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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던스 호텔(2)

그래서 사일런트 힐은?

뉴욕 레지던스에서 겪은 또 다른 충격은 빨래방입니다. 숙소에 머무는 동안 빨래를 해야겠는데요, 보통 호텔에 가면 빨랫감을 내놓으면 세탁을 해다 주거나 공동으로 쓰는 코인 빨래방이 있잖아요. 여기도 크게 다르지 않았어요. 빨래방이 지하 기계실에 있다는 점만 빼면 말이죠. 


빨래를 잔뜩 들고 로비로 내려와서 런더리룸을 물어서 찾아가는데요, 분명 설명을 들은 대로 가는데 이게 엘리베이터도 없는 지하를 계단으로 계속 내려가니까 아무래도 이상하잖아요. 여기에 손님이 쓰는 무슨 서비스룸이 있을 것 같지가 않은 거예요. 

일단 이렇게 생긴 문을 지나갑니다

분위기가 어떠냐면 게임 사일런트 힐 아세요? 플레이스테이션 세대라면 잘 알 텐데요. 바이오 하자드라든가. 그런 호러 어드벤처 게임을 해보면 건물 지하에서 실마리를 찾아 탈출해야 하는 게 있거든요. 그런 데 나오는 막 무슨 파이프 있고 스팀 나오고 워닝 경고문구 쓰여있고 막 광목천 같은 걸로 가려놓은 엄청 수상한 공간도 있고 할튼 너무 무서운 거예요. 

컨트롤 패널. 호러 어드벤처에서 퍼즐 풀 때 필요합니다만?
무슨 파이프랑 밸브도 있고요

조명은 어둡지, 오가는 사람은 없지, 어디선가 쿵쿵쿵쿵하는 기계음은 계속 들리고. 코너는 왜 그렇게 또 많은지 저 쪽 코너를 돌면 막 이상하게 뒤틀린 크리쳐 같은 게 튀어나올 것 같고. 게임이나 영화에서 그런 장면이 나왔을 때 참 제작자의 상상력과 연출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어요. 그 사람들은 그냥 평소 일상을 영상으로 재현했던 거더라고요. 

실제로 내려가면 이런 느낌

빨래 돌리러 갈 때 참 암담하게 느낀 게 뭔지 아세요? 이따 건조기 돌리러 다시 와야 한다는 거죠. 아무나 같이 좀 와줬으면 좋겠는데. 그렇다고 마냥 시간을 끌 수도 없는 게 늦게 가면 다른 사람이 우리 빨래를 꺼내서 구석에 쌓아놓더라고요. 


한 번 당해봤는데 처음에는 빨래를 찾으러 좀 늦게 갔는데 세탁기가 계속 돌고 있길래 '이상하다 분명 시간을 넉넉히 지났을 텐데' 하고 보니까 세탁기 옆 선반에 어디서 많이 본 빨래가 쌓여 있는 거죠. '감히 남의 빨래에 손을 댔다고?!' 

저 뒤에 아무것도 없는 거 확실합니까?

너무 놀라고 충격적이어서 컨시어지에 말을 해볼까 하다가 CCTV가 있는 것도 아니고 해서 그냥 넘어갔는데 지금 생각하면 얘기 안 하길 잘했죠. 앞으로 살면서 수도 없이 겪을 일이에요. 미국의 공동주택 빨래방에서는 일반적인 일인 거죠. 이때 눈치 없이 얘기했으면 이상한 사람 취급받았을 듯. 

천장에 전선까지. 완벽하지 않습니까?

한 번은 다 빨고 건조까지 해서 수거해 왔는데 둘째 양말이 한쪽이 없어진 거예요. 그럼 다시 가서 세탁기나 건조기 안을 들여다보면 작은 빨래는 통 안쪽 벽에 붙어있거나 하거든요. 그런데 결국 다시 안 갔어요. 못 가겠는 거예요 무서워서. 다음 빨래할 때까지 며칠 기다렸다가 그때 가봤는데 이미 없죠 뭐. 너무 무서우니까 양말 한쪽 정도는 쿨하게 포기했습니다. 세탁 건조 모두 공짜였으니까 자주 이용했으면 훨씬 쾌적하게 지냈겠지만 그 대신 멘탈이 쾌적하지 못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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