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파이브가이즈 버거

FIVEGUYS

한국에서도 유명한 미국의 햄버거 체인이 3곳 있습니다. 쉐이크셱(이 업체는 햄버거를 '셰이크'랑 먹는 건데 어쩌다 보니 한국 법인의 표기가 '쉐이크'로 됐습니다), 인 앤 아웃, 파이브가이즈입니다. 쉐이크셱 1호점이 뉴욕에 있으니 본진인 셈인데요, 파이브가이즈도 있습니다. 인 앤 아웃은 뉴욕에 살면서는 못 봤네요. 


오늘은 파이브가이즈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최근에는 한국에도 정식으로 들어왔습니다만, 제가 뉴욕에 살 때는 없었거든요. 3대 버거 중 제일 맛있다더라, 땅콩이 무한 리필이라더라, 온갖 소문으로만 접해서 기대를 잔뜩 하고 찾아갔습니다. 


파이브가이즈는 위치가 영 좋지 않았어요. 집에서 가려면 옆으로 6블록을 가야 해서 걸어가기에는 부담이 상당했습니다. 맨하탄 도로는 위아래 좌우로 딱딱 떨어지는 블록으로 돼 있는데 좌우 블록은 한 블록에 200미터 정도 돼서 좀 멉니다. 

'경쟁사'의 버거. 이런 모습을 기대했습니다

그래도 시간을 내서 갔는데 일단 정신이 하나도 없습니다. 오픈 키친이라서 주문받는 곳 바로 뒤에서 막 패티 굽는 김 나고 시끄럽고 난리도 아니에요. 뉴욕에 가서 혼자 어디 뭐 주문하러 간 건 그때가 처음이었거든요. 벽에 붙은 메뉴판을 보니까 베이컨치즈버거가 있는데 12달러인 거예요. '햄버거가 1만 5천 원이라니 비싸구나' 하면서도 시켰죠. 왜냐하면 전 뉴요커니까요.


나 : 베이컨치즈버거 하나요.

파이브가이 : 패티는?


여기부터 멘붕이 왔는데요. 패티를 물어보는 거예요. 긴장해서 리스닝도 안 되고, 매장은 시끄럽고, 주문하는 거 복잡해서 서브웨이도 안 가는 사람인데 햄버거 사는데 웬 커스텀이냐고요. 맥락을 알아야 눈치껏 때려 맞추기라도 하는데 다짜고짜 패티는? 하니까 하나도 못 알아들었어요.


나 : 응? 베이컨치즈버거 하나요.

파이브가이 : 패티는? 더블 패티?

나 : ???


햄버거에 패티를 두 장 끼워먹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해서 버퍼링이 왔습니다.


파이브가이 : 패티 한 개? 두 개?

나 : 아!? 아!! 한 개 한 개.

파이브가이 : 붸지?

나 : 응? 


이때부터 괜히 왔다 후회막심이죠. 붸지는 야채 뭐 넣을 거냐고 물어보는 건데 나중에 안 거고 거기서는 끝까지 못 알아들었어요. 제 뒤에 비싸 보이는 카메라 들고 아까부터 사진 찍던 프렌치가이가 줄은 서 있고, 나는 못 알아듣겠고, 물어볼 사람도 없고, 이 사람은 햄버거 하나 달라는데 자꾸 뭘 물어보고, 그냥 울고 싶더라고요. 


'프렌치'인지는 모르겠지만 멋진 아저씨

그런데 일단 눈치가 뭐 넣을 거냐고 물어보는 것 같으니 기본만 하고 나머지는 다 빼자고 생각했습니다. 저한테는 맛있는 버거보다 빨리 이 상황을 벗어나는 게 중요했으니까요. 그래서 그 뒤로 나오는 질문에는 무조건 노만 했습니다. 중요한 패티는 방금 했으니 확실히 들어가잖아요.

 

파이브가이 : 붸지?

나 : 노 땡큐.

파이브가이 : 노 붸지?

나 : 암 오케. 노.  

파이브가이 : 소스?

나 : 노.

파이브가이 : 케첩 어쩌고?

나 : 암 오케. 노.

파이브가이 : 굿. 12달러야.


소스는 알아들었습니다. 안 한다고 하니까 케첩이나 마요도 안 할 거냐고 물어보더라고요. 이것도 두 번 듣고 깨달은 거지만. 거기다 대고 노를 했는데 이게 저는 추가 소스를 물어보는 건 줄 알았어요. 그러니까 '베이컨치즈버거'라는 완성품이 있는데 옵션으로 소스를 추가하거나 바꾸고 뭐 그런 건 줄 알았던 거죠. 그래서 고생 끝에 받은 '세계 3대 버거' 중 파이브가이즈 버거 보시겠습니다. 12달러짜리입니다.

두둥! 버거가 왠지 비웃는 것 같지만 기분 탓이겠지요?

건네받을 때부터 호일에 싸인 버거가 너무 작고 여리고 왠지 보살펴줘야 할 것 같이 왜소해서 등줄기가 싸했습니다. 한 손에 쏙 들어오는 게 사이즈가 버거킹 주니어보다 작았어요. 집에 와서 열어보니 아뿔싸! 빵 사이에 패티가 있고 치즈가 있고, 그야 치즈버거니까요. 그리고 딱딱하게 굳은 베이컨(으로 추정되는) 썸띵 조각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야채고 소스고 아무것도 없죠. 왜냐하면 제가 노라고 했으니까요. 정직하다 파이브가이즈!


파이브가이즈는 땅콩이 무한리필이라고 하는데 그런 셀프 테이블은 보지도 못하고 나왔습니다. 글로 적으니까 몇 줄 안 되는데 저 질문이 반복되는 동안 시간과 정신의 방에 들어간 것 같았어요.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도 않고 귀에 들리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건 다른 이야기입니다만, 미국 사람들은 주문을 할 때 한국 사람이랑은 완전히 다른 것 같아요. 우리는 어디 줄 서 있으면 메뉴판을 숙독하고 주문할 걸 미리 정리하잖아요. 차례가 되면 빨리빨리 얘기하고 비켜줘야 하니까요.


뉴욕에서 만난 사람들은 전혀 그러지 않았어요. 줄 서 있는 동안 자기들끼리 이야기하며 놀다가 차례가 되면 그제야 메뉴판을 봅니다. 그러면서 또 이것저것 물어봐요. 이건 재료가 뭔지, 저건 맛이 어떤지 그러면서 천천히 결정을 합니다. 


그런 걸 보면서 뒤에서 아무도 재촉을 하지 않아요. 모르긴 몰라도 줄 서서 자기 차례가 됐으니 메뉴를 결정하는 그 시간을 온전히 자기 권리로 누리는 것 같았습니다. 주변에서도 그걸 당연하게 생각하고요. 뭐 그래도 뉴욕을 떠날 때까지 적응이 되지는 않더라고요.  


+쿠키 사진

훗날 먹은 제대로 된 파이브가이즈


이전 04화 메이시스 백화점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