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사막 한가운데서 기름이 떨어졌습니다

"가까운 주유소를 검색할까요?" 응 없어~

사우디에서 타던 차는 최신형 쏘렌토였습니다. 한국에는 출시되지 않은 V6 무려 3500cc 가솔린 4륜 구동 7인승 최고급 트림의 풀옵이었죠. 사막 모래를 견딜 수 있는 GCC(걸프 국가) 옵션도 넣었습니다. 물론 이걸 산 건 바보짓이었는데 그건 나중에 말씀드리고 할튼 그때는 그걸 탔습니다.

 

굳이 험로 주행 성능을 가진 차를 산 건 역시 사우디에 있으니 사막 투어를 해보고 싶어서였죠. 생각만 해도 설레지 않습니까? 모험! 어드밴쳐! 험로! 오프로드! 예? 다 헛소리입니다. 차가 뭐든 사막에는 들어가면 안 됩니다. 사막 투어가 하고 싶으면 투어 상품을 구입하고 거기서 주는 걸 타고 가이드를 받아야 안전합니다.

할튼 그것도 나중에 깨달은 건데 오늘 할 이야기는 그건 아니고, 쏘렌토를 타고 젯다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젯다는 우리로 치면 부산 같은 위상입니다. 사우디 제2의 도시이면서 항구도시지요. 차이가 있다면 수도에서 좀 멀어서 1000km 떨어져 있다는 점 정도겠습니다.


젯다 여행도 참 좋았는데 기억에 남는 가장 인상적인 건 아니러니 하게도 여행이 끝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생겼네요.


차를 타고 집에 오고 있었습니다. 그때 제 머릿속을 가득 채운 건 '장독대 뚜껑'이었는데요. 집에 장독대 뚜껑이 꼭 필요한데 어디서도 구할 길이 없는 거예요. 사우디에서 누가 장독대를 쓰겠습니까. 그렇지만 꼭 필요했어요. 꼭 장독대 뚜껑일 필요는 없지만, 흙으로 빚어서 만든 도기 중에 높이는 5cm 정도로 낮고 무게는 1kg 이상으로 묵직하고 폭은 쫙 편 손바닥보다 넓은 게 장독대 뚜껑밖에 생각이 안 나더라고요.


뜬금없이 웬 장독대 뚜껑이냐 싶으시겠지만 할튼 그게 꼭 필요한데 못 구해서 며칠째 골머리를 앓고 있었거든요. 젯다 여행에서 돌아오는 길에도 그랬습니다. 앞뒤로 차도 없고 신호등도 없고 갈림길도 없고 구경거리도 없는 길을 800km 가까이 직진해야 하는 상황이었죠.

418km 앞에서 좌회전 음 저기 보인다 음

한참 가다 보니 기름이 떨어져 가는 게 보였습니다. 남은 주행 가능 거리가 100km 정도 됐는데 이제부터 나오는 휴게소에 들러서 넣으면 됐죠. 사우디 고속도로의 휴게소는 우리나라랑 비슷해서 40~50km에 한 곳씩 도로에서 살짝 빠져나간 곳에 있습니다. 주유소, 패스트푸드, 편의점이 모여있죠.  


이게 우리나라랑 참 비슷해서 편했습니다. 미국에서는 고속도로에서 휴게소에 들르려면 엑시트를 통해서 빠져나가야 했어요. 그것도 한참 떨어져 있어서 5분 이상 램프를 타고 나가면 휴게소를 빙자한 새로운 작은 마을이 나오는데 거기서 필요한 걸 해결하곤 했더랬습니다.


할튼 장독대 뚜껑을 생각하면서 가고 있는데 휴게소가 나오더라고요. 편의점 앞에 차를 세우고 애들 필요한 우유랑 음료수, 스낵을 샀습니다. 패스트푸드점에 들러서 치킨너겟도 좀 사고요. 그리고 화장실에 다녀오는데 사우디는 화장실이 보통 별도로 떨어진 건물에 있습니다.


기도실이 별도의 메인 건물로 있고 기도실 들어가기 전에 손발 씻고 들어가라고 화장실이 붙어 있는 식이죠. 그래서 화장실 건물에 다녀오는데 지나가면서 보니 저만치 떨어진 곳에 영업을 안 하는 것 같은 폐건물이 보였어요. 근데 통창으로 점포 안쪽이 살짝 보이는데 그릇 가게 같기도 하고 무슨 용기가 잔뜩 진열이 돼 있는 겁니다.


궁금해서 차로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사우디는 너무 더워서 어른 걸음 3보 이상 배차가 필수입니다) 장독대 비슷한 토기나 도기 같은 게 많이 있어요. 이곳은 화분 가게였던 겁니다!


폐업한 지 10년도 넘은 것처럼 점포 전체가 흙먼지에 묻혀 있더라고요. 관리하는 사람도 없는지 벽 한쪽은 허물어져 있고 무엇보다 깨진 채로 문밖에 버려진 화분 제품이 꽤 있는 겁니다. 그런 건 좀 줏어가도 무슬림 샤리아법에 따라 도둑놈의 손모가지를 자른다든가 하지는 않겠죠 아무래도. 저는 장독대 뚜껑이 필요한 거니 윗부분이 좀 깨져 버려진 화분 같은 거면 오히려 좋거든요.


그래서 이리저리 둘러보고 쓸만한 게 있나 살펴봤는데 아쉽게도 사이즈가 맞으면 가장자리가 날카롭고, 마감이 좋으면 가운데 구멍이 있고, 다 괜찮다 싶은 건 뭔지 모르겠는 썸띵 뭔가가 너무 많이 붙어 있는데 손으로 떼낼 자신이 없고, 멀쩡한 게 하나도 없더라고요. 결국 둘러보다가 너무 덥기도 해서 포기하고 가던 길을 갔습니다.


여기서 질문. 아까 휴게소에 왜 들렀는지 기억하는 분 계신가요? 저는 기억 못 했습니다. 장독대 뚜껑에 관심이 팔려서 기름 넣는 걸 깜빡하고 휴게소에서 출발해 버린 거죠.


한참을 달리는데 갑자기 계기판에 '둥' 하고 노란 불이 들어옵니다. 주유등이요. 그리고 거의 동시에 남은 주행 가능 거리가 --로 바뀌었습니다. 주유등에 불이 들어오면 연비 주행 여부에 따라 50km까지 달릴 수 있다고 알고 있었는데 이때만큼은 제 지식에 대한 신뢰가 0 밑으로 떨어지더라고요.

이런 곳을 달리고 있었거든요

뒷 이야기는 다음 화에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