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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차 구입

혈혈단신 던전 입장

미국은 차가 없으면 아무것도 못한다고 하잖아요. 이웃집도 멀리 떨어져 있고 마트에 가려고 해도 차가 없으면 갈 수가 없고요. 살아보니까 제가 살던 맨하탄은 그 말에서 예외이긴 한데 그때는 그걸 몰랐을 뿐이고. 그래서 날이 더 더워지기 전에 차를 사야겠다 마음먹었어요.


일단 새 차를 살 생각은 없었어요. 왜냐면 타다가 한국 돌아가면 들고 가는 게 또 문제가 될 테니까요. 그리고 미국에 있을 때 땅덩어리 넓은 데서만 탈 수 있는 그런 큰 차를 타고 싶은 생각이 있었거든요. 남자의 로망이죠. 기름 먹는 하마. 그런데 다시 강조하지만 맨하탄은 '땅덩어리 넓은 데'가 아닙니다. 

차 사기 전에 렌트한 기름 먹는 하마. 번호판은 뒤에만 있어요

보니까 미국은 일본차가 엄청 많아요. 눈대중으로 보면 도요타 혼다 합쳐서 70% 는 것 같더라고요. 그리고 큰 차가 많아요. 미니밴이나 대형 SUV 서버반 같은 거. 한국에서 가장 큰 SUV인 펠리세이드는 미국에서 '중형 SUV'에 속하더라고요.


그래서 큰 차를 사야겠다 싶어서 본 게 도요타 시에나하고 혼다 오디세이였어요. RV는 옆문 바닥이 낮아서 애들이 혼자서 타고 내리기도 좋고, 짐 막 때려 넣고 어디 가기도 좋고, 유모차나 자전거나 텐트 같은 거 막 다 싣고 어디 다니기 좋으니 미니밴으로 결정!


처음에는 카니발을 사서 한국으로 갈 때 가져갈까 생각도 했거든요. 한국에서 제조해서 수출한 차를 외국에서 사면 귀국할 때 관세를 안 내도 돼요. 그런데 카니발 중고 가격이 시에나나 오디세이보다 훨씬 비쌌어요. 고장 나면 수리비도 비싸고 부품 수급도 오래 걸리고요. 아무래도 인기가 적다 보니 그런가 봐요.


그래서 매물도 많고 중고가 방어력도 좋은 일제로 결정을 했고, 인터넷으로 대충 찾아봤는데요. 여기도 중고차 가격비교 사이트가 있긴 있어요. 찾아보니까 차가 쭉 있고 마음에 드는 차를 보면 그게 어디 매장에 있는지 나와있는 거죠. 막상 가서 보니 허위매물이었다 이럴 수도 있는데 그건 어쩔 수 없는 거니까 감수해야죠.


검색해서 마음에 드는 가격이랑 연식 색깔 다 골랐어요저희는 일단 차는 무조건 흰색이어야 한다. 왜냐하면 어두운 색은 밤에 잘 안 보이잖아요. 안 그래도 운전 생소한 곳이니까 안전을 위해서 흰색. 그리고 시트는 먼지 나는 게 싫어서 가죽으로.


나머지 옵션은 정말 아무것도 필요 없었요. 어차피 2년 타고 말 거니까 좀 불편해도 상관없고 그냥 깔끔하고 잘 굴러가기만 하면 된다이런 생각으로 골랐는데 문제는 재고를 보유한 매장이 다 너무 먼 거예요.


택시나 우버 이런 걸 타고 가자니 요금이 무섭고 뭣보다 매장이 멀다는 게 차로 30분 40분 이런 게 아니라 차로 3시간 막 이런 느낌? 아예 주가 달라요. 뉴욕 위에 다른 주로 넘어가야 하는 거예요. 그래서 예산이 좀 더 들더라도 가까운 데로 보니까 브루클린에 있더라고요.


브루클린은 우범지역이 많고 후미진 골목을 혼자 다니는 게 안전하지 않거든요. 그때는 몰랐죠.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뭐 '서울 마포에서 송파쯤 가나 보다' 했어요. 위치가 그렇거든요. 약간 오른쪽으로 가서 밑으로 내려가면 있는. 그래서 그냥 옆동네라고 생각하고 갔어요.

