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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아나할미 Jun 20. 2024

채용담당자... 그만 둘다섯 가지 이유

많이 즐기고 사랑했지만 직무 전환을 고민하는 이유

채용 업무는 나에게 참 잘 맞았다. 긴 고민 없이 직무를 선택하고 여러 HR 업무들 중에서도 아주 우연히 채용으로 일을 시작했음에도 여러모로 만족스러운 일이었다. 특히 첫 번째 직장인 스타트업 채용팀에서 더욱 그랬다.


그 여러 이유들은 이 정도로 정리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을 즐길 수 있는 성격이다.

- 콜 포비아 따위는 없는 그 반대이다.

- 여러 분야에 얕고 넓게 정보를 얻는 것을 좋아한다. 

- 잘 모르는 것도 아는 척하면서 능청스럽게 말하는 말재주도 나름 있는 편이다.

- 모른다고 솔직하게 대화를 이끌어내는 것도 나름 잘한다. 

- 여기저기 튀어나오는 여러 인터뷰 일정들을 조금은 정신없이 받아쳐내는 것이 버겁지는 않았다.

- 완벽하게 공부하고 시작하는 사람보다는 일단 시작해서 배우는 사람이다.

(이건 특히 첫 직장, 첫 상사의 성향과 잘 맞았던 것 같다. 물론 그 이외의 상황이더라도 채용은 워낙 여러 포지션을 다루어야 하다 보니, 무언가 완벽하게 공부하고 시작하려는 사람이라면 시작 자체가 어려울 수 있다)


그 밖에도 이 일은 내내 내가 즐기며 임할 수 있었을 정도로 잘 맞는 일이었다. 

물론 채용 목표 OKR이 마저 정립되지도 않았던 스타트업이었기 때문에 스트레스가 적었던 것이 가장 큰 만족의 이유가 될 수도 있었겠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이 생각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지 의문을 갖는가? 


1. 사람을 위한 일이 아니라 회사를 위한 일이다.

첫 회사에서 대량의 권고사직을 경험하면서 나는 큰 상처를 받았고, 순진했던 마음에 정신 차리라는 비싼 조언처럼 퇴사하게 되었다. 

(제6화, 권고사직을 앞둔 채용팀의 심경고백'을 참고해 주세요)


2. 잘 되어봤자 팀장, 그래봤자 백오피스

업무 자체의 제약이 있다. 채용팀에서 가장 훌륭하게 성장해 봤자 팀장이고, 업무의 특성상 HR 실장이나 그 이상의 승진은 어려울 수 있다. 그리고 팀장이 된다고 하더라도 회사 내에서 채용팀은 어디까지나 백오피스이며 회사의 프로덕트 성장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고 보기 어려운 일이기에 그 이상의 가능성을 꿈꾸는 것은 어렵다. 업무도 돈도 어디까지나 최대치가 이미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3. 회사 밖에서의 쓸모가 상대적으로 적다

회사원이 다 그렇겠지만, 특히 HR은 회사 안에서의 사람들을 위해 일하는 것이다 보니, 회사가 아니라면 의미가 없어지는 일이다. 물론 채용 중에서도 아웃바운드인 소싱은 대상을 바꾸어서 활용하는 것은 가능할 수 있을 것이다. 옆 영업팀 막내분과 내가 하는 일이 거의 유사했던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채용팀에서 10년을 근무했다고 당장 나의 사업을 구상할 수 있다거나 디지털 노마드가 될 수 있는 것과는 거리가 먼 것 같다. 


4. 채용과 채용을 반복하는 쳇바퀴에 지쳐하는 선배들을 보았다

목표 채용을 위해 달리고, 같은 내용을 설명하고 설득하고, 또 수많은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의 반복인 일. 이런 일에 지쳐 당분간은 혹은 더 이상은 채용 일을 하지 않고 싶어 하는 선배들을 두 명 보았다. 물론 어느 직종에서나 10년쯤 되면 매너리즘이라던가 진절머리라던가 둘 중 하나를 겪는 것이 당연할 수 있겠지만 말이다. 


5. 숫자에 대한 일을 피할 수 없다

사람에 대한 일이다 보니, 규모가 커질수록 숫자에 대한 작업을 피할 수 없다. 나의 두 번째 직장에서 가장 많이 마주했던 것이 바로 그것이다. 머릿수도 돈도 실수가 있어서는 안 되는 부분이다. 

하지만 나의 가장 취약한 부분이 바로 숫자이고, 그것을 가장 덜 접하는 곳에 나를 데려다 두어야겠다는 나를 위한 다짐을 아직 기억한다. 내가 빛날 수 있는 곳에 나를 데려다 두어야 한다면, 과연 HR이 맞는 선택지일까에 대한 의문은 사그라들지 않는다. 


지금 앉은자리에서 생각난 이유들만 이렇게 늘어놓아도 꽤 설득력이(나에게는) 있다. 

이 일을 정말 사랑했고, 그래서 더 잘하고 싶었고, 그 덕에 상처도 많이 받았다. 


아직은 앞으로도 생각할 시간이 있지만, 아마도 나는 더 넓은 바다로 나가고 싶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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