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을 품고 지내기로 했다.
코로나 속에 락다운이 길어지며 여러 생각들이 꼬리를 물었다. 개발도상국에서 일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왜 개발도상국에서 일하고 싶은지, 그중에서도 왜 교육업무를 하고 싶은지 등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시작점
개발도상국에서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 멋지게 느껴졌고 시작한 일이었다. 업무를 하다 보니, 보기 좋은 허울 같다는 생각에 가닥이 잡히지 않았다. 내가 마주한 현지인들은 그리 도움이 필요하지 않기도 했고, 받는 것이 익숙해져서 노골적으로 돈을 요구하는 등 오만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오히려 돈이 사람을 변하게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움이 필요하거나 원조 덕분에 기회를 찾는 수혜자를 볼 때는 의미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투자비용과 시간에 비해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왜 원조를 해야 할까?
누군가에게 왜 이 일을 논리적으로 설명한다면 어떻게 설명해야 하면 좋을지를 생각해 보았다. 스스로도 설명이 필요한 것은 한국을 지원하는 것이 아닌 꼭 해외여야 하는가이다. 우리 국민들의 돈을 쓰면서 왜 다른 나라를 도와야 하는가에 대한 이유도 필요했다. 이 물음의 대답을 찾기 위해 검색을 해보고 자료를 찾아보면 우리나라도 과거 원조를 받아 발전한 것이니 당연한 도리이다, 혹은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의 역할 등을 설명하여 말했고 납득은 가나 충분한 이유가 되지 않았다. 국내 사회의 문제에도 관심을 가지고 더 확장해서 개발협력에 의미를 둔다면 모를까, 국내 사회문제에도 관심이 없으면서 더 도움이 필요하다며 국제사회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설명이 부족하다고 느꼈다. 여전히 완전히 풀리지 않은 숙제로 남아있다. 개발협력, 특히 무상원조를 해야 하는 이유에 대한 답을 찾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국내 혹은 해외에서 소외된 지역을 위해 일하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해외라서 특별하고 조금 다른 것은 공여국과 수원국의 외교의 다리를 이어주는 것, 잘 만든 사업은 수혜자들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스스로 경계해야 할 태도들이 생겼다.
1. 좋은 일을 하고 있다는 착각
'국제개발협력, 해외원조 = 좋은 일'이라는 공식이 수립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해외봉사를 한다고, 프로젝트 숫자가 늘어난다고 좋은 것이 아니듯이 말이다. 그 안에서 수혜자들에게 어떤 방식으로 성장을 이끌어내는지, 목표를 향한 효율성을 만들어내는지, 수혜자들에게 필요한 것을 제공하는지, 그들이 변하지 않도록 자주성과 독립성을 주도록 하는지 세밀한 구성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주어진 예산으로 효율적으로 목적에 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무엇이 있을지 생각하며 일하고 싶다.
2. 객관성을 잃어버린 눈
'개발도상국 사람들은 약자이다, 환경이 불우하다'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다. 다행히도, 이런 시각을 가지고 바라보았던 적은 없다. 그러나, 개발도상국 사람들을 당연히 도와주어야 할 대상으로 보는 실무자를 꽤나 만났다. 언젠가 나도 그런 눈을 가진 사람이 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손길이 필요한 곳이 너무나도 많다. 국내 NGO사업으로 지역의 아동지역센터와 협력해서 업무를 한 적이 있다. 한국에서는 같은 동네에서 어떤 아이는 학원을 2~3군데 다니지만, 어떤 아이는 집에서 부모님을 기다리기만 해야 한다. 국내에서는 빈부격차나 교육의 질이 너무나 다르다는 것이 고질적인 문제이다. 이러한 것을 등한시하고 개발협력에 대한 목소리만 높이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위의 태도를 경계하며 마주하는 사람들, 협력하는 사람들의 효능감을 높이는데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도록 일을 하려고 한다. 그러면 현재 '물음표'로 주어진 풀리지 않은 질문들에 대한 생각이 정립되고 확장될 것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