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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이나모 Aug 28. 2020

그냥 시시콜콜한 이야기 #22/100

응급실의 엄마

새벽 문자로 잠이 깼다. ‘엄마가 지금 아파서 응급실에 가고 있다’ 문자를 확인하고 바로 상사에게 연락했다. ‘집안에 일이 있어서 오늘 출근 못할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연차는 S에게 부탁해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대충 옷을 우겨 입고 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병원은 뭔가 안정적이다. 하얗게 옷 입은 피곤한 얼굴을 한 사람들이 몰려다니는 곳. 피곤한 얼굴을 하였지만 뭔가 믿음이 가는 건 전문직이라는 타이틀 때문이다. 내가 끊임없이 질문을 해도 무조건 대답을 해줘야 하는 사람이 많은 곳은 안정감을 느끼게 한다. 어쨌든 이곳의 누군가는 여기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컨트롤하고 책임져야 하니까.


응급실엔 한 명의 보호자만 함께 들어갈 수 있었다. 아빠는 내가 오자 방문증을 넘기고 잠시 나갔다 오겠다고 했다. 방문증을 들고 들어가니 병상에 누워 약간은 민망해하는 엄마가 있었다.


‘ 많이 아팠어?’

‘ 응 이런 적은 처음이었어. 장이 꼬인 건지 지금은 그래도 좀 괜찮은데 밤에는 정말 데굴데굴 굴렀다니까?’

‘ 뭐지? 맹장염 같은 건가..?’


통증이 조금은 가라앉았는지 엄마는 회사는? 이라며 이런저런 대화를 시도했다. 그 모습을 보니 큰 병은 아닌 것 같아 다행이었다.


응급실 침대는 환자로 가득 차 있었다. 엄마의 옆 침대에는 황달이 심한 아저씨가 누워있었고, 건너편에는 무슨 병인지 모르는 할머니가 누워계셨다. 황달이 심한 아저씨는 딱 봐도 큰병에 걸린 사람 같았고, 할머니는 기력이 없으신지 깨어있지 않으셨다. 10개가 넘는 응급실의 침대의 환자 중에 엄마는 그래도 응급환자 같지는 않아 보였다. 보호자로서는 정말 다행이었다.


30분쯤 지나자 약간은 꼬질꼬질한 가운을 입은 피곤한 얼굴의 의사 선생님이 오셨다. 너무 피곤해 보여서 조금은 불안해 보이는 그는 나보다 한두 살 많았을까? 이제 내 나이면 어디를 가나 제 한 몫을 척척 해내는 사람들이 많다.


'배에 통증이 있으시다고요? 찌르는 듯한 통증인가요?'

'네, 찌르는 거 같기도 하고, 장이 꼬인 거 같기도 하고 그래요'

'제가 배 좀 눌러봐도 될까요?'

'네'


의사는 이불을 내리고 엄마의 배에 손을 올려 이곳저곳 살짝씩 눌러본다.


'혹시 여길 누르면 아프신가요?'

'어... 어...?'


수척했던 엄마의 얼굴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머뭇머뭇 대답을 못 하길 몇 초쯤


' 선생님, 선생님이 배를 누르니까 갑자기 배가 안 아프네요?'


'아 그러세요? 다행이네요. 가끔 장이 꼬여서 통증이 있다가 풀어지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이런 일이 종종 있는  의사 선생님은 덤덤히 받아주었다.그의 프로페셔널함에 감탄했다. 나였다면 의사 선생님 손은 약속이라고 말하는 아줌마를 한참이나 어이없이 바라봤을 일이었다. 다행히 그는 피곤한 얼굴이 이해될 만큼 프로페셔널하게 대응하고 축 처진 어깨를 돌려 돌아갔다.


20  엄마는 퇴원했다. 아이였다면   녀석 꾀병을 부리고라며 딱밤이라도   때렸을 일이지만 엄마는 이제  환갑이었다.


퇴원한 엄마는 평소보다도 더 활기찼다. 본인 자신도 민망함에 어찌할 바를 몰랐겠지. 뭐 살다 보면 이런 일도 저런 일도 있는 거 아니겠냐며 한바탕 웃을 수 있는 것에 감사했다. 병원에서 죽상을 하고 큰 병일까 노심초사하고 있는 것보다 100배쯤 나았다.



아빠 엄마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우리가 자주 들르는 콩나물국밥집에 갔다. 새벽부터 정신없어서 아직 한 끼도 못 먹은 우리 셋은 맛있게 한 그릇씩 싹 비웠다. 배가 아팠다던 엄마도 한 그릇을 맛있게 비웠다. 빈 그릇을 보니 정말 큰 병은 아니었나보다.



매일 쓰기를 실천해 보려고 합니다.

100일 동안 매일 그냥 시시콜콜한 아무 이야기나 써봅니다.

이런저런 생각이 많은 요즘, 저도 제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정리해보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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