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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의 중심에서 돼지고기를 외치다

그저그저 한 점만 주신다면 굽신굽신

사우디 사람들은 돼지고기를 불결한 것으로 여깁니다. 그래서 먹는 건 물론이고 만지는 것도 싫어하죠. 꾸란에서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 사우디 안에는 돼지고기를 파는 매장도 없습니다.

돼지고기를 향한 뒤틀린 욕망의 분출

그럼 사우디에 사는 외국인은 돼지고기를 절대 못 먹냐면 그건 아닙니다. 외국인이 자가소비용으로 소지하고 있는 건 특별히 금지하지 않거든요.


문제는 자가소비용을 어떻게 들여오냐 하는 건데 크게 2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귀한 돼지와 귀한 김치 조합. VIP 접대용

첫째는 자국에서 입국할 때 몰래 들여가는 거죠. 물론 대놓고 PORK라고 쓰여 있으면 안 됩니다. 몰수당할 뿐만 아니라 벌금도 내야 하죠.


하지만 꽝꽝 언 고기 포장에 DUCK이라고 쓰여 있으면, 일단 사우디에서 오리고기가 흔하지 않기도 하고, 돼지고기 같다고 뜯어서 먹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기 때문에 모르는 척 눈감아주는 겁니다.

업계 1위는 위험합니다

이런 방법으로 캔햄도 반입이 가능한데, 다만 주의해야 할 것은 업계 1위 제품은 위험하다는 겁니다. '스팸' 같은 경우는 워낙 유명한 제품이라 사우디 검역관이 한글을 알아본다고 하네요.


두 번째 방법은 가까운 마트에서 사 오는 건데요, 리야드에서 동쪽으로 500km만 가면 돼지고기를 파는 슈퍼마켓이 나옵니다. 바레인이에요. 국경을 넘습니다.


근데 이게 농담이 아니에요.

 

길이 일자로 쭉 뻗어있는 데다 제한속도가 140km고 실제로는 170 정도로 달리기 때문에 시간은 서울-부산보다 덜 걸려요. 운전 피로도가 우리나라에서 운전하는 것보다 훨씬 덜하거든요.

470km 직진 후 우회전

바레인이라고 해서 돼지고기가 무제한으로 허용되는 건 아닙니다. 팔긴 하지만 무슬림들이 불쾌해할 수 있기 때문에 마트 구석에 작은 섹션이 따로 마련돼 있어요.

구석진 자리에 포크 섹션

돼지는 스페인 수입산이에요. 한돈에 비하면 질기고 퍽퍽하지만 가릴 처지가 아니죠. 숄더(앞다리+목살)와 밸리(삼겹살)를 몇 kg 씩 벌크로 팝니다.


히 이런 매장에서는 사우디에 들어가는 사람들을 배려해서 진공 포장에 beef라고 쓴 바코드도 만들어 찍어줍니다.


국경에서 검색할 때 시치미 뚝 떼고 "홧? 디스? 비프 비프. 비프 굳" 하면서 엄지척하면 일단 고기 색깔부터 다른 게 뻔하지만 자가소비 전제로 눈감아주는 식입니다.

일용할 양식 스택이 쌓였습니다

이렇게 모인 돼지고기가 현지 한인 냉동고에 그득그득 쌓여 있기 때문에 사우디에 처음 들어간 사람도 어렵지 않게 커뮤니티를 통해 긴급 돼지고기를 수혈받을 수 있는 겁니다.

뭐 그렇습니다. 구할 수 있다고는 해도 어쨌든 상당한 발품을 팔든가 꼭 갚아야 할 신세를 지는 셈이기 때문에 사우디에서 돼지고기는 한 번 먹으려면 목욕재계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설사 오버쿡해서 숯이 돼버린다 하더라도 남기지 않겠다는 각오로 임해야 하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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