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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던스 호텔

사일런트 힐의 공짜 빵

뉴욕에서 처음 묵었던 숙소는 레지던스 호텔이었습니다. 레지던스는 비즈니스호텔 같은 숙박업소인데 취사가 가능한 곳입니다. 아무래도 어린애가 있으면 취사가 중요하죠. 게다가 둘째는 이제 10개월이라 이유식을 먹을 때였으니까요.


저희 룸은 작은 방이 하나 있고 거실 겸 부엌이 있었는데 한국으로 치면 분리형 원룸 같은 곳이었어요. 가족단위로 머물기는 턱없이 좁지만 숙소를 구하기 전까지 임시로 머물 곳이라 그러려니 하고 지냈죠.

Beekman Tower (출처 : 구글)

(찍어둔 사진이 없어서 구글에서 사진을 검색해 봤는데 어마어마한 건물이 나왔네요. 실제로는 작고 허름합니다만.)


이 숙소는 여러모로 잊을 수 없는 충을 가져다준 곳인데요. 처음 접하는 미국 문화를 아주 진하게 맛봤다고 할까요?


거의 하루 꼬박 비행기를 타고 와서 공항에 밤에 떨어졌고, 소에 도착하자마자 쓰러져 잤으니 아침에 배가 고프잖아요. 뭘 좀 사 와야겠는 거죠. 취사가 가능하다고 해도  가방에 밥솥이 있거나 그러지는 않으니까요.


아니 사실 밥솥이 있긴 있었. 그런 거 아니면 9개나 되는 대형 캐리어 속에 뭐가 들어있겠어요. 그렇지만 쌀도 없고 반찬도 없고 하니까 일단은 무용지물인 거죠. 그래서 아침을 어떻게 해결할까 하면서 일단 나가봤어요. 호텔 앞 마트에서 뭐라도 사 오려고요.


로비로 내려왔는데 접수처 직원이 간밤에 잘 잤냐 어쩌냐 인사하고 조식 코너 위치를 알려주는 겁니다. 조식?! 그렇지 조식!  그 생각을 못했을까요. 숙박료에 조식이 포함이었던 거예요. 호텔 조식 정말 좋아하는데 잘 됐단 말이죠.

호텔 조식 아시죠? 우리 매일 먹는 그거 있잖아요 (출처 : 구글)

그래서 안내를 받았는데 정말이지 뭐가 있을 것 같지 않은 엘리베이터 옆 공간으로 살짝 돌아가니까 커피 머신이 있고 그 옆에 커피 머신이랑 비슷한 크기 빵 상자가 있는 거예요.


가로세로 60cm 정도 되는 투명하고 네모난 아크릴 상자에 베이글이랑 패스튜리, 머핀 같은 걸 대충 쏟아부어놨는데 어림잡아 100개는 돼 보여요. 그걸 가져다 먹으면 된대요.


맙소사! 무한리필 빵이라니! 너무 감사한 거 있죠. 호텔 조식이라고 해서 무슨 소시지니 계란 같은 건 기대하지도 않았어요. 아니 그보다, 취사가 가능한 곳이니까 당연히 아무것도 안 줄 줄 알았던 거죠.


얼마나 반갑고 고맙던지. 그래서 그 빵으로 아침을 먹으려는데 보니까 주변에 먹는 사람이 한 명도 없어요. 나중에 알았지만 그 빵들은 월마트 같은 데서 정말 정말 저렴하게 파는 빵이거든요. 얼마나 저렴하냐면 '과연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재료로 만들었는데도 이 가격이 나올까' 싶은?


그래서 현지인 중에는 먹는 사람이 거의 없는데요, 할튼 그때는 그런 건 전혀 모르고 일단 내가 좋아하는 빵이 있다. 무한 리필이다. 이게 중요한 거죠. 그래서 빵을 열심히 방으로 실어 날랐습니다. 손바닥만 한 1회용 종이접시에다 피라미드처럼 4~5개씩 쌓아서 라떼 한 잔이랑 같이 들고 방으로 갔죠.


지금 생각해 봐도 진짜 많이 먹었네요. 엘리베이터 올라가면서 벌써 하나 먹고 그죠? 그때만 해도 어글리 코리안 취급받을까 봐 리셉션에 사람 있나 보고 몰래 가져가고 그랬요. 아, 지금도 생생하게 생각납니다. 그 무한리필 빵통. 정말 좋았는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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