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이나모 Sep 07. 2020

그냥 시시콜콜한 이야기 #31/100

뚜벅이의 자동차 (차는 없지만 집은 있다)

차를 사려고 매일같이 중고차 사이트를 들락날락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떨린다. 새 차도 아니고 중고차를 사면서 뭔 난리인가 싶지만, 뚜벅이 십여 년의 생활에 마침표를 곧 찍는다고 생각하니 그동안 차가 없어 서러웠던 순간들에 이게 눈물인지 눈앞이 뿌예진다.


회사는 집에서 자차로 25분 정도 걸렸다. 그 와중에 5년을 대중교통으로 1시간 30분씩 걸려 출퇴근을 한 나를 보고 다들 대단하다고 했다. 가끔 엄차를 빌려 회사에 가는 날은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이런 거리를 내가 날마다 지옥철을 타고 다녀야 하나 싶었지만, 아침의 셔틀이 있어서 그나마 참을 수 있었다. 자취를 추천하던 사람들을 뒤로하고 5년을 넘게 본가와 회사를 통근하며 코가 삐뚤어지게 술을 먹은 날이 아니면 웬만하면 택시도 타지 않았다. 통장에 쌓아는 잔액이 나의 건강을 팔아 쌓이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래도 이만큼 모을 수 있다면 할만하다고 생각했다. 아직 젊었으니까.


그런 내가 역시나 차가 없는 제이를 만나 연애를 했다. 연애 5년 동안 우리는 지독하게 걸어 다녔다. 서울에 웬만한 골목골목 안 걸어 다닌 곳이 없다는 농담을 할 정도로 징그럽게 걸어 다녔다. 데이트를 하고 난 날이면 만 오천 보 가까이 찍히는 캐쉬워크의 황금 상자를 신나게 클릭하며 오늘도 100원 벌었다며 즐거워하던 우리였다. 덕분에 서울 곳곳에 우리만의 장소들이 많다. 정말 발에 땀이 나도록 걸어 다녔으니까. 만 보가 넘게 걸어가며 방문했던 그 길을 이제는 멀어서 갈 수 없지만, 방송을 통해 보이는 서울의 골목 중 우리가 함께 걸었던 길들이 많은 건 순전히 우리가 차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랬던 우리는 이민을 오며 위시리스트 1번에 자동차를 넣었다. 아무렴 땅 넓은 곳으로 이민을 하는데 이제 차는 사야지. 그랬던 우리가 이곳에 와서도 대도시 한복에 살게 되면서 차를 사겠다는 꿈은 멀어져 갔다. 마트에 갈 때는 구루마(?)를 끌고 장을 보러 갔고, 카트가 꽉 차면 사고 싶던 물건을 내려놓기도 했다.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차가 없어서 마트 장을 못 보는 마음을 누가 알까? 아니 그게 돈이 없는 건가?


차가 없으니 집안 살림 장만도 영 힘들었다. 신혼살림은 역시나 IKEA라며 신나게 갔지만 두 손 가득 무거운 짐 들고 대중교통을 탄 우리는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었다. IKEA에 차 없이 가는 사람도 있을까? 처량한 모습에 웃음이 나오려던 찰나에 족히 60인치는 되어 보이는 티브이를 들고 가는 두 인도 부부의 모습을 보며 위로했다. 그래 이 정도면 차 없이 살만하다.



면허를 따고 장장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의 이 정도면 차 없이 살만하다는 생활은 이제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절대 차가 없으면 살 수 없는 동네로 이사를 왔기 때문이다. 출근하려면 무조건 차가 필요한 동네, 절대 대중교통으로 장을 볼 수 없을 것 같은 동네. 이런 곳으로 이사를 와야지만 차 살 생각하는 우리도 참 우리다.


후회하지는 않는다. 차가 없었기에 더 행복한 순간들이 많았다. 남들은 잘 가지 않는 골목을 걸어 다니며 들어간 술집에서 차 걱정 없이 술을 마실 수도 있었고. 가끔 렌트를 할 때면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이 행복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차가 없어서 내가 원하는 집을 살 수 있었다.

차 살 돈 그거 조금 모은다고 아파트 하나 못 산다. 그냥 차 사라라는 말도 많이 들었지만, 그 얼마 안 되는 돈도 몇 년을 모으니 큰돈이었다. 아마 족히 몇천이 될 돈은 퇴사하고 10개월째 아직도 백수인 나의 생활을 책임져 주기도 하고 있고.


이제 며칠 있으면 우리의 차가 생기겠지, 그 차를 타고 우리도 마트에 가서 카트 한가득 장을 볼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와 출세했네! 정말.



매일 쓰기를 실천해 보려고 합니다. 

100일 동안 매일 그냥 시시콜콜한 아무 이야기나 써봅니다. 

이런저런 생각이 많은 요즘, 저도 제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정리해보려고요.

매거진의 이전글 그냥 시시콜콜한 이야기 #30/10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