사에서 대량의 권고사직을 경험하면서 나는 큰 상처를 받았고, 순진했던 마음에 정신 차리라는 비싼 조언처럼 퇴사하게 되었다.
(제6화, 권고사직을 앞둔 채용팀의 심경고백'을 참고해 주세요)
업무 자체의 제약이 있다. 채용팀에서 가장 훌륭하게 성장해 봤자 팀장이고, 업무의 특성상 HR 실장이나 그 이상의 승진은 어려울 수 있다. 그리고 팀장이 된다고 하더라도 회사 내에서 채용팀은 어디까지나 백오피스이며 회사의 프로덕트 성장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고 보기 어려운 일이기에 그 이상의 가능성을 꿈꾸는 것은 어렵다. 업무도 돈도 어디까지나 최대치가 이미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회사원이 다 그렇겠지만, 특히 HR은 회사 안에서의 사람들을 위해 일하는 것이다 보니, 회사가 아니라면 의미가 없어지는 일이다. 물론 채용 중에서도 아웃바운드인 소싱은 대상을 바꾸어서 활용하는 것은 가능할 수 있을 것이다. 옆 영업팀 막내분과 내가 하는 일이 거의 유사했던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채용팀에서 10년을 근무했다고 당장 나의 사업을 구상할 수 있다거나 디지털 노마드가 될 수 있는 것과는 거리가 먼 것 같다.
목표 채용을 위해 달리고, 같은 내용을 설명하고 설득하고, 또 수많은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의 반복인 일. 이런 일에 지쳐 당분간은 혹은 더 이상은 채용 일을 하지 않고 싶어 하는 선배들을 두 명 보았다. 물론 어느 직종에서나 10년쯤 되면 매너리즘이라던가 진절머리라던가 둘 중 하나를 겪는 것이 당연할 수 있겠지만 말이다.
사람에 대한 일이다 보니, 규모가 커질수록 숫자에 대한 작업을 피할 수 없다. 나의 두 번째 직장에서 가장 많이 마주했던 것이 바로 그것이다. 머릿수도 돈도 실수가 있어서는 안 되는 부분이다.
하지만 나의 가장 취약한 부분이 바로 숫자이고, 그것을 가장 덜 접하는 곳에 나를 데려다 두어야겠다는 나를 위한 다짐을 아직 기억한다. 내가 빛날 수 있는 곳에 나를 데려다 두어야 한다면, 과연 HR이 맞는 선택지일까에 대한 의문은 사그라들지 않는다.
지금 앉은자리에서 생각난 이유들만 이렇게 늘어놓아도 꽤 설득력이(나에게는) 있다.
이 일을 정말 사랑했고, 그래서 더 잘하고 싶었고, 그 덕에 상처도 많이 받았다.
아직은 앞으로도 생각할 시간이 있지만, 아마도 나는 더 넓은 바다로 나가고 싶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