한창 재미있게 읽던 만화책 끼고

일단 지하철 타고, 뉴욕 지하철 유명하거든요. 엄청 무서워요. 어둡고, 더럽고, 간판도 적응 안 되고. 혼자 지하철 타고 가는데 흑인들이 있으면 무섭단 말이에요. 인종차별 하자는 게 아니라 실제로 느끼기에 무서워요. 그분들은 덩치도 크고 보통 여럿이 있고 하니까요. 바지도 막 내려 입어서 벨트가 허벅지에 있고.


별생각 없이 지하철을 타고 집이랑 점점 멀어지는데 왠지 흑형이 막 와서 아랫배에 뭐 들이대고 '헤이 두드, 앞에 봐, 친한 척 해' 이러는 거 아닌가 싶고. 심지어 마지막에 내린 역은 지상역이었는데요, 역을 이용하는 사람이 저 말고 정말 한 명도 없었어요. 혼자 내려서 걸어 나오면서 자꾸 뒤 돌아보고. 


근데 역사에서 나오니까 동네가 엄청 예쁜 거예요. 그때가 5월이었나 그래서 나무도 싱그럽고. 빌딩숲에 있다가 녹지가 있는 주택가에 가니까 동네도 고즈넉하고 너무 좋은 거죠. 근데 그런 풍경은 잠깐이고 큰길로 나가니까 금방 끝났어요. 여기가 무슨 분위기냐면 영등포에 철물 같은 거 도매점 모여있는 골목 있죠?

뉴욕의 하늘과 고즈넉한 주택가가 그린 그림

확실히 주거 단지가 아닌 것 같은 느낌? 업자들만 볼일 보러 왔다 갔다 하고 일반인은 길에 걸어 다닐 이유가 딱히 없는 그런 분위기더라고요. 그래도 구글 맵 보고 꾸역꾸역 목적지까지 찾아갔어요. 무슨 용기인지 모르겠는데 그때는 지금 아니면 차를 사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있어서 일단 시작한 김에 매장에 들어나 보자는 각오가 있었죠.


그래서 길을 걷다가 매장을 발견했는데 뉴욕 가보시면 아실 텐데 가게에 간판이 없어요. 우리나라 같으면 벌써 100미터 앞에서도 간판만 보고도 '저기 무슨 업종이 있다, 어떤 가게다' 대충 알 수 있잖아요. 특히 프랜차이즈 같은 건 눈에 확 들어오죠. 


미국은 건물에 옆간판이 없어요. 그래서 멀리서 보면 저 건물에 무슨 상점이 입점해 있는지 모릅니다. 건물 현관에 간판이 없는 곳도 많아요. 한 번은 주소만 들고 애들 소아과를 찾아갔는데 평범한 건물 안에 들어가서 우체통을 봐야 의사 이름이 적혀 있어서 '아 몇 층이구나' 했던 적도 있네요. 그냥 건물에 건물번호만 쓰여 있어서 그 주소가 맞다, 그러면 문 열고 들어가면 돼요.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찾아갔는데 사무실 문을 딱 여는 순간 '아차' 싶은 거예요. 사무실 안에 아무것도 없고 그냥 빈 공간에 철제 책상이랑 캐비닛만 하나 덩그러니 있고 건너편에 남미 사람이 앉아있는데 이 아저씨 팔뚝이 뻥 안 보태고 제 머리 크기예요. 


영화 보면 그런 사람 있잖아요. 딱히 운동으로 단련한 몸은 아닌데 그냥 사이즈가 큰 사람. 심지어 이름도 '마르코'래요. 마약상인줄. 아니 왜 영화 <테이큰>에서 알바니아 인신매매단 리더랑 이름이 같냐고요. 이름을 듣는 순간 머릿속에 막 영화 장면이 지나가고. "굿 럭"


무섭고 마음은 돌아나가고 싶은데 그런 거 아세요? 무서워서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데 막상 몸을 뒤로 돌리면 방어가 전혀 안 되고 적의 습격을 눈치챌 수 없으니까 차라리 도망을 안 가고 맞서버리는? 그래서 들어가서 앉았어요. '30분이 지나도 연락이 안 되면 경찰에 신고해 달라고 누구한테 말이라도 해둘 걸' 뒤늦게 후회하면서요.


혈혈단신 중고차 던전 체험기는 다음화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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