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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이나모 Aug 16. 2020

그냥 시시콜콜한 이야기 #12/100

내가 집을 샀어.

거짓말 안 하고 한 30곳 집을 본 거 같아. 근데 이 집을 딱 봤는데, 너무 마음에 든 거야.


한동안 정말 부동산 어플만 보고 살았어. 부동산에 연락해서 집을 보러 다니는 것이 데이트라고 생각할 시기였으니까. 4-5개월? 서울 이곳저곳 여기저기 아파트, 주택, 주상복합을 보러 다니면서 울고 웃고 했던 거 같아. 살아보지도 못할 거 십억이 훌쩍 넘는 아파트도 구경 가고, 말도 안 되는 가격에 나온 60평의 주상복합 집에 홀리기도 하면서 말이야. 한참을 집 구경을 하고 나와서 서울 아파트들을 보면 와 진짜 이렇게나 집이 많은데 내가 살만한 집이 없다며 한탄하고 그랬어. 왜 내가 사고 싶은 집들은 그렇게나 비싼 걸까?


그렇게 집 보는 눈이 조금 생겼을 무렵, 부동산에서 추천한 그 집을 구경하겠다고 했어. 주말 오후였는데, 집에는 재즈음악이 나오고 있었고 낮은 층수여서 그런지 앞뒤 창문으로 보이는 나뭇잎들로 마치 산속에 있는 거 같은 느낌인 거야.  아마도 나보다 한두 살 많을것 같은 만삭의 집주인 부부는, 5년 전 이 집에 들어오면서 집을 싹 수리했다고 했어. 되려 과한 인테리어는 거부감이 드는데 그 집은 정말 미니멀하고 깔끔한 게 내 스타일이었어.


언제나 그렇듯 집을 보고 나와서 가격을 물어봤는데, 이건 내가 살 수 있는 가격이 아닌 거야. 예산보다 훌쩍 뛰어넘는 가격에 역시나 사고 싶은 것은 항상 비싸다고 생각하며 돌아섰어. 아파트 단지를 걸어 나와 아파트 뒤쪽의 산을 지나니 강변의 공원으로 갈 수 있더라고. 와, 나같이 산책 좋아하는 사람들은 여기 살면 정말 좋겠다 싶었지.


그런데 그러면 뭐해? 예산이 안되는걸. 심사숙고 한 뒤 정말 마음을 딱 접었어. 저건 내가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고. 그리고 그 뒤로도 집을 한 10곳은 더 본 것 같다. 근데 사람 마음이 하나에 꽂히니까 다른 것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더라고. 오르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아야 했었는데.


근데 그러다가 갑자기 부동산에서 연락이 왔어. 어떤 사람이 그 집을 살려고 계약금 1000만 원을 걸어놨는데 자금이 안돼서 계약 파기 상황이라는 거지. 아무튼 그래서 본인이 집주인에게 잘 말해서 500만 원 네고된 가격으로 그 집을 나에게 팔 수 있다는 거야. 계약하겠냐는 그 전화를 받고 정말 뭐에 홀렸나 갑자기 사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어.


정말 영혼까지 털어서 샀다 라는 말은 나에게 쓰는 말인 거 같아. 있는 돈 없는 돈 심지어 연금까지 다 털어 넣고, 곧 결혼할 제이의 돈도 다 털어서 집 살 돈을 마련했어. 절대 없다고 생각했던 돈이었는데 마른행주도 쥐어짜면 물이 나온다고 회사생활 7년의 결과물을 쪽쪽 짜서 결국 아파트 계약서에 싸인을 했어.


싸인을 하던 그날을 잊지를 못해. 난생처음 그렇게 큰돈을 썼는데, 정작 내가 그 돈과 바꿔서 집으로 들고 온 건 종이조각 몇 장이라니. 허망하고 얼떨떨한 기분으로 제이와 맥주를 마시면서 우리가 진짜 집을 산건 맞느냐고 서로에게 되물었지.


주변 사람들은 내가 아파트를 샀다고 하면 모두 그때 잘 샀다고 이야기를 해. 결과론적인 이야기지. 내가 정말 살고 싶은 집을 샀기에 후회는 없지만 서울 아파트값이 폭락했다면 마음이 지금과 같을까? 그건 모르지. 요즘 뉴스에 서울 부동산 이야기가 빠지지 않아서 하는 말이야. 갑자기 내가 집 샀던 순간이 기억나더라고. 이미 큰 고민의 시간을 보낸 사람으로서, 요즘 주변에 내 집 마련으로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서. 쉬운일이 아니야 정말.


그러게, 내가 살 집 하나 마련하는 게 이렇게나 힘들고, 큰 다짐이 필요한 일인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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